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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16 07:41

계백 "긴 프롤로그가 끝났다!"

드라마가 너무 친절해도 매력없다!

 
너무 길다. 원래 거짓말은 짧을수록 좋은 법이다. 길면 반드시 파탄이 난다. 원래 등장인물들의 어린시절이란 배경을 설명하는 프롤로그나 마찬가지인데 허구를 마치 사실처럼 늘어놓다 보니 여기저기 허점이 노출된다. 한 마디로 지겹다.

물론 계백(이서진 분)이 신라에 노예로 있었다거나 하는 것은 어차피 사료에 나와 있지 않은 부분이니 작가의 재량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계백이 신라에 노예로 가게 되었는가. 차라리 무진(차인표 분)이 만삭의 아내와 함께 벼랑에서 떨어졌을 때 신라로 흘러가는 것이 더 깔끔하고 좋지 않았겠는가.

그에 비하면 왕자 의자(노영학 분)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진을 굳이 자기 손으로 죽이는 장면은 얼마나 작위적인가. 더구나 그것을 계백이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분명 비장하고 슬픈, 그래서 장차 의자와 계백의 행동에 있어 어떤 동기가 되었어야 했던 장면인데 그러나 역시 너무 길었다. 무왕(최종환 분)의 계획이 틀어지고 무진이 잡혀가고 다시 사택비가 의자를 죽일 계획을 꾸미기까지, 그래서 무왕이 무진을 찾아가고 의자를 찾아가기까지, 힘이 다 빠져 버린 상황에 무진이 죽어봐야 느끼는 감정도 절반 이하로 떨어질 뿐이다.

더구나 의도가 뻔히 보인다. 그렇게 비극을 극대화함으로써 앞으로 의자와 계백 두 사람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선화황후 한 사람의 죽음으로도 의자의 명분은 충분하다. 그 과정에서 계백의 생모가 죽었으니 계백 또한 명분은 충분하다 할 수 있다. 그 후유증으로 무진이 죽었다면 더 확실하다. 덕분에 오히려 계백은 의모의 죽음까지 지켜보아야 했고 의자는 무진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했다.

아마 계산하기로 비극이 중첩되면 그만큼 더 비극이 심화될 것 같다. 어머니도 죽고 무진도 자기 손으로 죽이고. 생모가 죽었는데 의모도 죽고 아버지도 죽었다. 하지만 비극이란 충격량에 비례한다. 어머니가 죽었다. 생모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로 인해 죽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죽음이 더해진다. 앞서의 죽음은 뒤의 죽음에 가려지고, 뒤의 죽음 역시 앞의 죽음에 흐려진다. 도대체 굳이 비극을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사족일 것이다. 굳이 사택비가 군사를 몰고 왕성으로 들이치지 않아도 이미 백제가 귀족 세상이라는 것을 시작부분에 다 보여주고 있었다. 왕조차 귀족들을 함부로 하지 못하고, 그래서 가장 소중한 선화황후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여기에 몇 가지 장면을 더해봐야 역시 별 의미없는 동어반복에 불과한 것이다. 그나마 사족 가운데서도 건질만한 것이라면 사택비의 무진에 대한 어쩌면 가련하기까지 한 짝사랑일 텐데, 그러나 그것 역시 무왕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짝사랑을 고백하는 사택비의 모습 만큼이나 공허하다. 그래서 과연 그런 장면들이 이후 계백이 사택비를 만나는데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인가.

프롤로그는 깔끔할수록 좋다. 더 할 이야기가 있으면 나중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회고형식으로 잠깐 집어넣는 것이 전체적으로 이야기에 집중하는데 유리하다.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으려 하면 산만하다. 너무 길면 지루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본편일 텐데 본편의 힘을 빼 놓을 수 있다. 어려서 이미 알고 있던 은고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것과, 우연히 은고라는 여자를 만났는데 과거 만났던 인연이 있었다는 것과, 과연 어느 쪽이 더 드라마적인 흥미를 자아내는데 유리하겠는가 말이다. 은고로부터 받은 향낭을 계백이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는 것과 계백이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던 향낭이 은고로부터 받은 것이었다는 것과 보고 들으며 느끼는 것이 다른 것이다.

드라마는 너무 친절해서는 안 된다. 너무 불친절해도 문제지만 너무 친절해도 매력이 떨어진다. 조금씩 하나씩 알아가는 맛이 있어야 드라마도 재미있다. 과연 의자와 계백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계백과 은고 사이에는 어떤 인연이 있었는가. 어째서 사택비와 의자, 사택비와 계백은 저리 서로를 증오하며 죽이려 하는가. 무엇보다 어째서 백제의 장군이 되는 계백은 노예로써 신라군과 함께 싸우고 있는가. 이미 모든 설명을 들어버리고 난 뒤이니 굳이 파헤칠 진실같은 것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사건이 흘러가는대로 지켜보는 것만이 남아 있는 셈이다.

정작 아역인 이현우에서 타이틀롤인 이서진으로 배우가 바뀌었음에도 전혀 반갑거나 흥미롭거나 하지 않은 것은 그래서인 것이다. 힘이 빠져 버렸다. 너무 긴 이야기로 인해 집중력이 흐트러진 가운데 계백마저 이현우로 익숙해 있는 상태라 이서진은 오히려 어색할 뿐이다. 더구나 이어진 장면이라는 것이 어디선가 한 번은 보았음직한 노예병의 모습이었으니. 그 과정이 너무 상세해서 노예병이라는 자체가 놀랍지 않은데 그 묘사마저 너무 진부하다. 이래저래 아역에서 성인연기자로의 변화가 그다지 크게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재미없다.

노예병 계백의 모습을 앞으로 어떻게 흥미있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지금으로서는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을 테지만. 의자와 사택비의 대립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풀어놓았으니 보다 첨예하고 치열한 머리싸움을 통해 긴장감을 높일 필요가 있다. 최소한 사택비가 무왕을 농락하는 정도는 되어야 흐트러진 분위기를 바로 다잡을 수 있다. 오히려 프롤로그가 너무 길고 상세했기에 더 어려운 과정이 남아 있게 된 셈이다.

분명 부분부분을 보면 잘 만든 드라마다. 사건 하나하나가 재미있다. 그러나 그 모두를 하나로 이었을 때도 재미있는가. 프롤로그란 프롤로그일 뿐. 에피타이저가 아무리 맛잇다고 전채로 배가 불러서는 메인디시를 먹지 못하는 법이다. 에피타이저는 입맛을 돋우는 목적으로 나오는 것이지 그것으로 배부르자는 목적인 아닌 것이다. 드라마란 코스요리다.

갑옷이며 무기, 의상의 고증이 참 흥미롭다. 극적으로 과장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어쩌면 백제의 유물을 통해 상상해 본 그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고나 할까. 제작진의 고심을 알 수 있다. 그런 만큼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아직은 많이 아쉽다. 기대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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