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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황규준 기자
  • 피플
  • 입력 2023.01.25 16:25
  • 수정 2023.01.26 10:54

무대에서 빛나는 배우, 배우 정유나

배우 정유나
배우 정유나

[스타데일리뉴스=황규준 기자] 매년 예술계에는 많은 새로운 작품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재능 있는 예술가들은 늘 눈에 띄기 마련이고 때론 작품 자체보다도 강렬하게 기억되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 수십 편의 콘텐츠를 부지런히 소비하는 가운데에서도 배우의 숨소리와 작은 움직임이 일으키는 미세한 소리마저 들을 수 있는 연극무대를 통해 작품보다 반짝이는 배우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가 정유나다.

정유나 배우는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이미 두툼한 경력을 쌓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연기·연출 대학 중 한 곳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10대 후반부터 극단생활을 시작한 정유나 배우는 재학 중에도 꾸준히 경력을 쌓아갔다. 2017년도에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이후로는 대형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그리고 연극 무대와 TV 시리즈 등 매체와 역할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 그녀가 처음으로 성인 배역을 맡았던 ‘유리’의 무대는 배우가 견뎌야 할 무게를 가르쳐주었다. 그녀의 역은 20살 다방아가씨 ‘유리’로 극 중 살해되면서 비극적인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다. 정유나 배우는 순수했던 소녀가 억울하게 빚을 지고 몸을 팔아야만 했던 비극적 여성의 삶을 자신에게 입히기 위해 연습기간 동안 끊임없는 연구를 거듭했고, 마침내 “유리가 공연의 시작과 마지막이 같은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두 인물로 보였다.”라는 관계자의 극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노력은 2022년 런던에서 공연한 ‘A First class’에서 “그녀는 한 인물을 연기하면서 여러 자아를 완벽히 표현하는 연기법을 완성시켰다. 이러한 연기는 그녀의 전매특허가 될 것"이라는 평론가의 평가를 이끌기도 했다. 이러한 평가를 받기 위해 회가 거듭되는 동안 그녀는 일상에서도 이어지는 사건과 인물의 무게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했다. 무대를 떠나서도 ‘정유나’를 잊을 만큼 ‘유리’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리를 통해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그녀의 유리는 극의 초반, 미래를 그리던 희망적인 눈빛이 점점 퇴색되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유리의 심경 변화를 단연 사소한 차이로부터 만들어내는 정유나의 연기 스킬이 눈에 띄었다. 장면이 진행될수록 달라지는 그녀의 시선 처리, 손짓 하나로부터 유리의 닳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그녀의 에티튜드 또한 하나의 관람 포인트였다. 같은 장면 안 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감정선에 인물 간의 관계도가 무대 위에 뚜렷하게 그려졌다. 강렬한 장면에서도 그녀의 연기는 섬세했으며, 지쳐 쓰러져있는 장면에서도 감정은 묵직했다. 극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유리라는 인물을 통해 완벽하게 전달했다. 극의 후반으로 달려가면서 한마디의 말보다도 더 무겁고 힘이 센 그녀의 눈빛과 호흡이 관객들을 휘감았다. 극의 결말이 지난 후 마지막까지 감정선을 놓지 않고 유리의 모든 서사를 담고 있던 그녀의 커튼콜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을 통해 정유나 배우는 대학로의 많은 제작자들에게 러브콜을 받는 ‘연기파 배우’로 설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이를 입증하듯 ‘일등급인간’의 욕심과 야망으로 가득 찬 엄마역, ‘안내놔?못내놔!’의 대공황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여자역, ‘투머치브로’의 기면증 등의 장애를 앓고있는 아가씨역을 맡는 등의 도전적인 작품들을 통해 본인의 연기의 한계를 시험해가며 꾸준히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그 첫 결실의 끈은 2022년 영국 런던 ‘Theatro Technis’ 극장에 올려진 연극 ‘A First Class’ 무대에 오르면서 연결된다. ‘A First Class’는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었던 이난영 작가의 ‘일등급인간’이 원작으로, 신체 일부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일등급인간’으로 만들려는 부모와 그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딸을 중심으로 교육열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블랙코미디이다.

정유나 배우는 2020년 ‘일등급인간’에서는 엄마역을 맡았지만, 2022년 런던과 한국에서 이어진 공연에서는 딸역을 맡아 또 다른 감정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같은 작품이었지만 대척점에 서는 배역들을 번갈아 맡으면서, 그녀는 작품을 습득하는 깊은 이해도와 폭넓은 연기의 스펙트럼을 증명했다.

제작 관계자는 “엄마의 기괴하고 극성맞은 성격과 과하게 치장한 외모, 딸의 세 가지 자아와 각각의 다른 외형을 모두 완벽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한 작품에서 한 배우가 저렇게 많은 인격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경이로웠다.”며 그녀를 극찬했다.

그녀는 관객으로 하여금 우스우면서도 슬프기도 한 감정의 줄타기를 유도해야 하는 높은 난이도의 블랙코미디 연기를 통해 현지 에이전트들의 눈에 띄게 되었고 마침내 ‘BMA(British Management Agency) Artists’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정유나 배우의 다음 행보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연기자이기 전에 다재다능한 예술인이고, 한국인 배우이기 전에 다국어를 구사하는 능력까지 갖춘 국제적인 배우라는 사실이다. 국경을 뛰어넘어 뻗어가는 K-콘텐츠처럼, 정유나 배우의 무대도 국경을 따로 두지 않고 넓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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