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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23.04.28 10:10

'칠중주: 홍콩이야기' 모처럼 만나는 홍콩시네마 합주곡

한때 아시아를 대표했던 천재들 '다시 한번 의기투합' 112분

'칠중주: 홍콩이야기' 메인포스터 (콘텐츠판다 제공)
'칠중주: 홍콩이야기' 메인포스터 (콘텐츠판다 제공)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작위적인 스토리와 티 나는 CG(컴퓨터그래픽) 영화, 시리즈에 지쳐있던 차, 트릭없는 대본과 연출, 연기만으로 승부를 띄운 옴니버스 필름 영화 한편이 5월 11일 개봉한다.

제목은 '칠중주: 홍콩이야기', 러닝타임은 112분이며 단편 7편을 옴니버스로 엮었다. 하물며 감독 라인업도 화려하다. 홍금보, 허안화, 담가명, 원화평, 두기봉, 임영동, 서극 등 8,90년대 중화권과 아시아 영화팬들을 열광시켰던 그들이다.  

단편 7편을 겉만 놓고 보면 50년전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당시 홍콩에 살던 사람들의 추억담이다.

하지만 장면 곳곳에서 드러나는 이야기들을 곱씹다 보면, 과거 홍콩의 모습과 지금의 홍콩을 교차로 보여주며 4,50년 전 부터 현재까지 오랜 세파를 견딘 명감독들의 번민이 드러난다.

고유의 색깔이 사라진 현재 홍콩을 보면, '변심은 사람이 아니라 실체도 불분명한 통치기반이 원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 아울러 간만에 듣는 광둥어(홍콩의 중국어 기반)가 귀를 간지럽힌다.

'칠중주:홍콩이야기' 스틸컷1(콘텐츠판다 제공)
'칠중주:홍콩이야기' 스틸컷1(콘텐츠판다 제공)

'칠중주: 홍콩이야기' 첫번째 작품의 제목은 '수련'이다. 홍금보의 과거를 다룬다. 무술학교 학생 시절, 학교건물 옥상에서 엄격한 규율을 앞세운 스승에게 학우들과 혹독한 수련을 받던 홍금보. 그는 스승이 자리를 비우면 연습은 안하고 동무들과 쉬기 바쁘다.

단편 '수련'과 관련해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 도중 "여전히 그 때가 기억난다"며 엄격하고 혹독했지만 오늘날의 홍금보를 만들어준 계기를 그는 뚜렷히 기억하고 있다. 홍금보는 무술학교(우점원 경극학교)를 졸업한뒤 중소영화사 스탭을 거쳐, 1971년부터 중화권 영화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의 무술감독을 맡으면서 성공가두를 달린다.

그런 홍금보가 배우로 감독으로 유명해지기 전, 그 시작점을 '칠중주: 홍콩이야기' 첫번째 에피소드 '수련'에서 짧지만 인상적인 장면들을 선사한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홍콩영화계의 대모격인 허안화 감독의 '교장선생님'이다. 서정적이고 문학적인 작품을 주로 내놨던 이력답게 1961년 홍콩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당시 철은 없지만 순수한 마음만큼은 가득했던 어린 학생들과 엄격하지만 자상한 선생님들의 과거, 현재를 담았다.

반세기 전에 있었던 별 볼일 없는 교장과 선생님의 추억거리지만, 학교 학생들의 대화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표정을 빌어 연인들 간의 보이지 않는 사랑과 슬픔을 그려냈다.

'칠중주: 홍콩이야기'(콘텐츠판다 제공)
'칠중주: 홍콩이야기'(콘텐츠판다 제공)

세번째 에피소드 '밤은 부드러워라'는 80년대 허안화, 서극, 두기봉, 진가신과 함께 홍콩 뉴웨이브 시네마를 이끌던 담가명 감독의 단편작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영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갓 20대에 접어든 여성과 그녀를 사랑한 동년배 남자의 첫사랑 이야기다. 

시대배경은 80년대이지만, 잘 보면 1997년 영국령 홍콩의 중국 반환이 다가오면서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의 혼란을 담았다.

네번째는 원화평 감독의 '귀향' 때는 1990년대 전국무술대회에서 대상까지 수상한 할아버지를 찾아 북미에서 온 손녀딸,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산가족이 된 이들의 이야기다. 액션감독으로 알려진 원화평이 바라보는 홍콩의 어제와 오늘이 심플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섯번째 에피소드는 '천장지구' 시리즈로 홍콩 느와르의 한획을 그은 두기봉 감독의 '노다지'다. 2000년대 주식 광풍, 부동산 광풍, 사스창궐로 홍콩 전역이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던 시기.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주식, 금융파생상품, 부동산에 투자하는 세 젊은이들이 겪었던 세 번의 홍콩 위기를 그리고 있다. 

현대사회의 구석구석을 잘 표현하는 두기봉 감독 답게 2000년대 당시 홍콩 2,30대가 광적으로 열광하고 집착하던 노다지 열풍에 관한 이야기를 잘 묘사했다.

여섯번째 에피소드는 임영동 감독의 '길을 잃다'이다. 테오 앙겔로플로스의 고전 걸작 '시테라섬으로의 여행'처럼 홍콩 반환 전후로 불어닥친 본토 자본의 부동산 매집열풍과 산업화로 부득불 해외 이민을 떠나야만 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다.

주윤발 주연의 '용호풍운'(1988)을 연출한 임영동 감독은 이번 단편에서 주력으로 삼았던 홍콩 스타일의 범죄액션 느와르를 벗어나,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평생 직업을 갖게된 고향 홍콩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삼은듯 싶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배우 임달화의 애틋한 열연이 돋보인다.

마지막 7번째 에피소드는 서극 감독의 단편작이다. 제목은 '심오한 대화'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상담을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한 상담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가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치료하는 상황극을 표현했다.

이 단편은 첫 장면에서 영화제목 '칠중주: 홍콩이야기'처럼 진부한 모습일거라고 치부하다, 결국 재치있고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서극 감독의 탁월함이 돋보인다.

홍콩 감독들이 주목하는 수십년 전 홍콩, 우리에게는 반면교사

'칠중주: 홍콩 이야기'를 보면 홍콩의 중국 반환이 결과적으로 '홍콩의 진면목을 없앴다'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홍콩에서 교육받고, 성장하고, 일자리를 찾고, 사업하고 돈을 벌던 이들은 1997년 전후 해외 각국으로 꽤 많이 이주했다. 이 영화는 90년대 전후로 자신의 나라가 중국에게 넘어가는 순간, 그 이전과 이후 혼란스러웠던 당시 사회를 묘사했다.

'칠중주: 홍콩이야기'의 핵심은 중국 본토가 접수한 홍콩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고 있다. 단지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을 뿐, 홍콩의 암울함을 내비쳤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이 작품은 한 마디로 남 얘기, 남 일 같지가 않다는 것.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가 자꾸만 아른거린다. 

가령, 27일 미 의회에서 재발의된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 법안(한국과 파트너 법안)은 마치 1980, 90년대 영국과 홍콩 양국 정부가 협의한 이주 및 비자 발급 협정과 유사하다.

문화는 어떤가. 40년전 홍콩은 현재 한국의 한류열풍 못지 않은 음악, 패션, 미술, 영화, 드라마로 아시아를 호령하던 때가 있었다.

하물며 다음달 11일 개봉하는 신작 '칠중주: 홍콩이야기'는 과거만 더듬고 지나가질 않는다. 강산이 여러차례 바뀌었음에도, CG없이 필름 영화로만 승부를 걸었음에도 작품 하나 하나에 담긴 스토리는 여전히 힘이 있어 보인다. 

당시의 감독들 역량이 떨어졌거나 오랜 세월 모진 세파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걸 증명하고 있다. 

시선을 조금 돌려, 올 2월 충무로에서 열린 한국영화감독협회 정기총회에는 수많은 감독들이 모임을 찾았다.

그런데 이분들 작품 활동을 최근까지도 보기 어렵다. 역량이 떨어져서일까. 아니면 영화계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자본과 끌어모을 힘을 잃어서 일까? 이유야 어찌됐건 우리에게도 영화 감독들이 제법 있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 최초 작품상, 감독상을 수상한 이래 세계 각국 영화극장과 OTT에서 글로벌 한국의 위상은 공고해졌다. 또한 케이팝 아이돌들이 스포티파이, 아이튠즈는 물론 빌보드 메인 차트 1위를 차지하고, 매년 그래미어워즈에 후보로 초청된 경우를 이제 우리는 흔히 보고 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함 뒤에 길어진 그림자가 커 보인다. 그 그림자는 '칠중주: 홍콩 이야기'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곧 봐야할 이야기이기 때문은 아닐지. 

콘텐츠판다가 수입하고 배급하는 '칠중주: 홍콩이야기'는 오는 5월 11일 국내 개봉한다. 12세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12분이다.

이 작품을 홍콩의 영화로왔던 과거 혹은 단순한 추억거리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 7편의 단편으로 엮은 이 옴니버스 영화는 우리가 앞으로 봐야할 '오래된 미래'라고 해야 맞다. 아울러 결코 후회하지 않을 필름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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