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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공연
  • 입력 2022.12.20 18:45
  • 수정 2022.12.21 15:17

가수 한선희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

콘서트 '김남주 다시 읽기' 홀로서기 나선 한선희가 던진 대중을 향한 메시지

NAMU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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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가수 한선희는 '우리나라' 노래패 멤버였다. 현재는 해체됐지만,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꽃다지'의 끈을 이어준 민중가요 그룹이다.

최근 가수 한선희가 콘서트 '김남주 다시 읽기'로 홀로서기에 나섰다. 안그래도 민중가요는 허울 좋은 경제지표를 앞세운 성장과 더불어 잊혀져 가는 형편.

그럼에도 무엇인가 말을 하지 않으면, 실의에 빠진 모든 생명체를 향해 위로와 함께 힘을 북돋우는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주저앉은 그들을 일으켜 세우기 어렵다. 

저항시인 김남주를 다시 깨운 한선희 

시인 김남주는 10년이 넘는 투옥과 옥살이를 살다, 1993년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뒤 이듬해 췌장암으로 타계하기 전까지, 저항시인으로 민중 혁명과 투쟁을 평생 과업으로 삼았던 인물이다.

안치환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1997)이라는 노랫말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작가 김남주의 시가 낯설지 않다. 

정작 이 노래는 1992년 노래패 '꽃다지'의 1집 앨범 '수선전도'의 수록곡 중 하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선보인지 올해로 30년이 됐으니, 그간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렇다. 이제 보니 시대는 변했고, 김남주의 저항시들은 잊혀가는 듯 했다. 그런 그를 부활시킨건 최근 개최한 가수 한선희의 단독 콘서트. 

그런데 왜 지금이었을까. 각성이었을까. 계몽이었을까. 여러 궁금증이 일렁였지만, 한선희의 홀로서기에 방점을 둔다면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우선 최근 개최된 콘서트 '김남주 다시 읽기'의 부제는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 33년전 출판된 '김남주 옥중연서' 제목이다.

이 산문집은 저항적인 글을 썼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교도소에서 장기 복역하던 김남주의 편지를 엮었다. 약혼녀 박광숙에게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들끓는 분노와 시인 김남주의 저항 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번 콘서트를 빌어 한선희의 남편이자 연극 연출가인 김진휘의 낭독과 배우 이종승이 1인 연극으로 꾸미고, 가수 한선희가 기타 고명원, 건반 이소라, 해금 전미선과 함께 저항시인 김남주 시를 노래로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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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래의 길, 그리고 생약 처방전

최근 개최된 한선희의 단독 공연은 두 가지 갈래로 나뉘어진 모습이다. 하나는 '뿌리', 다른 하나는 '대중적 접근'이다. 

우선 공연에서 부른 노래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죽창가, 저 창살에 햇살이,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자유, 한 입의 아우성으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그리고 산국화.

어디를 봐도 가수 한선희의 뿌리는 민중이다. 그중 그녀가 선택한 민중가요는 어렵게 볼 것 없이 생약 처방전이다.

가령, 전신이 아프고, 힘들고 정신적인 고통이 드러날 때, 다수는 병원에서 받은 양약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찾아간다.

아픈 몸이 나으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그로인한 고통은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커질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 "어차피인데 생약 처방을 받아보라"며 권유한다면, 당사자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라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그럼 생약 처방은 특별한 걸까. 시골 어디를 가건 보이는 쑥과 민들레가 그렇고, 산과 들에 피는 국화꽃이 생약이다.

그런 면에서 김남주 시인의 '산국화'가 그렇다. 

서리가 내리고 산에 들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찬서리 내려 산에는 갈잎이 지고 산에 들에 하얗게 풀잎이 지고 무서리 내려 들에는 당신은 당신을 이름하여 꽃이라 했지요 꺾일듯 꺾일듯 꺾이지 않는 꽃이라 했지요 산에 피면 산국화 들에 피면 들국화 당신은 당신은 그냥 꽃이라 불렀죠 -산국화-(김남주)

민중가요는 이 땅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어디로 달아나지 않는다. 잠시 잊혀질 뿐, 사계절을 지날 때 마다 다시 불려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이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가수 한선희, 조금 더 대중적인 접근을 바라며

MZ세대로 교체 중인 현대인에게는 각성과 계몽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서민들의 지혜로 엮어 놓은 오래된 생약 처방전처럼 서정성이 이제 필요하다. 서민을 향한 위로이며, 통기타 소리를 젖게 만드는 노래가 필요하다. 

그래서 가수 한선희가 이제 자신이 살던 뿌리를 떠나 농꾼이 되어 대지에 뿌릴 씨앗을 찾고 있다면, 조금 더 대중적인 접근을 요구하고 싶다.

익히 다 아는 김광석처럼 말이다. 세대와 상관없이 대중이 가장 사랑하고 즐겨 부르던, 김광석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처럼. 

뿌리는 그대로 두더라도 관점은 바꿀 필요가 있다

얼마 전 공연을 마친 한선희는 윤선애 이후 서정적이면서 동시에 힘 있고 강렬한 목소리를 내는 국내 몇 없는 민중가요 가수다.

하지만 지금의 민중가요는 필요할 때만, 그것도 지푸라기라도 잡아야만 하는 절박함이 있어야만 들리는 노래다.

이제 세대를 떠나 1인 사회로 접어든 현대인들은 혼밥과 혼술, 나홀로 관람을 낙으로 삼고 살고 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위로 받고 싶고, 그래서 더 서정적인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뿌리는 그대로 유지해도 관점을 바꿀 필요가 생긴 것이다.

끝으로 가수 한선희의 홀로서기가 들과 산에 핀 산국화처럼 잘 뿌리 내리고 정착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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