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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칼럼
  • 입력 2014.09.28 08:14

그것이 알고 싶다 '뼈 동굴', "아버지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경산 코발트 광산 유해들의 비밀, 아픈 역사를 파헤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인들은 본토의 일본인들에 비해 2등국민으로서 차별받는 위치에 있었다. 먼저 근대화를 이루었고, 열강의 하나인 러시아와 싸워 승리했으며, 무엇보다 조선인의 왕조인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멸망하여 그 지배아래 들게 되었다. 힘의 우열은 곧 문명의 우열이며, 문명의 우열은 민족의 우열이다. 조선인은 미개하고 열등하다.

그것은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임으로써 일본이 이미 이룩한 근대의 문명을 미개한 상태의 조선사회에도 이식할 수 있기를 바랐던 많은 조선인 지식인들 역시 공감하고 있던 바였다. 일본인을 닮고 스스로 일본인이 된다. 지금까지의 야만적이고 열등한 조선인의 껍질을 벗고 적극적으로 일본인과 같은 문명인이 되어야 한다. 한 발 없어 일본의 근대문명을 받아들이고 일본인이 되어 있었던 이른바 '친일파'들은 여타 조선인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통해 조선인들을 대상화하고 사물화하는데 익숙해 있던 그들이었다.

▲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캡처 ⓒSBS

독립운동가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특히 해외파 독립운동가 가운데 상당수는 벌써 십 년도 넘게 조선을 떠나 해외를 떠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총독부의 서슬퍼런 감시와 탄압 속에서 대다수 조선인들과 어려운 시절을 함께했던 국내파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입장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백범 김구는 조선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친일파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망명파 독립운동가의 거두로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그런 가운데 해외파 가운데서도 교민들과 크게 교류가 없던 이승만이 대통령까지 되었던 것은 어쩌면 비극의 단초가 되고 있었을 것이다.

근대의 국가를 이미 배우고 경험했다. 근대국가란 동질성이다. 근대의 사회란 균질한 구조다. 그것은 공산주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효율은 바로 근대의 이유였다. 오랫동안 조선의 일상과 유리되어 있던 해외파 독립운동가가 권력을 잡았다. 국내에 기반이 전혀 없던 독립운동가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고도로 구조화되어 있던 조선인 협력자들을 그 기반으로 삼게 된다. 그리고 그들 조선인 협력자들은 일등국민인 일본인과 함께 이등국민인 조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고 수탈하던 당사자들이었다. 이후 대한민국이라 불리게 된 해방된 조선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는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예방살인이라는 말 자체가 지극히 근대적인 사고에 근거한 것이다. 고도로 구조화된 세계는 일정한 법칙과 질서에 의해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들에 대해서까지 충분히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개인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까지 계량화하여 미리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다. 국가라고 하는 구조를 위해 불순하고 불온한 다수를 배제하는 것은 언제나 당연한 일이다. 설사 일부 억울한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효율을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희생일 것이다. 무고한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한 것이나, 심지어 그 가족까지도 연좌로 묶어 차별하고 억압한 것은 결국 같은 맥락이다. 진실이 밝혀진 지금에 와서도 그것을 묻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전체를 위해 옳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해 죽은 이들과 산 사람들 모두가 참고 잊으라.

침묵의 공범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을 막지 못했다. 희생자들을 구하지 못했다. 진실도 밝히지 못했다. 침묵하는 사이 희생자들의 억울함은 묻히고 그 유가족은 고통속에 살아야 했다. 그 모습을 바로 가까이서 지켜봐야 했다. 때로 그들을 차별하고 따돌리는 사람들 속에 섞이기도 했다. 이제는 차마 진실을 밝히는 자체가 두려워진다. 대한민국 전체가 공범이다. 알고 있다.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애써 외면한다. 그들의 억울함을. 분노를. 그리고 오랜 세월 쌓여 온 한을. 그들을 외면했던 자신들 역시 가해자일 것이기에.

가끔 생각한다. 과연 대한민국은 일본에 대해 과거의 역사를 따져물을 자격이 있는가. 최소한 일본인들은 때때로 당시의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사실을 증언하고 용서도 구한다. 때늦은 참회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행위가 망각속에 묻히지 않도록 노력하는 성의는 보인다. 하지만 과연 과거의 참혹했던 우리의 역사에 대해 과연 직접 나서서 사실을 밝히고 참회의 뜻을 전하는 용기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었던가. 차라리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과는 달리 오히려 자신들이 옳았음을 역설하며 그에 의문을 던지거나 반론을 하려는 개인이나 집단을 몰아세우는 경우가 더 많다. 참혹했던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증언해주는 중요한 증인들일 텐데도 그것을 밝히기조차 꺼려하는 대학당국이 지금 우리들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동네에 경로당만 들어와도 주민들은 반대한다. 딱 그 수준이다.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인데 그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안장할 어떤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한스런 세월들을 달래줄 어떤 조치도 취해지고 있지 않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이야 말로 나라의 주권자다. 공허한 까닭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고, 국민이 국민이 아니며,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권력이 오히려 국민을 아무렇지 않게 학살하던 시절을. 그것이 정의이던 시절을. 침묵해야 했고 외면해야 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로부터 얼마나 지나온 것일까. 아직도 진실을 마주하기에 너무 이른 것일까?

괴담이 되어 있었다. 강을 온통 핏빛으로 물들였다는 피맺힌 역사는 이제 한낱 인터넷에 떠도는 유희거리가 되고 말았다. 불과 수십년 전 실제 있었던 역사조차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놀이삼아 그 현장을 찾아간다. 자괴감마저 느낀다. 무엇도 아무것도 저들에게 가르쳐주지 못했다. 기성세대의 원죄이고 부채다. 아직도 진행형이다. 무겁다.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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