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15 08:12

내 사랑 내 곁에 "마치 아이처럼 떼를 쓰는 배정자"

아이란 순수한 만큼 악에 물들기도 쉽다.

 
어린아이들은 순수하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선하지만 누구보다도 악할 수 있다. 아니 그것이 악이라는 것도 모르고 행하기 일쑤다.

확실히 곤충을 잡아 날개와 다리를 뜯어 조각내 죽이는 것은 어린아이들 말고는 거의 하지 않는다. 병아리를 손으로 쥐고 눌러 죽이는 일도 나이를 먹으면 눈쌀이 찌푸려지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한다. 왜?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니까.

순자가 주장한 성악설의 전제다. 사람의 본성은 아이와 같다. 그러나 아이란 무엇이 옳은지 어떤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백지상태와 같다. 백지상태인 아이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본능과 충동 뿐.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면 인간은 결국 악으로 빠지게 된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고 법이 필요하고 제도가 필요하다. 악으로 빠지지 않도록 가르치고 길들이고 강제해야 한다. 순자의 사상이 법가로 이어진 이유다.

결국 고진국(최재성 분)과 봉선아(김미숙 분)의 결혼을 강정혜(정혜선 분)가 허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배정자(이휘향 분)가 보인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장난감을 빼앗기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 분명 옆집 아이에게 빌린 장난감이건만 그것을 빼앗긴 순간 아이는 그야말로 세상을 잃은 듯 서럽게 울며 떼를 쓰기 시작한다. 그 장난감이 누구의 것이었는가는 이미 머리속에 없다. 단지 자기 손에 들린 장난감을 누군가 뺏어갔다는 인식만이 있을 뿐.

하긴 배정자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다. 아버지가 있었지만 그는 아버지의 역할을 포기하고 있었다. 비참한 가난과 술에 취해 휘두르는 아버지의 폭력은 그녀로 하여금 제대로 주위를 돌아볼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그대로 어른으로 자라나게 방치하고 말았다. 고석빈(온주완 분) 또한 그런 어머니로부터 본능과 충동만을 보고 배우며 자라게 된 경우다. 단지 손에 들린 장난감이 좋고 재미있고 아깝다는 것만 생각할 뿐 그것이 누구 것이었는가는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들의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러나 고진국에게 아이가 없고, 자식 없이 고진국의 아내 선아가 세상을 뜨면서, 후계자조차 없이 큰아버지인 고진국이 회사를 물려받게 되었고 강정혜가 고석빈 일가를 배려하고 있으니 허튼 욕심을 품게 되었던 것이었다.

물론 욕심을 갖는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충분히 누구나 욕심을 부릴만한 상황이었으니. 그러나 욕심에 취한 순간 배정자는 원래 그 욕심을 내던 그것이 누구의 것이었는가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강정혜의 손자를 이미 죽은 것으로 꾸민 것부터가 그런 이유에서였다. 고진국과 봉선아의 결혼을 반대하고, 그것을 허락한 강정혜를 원망하며 차라리 그녀가 망하기를 저주할 수 있는 그것. 괜하게 봉선아를 곤란케 하려 삼계탕에 약을 탄 것을 배정자의 남편 고진택(김일우 분)이 먹게 되는 것은 권선징악에 대한 복선일까?

분면 자기 아이일 터임에도. 겨우 찾아낸 봉영웅을 안고서도 그러나 고석빈은 영웅이를 아들이라 부르지 못한다. 영웅이로부터 형이라 불리며, 장차 고진국과 결혼하게 될 봉선아로 인해 사촌형제가 되어야 함에도 안타까운 표정만 지을 뿐 그 무엇도 하지 못한다. 도미솔(이소연 분)을 찾아가 떼를 쓰는 와중에도 도미솔이나 봉영웅의 입장을 전혀 생각지 않는 것은 그가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인 때문일까.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른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봉선아를 동네에서 쫓아내던 배정자처럼. 그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태연히 남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이다. 고뇌하고 갈등하면서도 결코 손에 쥔 장난감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어떤 사실에 대해 안다고 반드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듯 말이다.

그런 점에서 조윤정(전혜빈 분)의 심술은 얼마나 악의적이면서 또한 유치한가. 말 그대로 심술이다. 직접적으로 도미솔에 위해를 가하지 못하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떼를 쓰듯 악다구니를 하고 도미솔이 곤란해지도록 그녀를 번거롭게 만드는 것 뿐이다. 결국 그녀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첫사랑인 제이슨과 외도까지 하고 만다. 결국 후회를 하고 마는 것을 순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고석빈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켜버린 때문이다.

조금은 불안한 생각도 든다. 사실 이런 막장드라마도 없다. 여주인공인 도미솔은 고등학교 때 이미 아이를 임신하여 낳았고, 그 아이가 도미솔의 어머니 봉선아에게 입적되어 고진국과의 결혼을 통해 고석빈과 사촌형제가 될 상황까지 와 있다. 더구나 도미솔의 외삼촌 봉우동(문천식 분)과 이소룡(이재윤 분)의 고모 이주리(이의정 분)마저 그 사이가 심상치 않으니. 도대체 이게 몇 겹의 관계인가 말이다. 그런데 느닷없는 조윤정의 외도. 상황이 지금 추세대로라면 한 번 더 꼬일 개연성이 있다. 그것도 아주 독하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계속 그런 부분을 간과하고 넘어가는 것은 그 과정에 대한 묘사가 너무 상세하고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략 10회 분량을 20회 넘게 방영하든 듯 그같은 설득에 할애하는 부분에 대해서 전혀 아까워하는 모습이 없다. 그래서 어느새 납득하고 넘어간다. 그럴 수도 있으려니. 아마 다른 드라마였다면 바로 막장 이야기가 나왔을 테지만 그래서 이 드라마는 괜찮다. 드라마에 있어 개연성이란 - 작가와 대본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정말이지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내가 이 드라마를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독기어린 표정에 어울리지 않게 어린아이같은 천진스런 모습이라니. 그 모순이 묘하게 납득이 간다.

이제 봉선아의 결혼식에 도미솔을 납치하려 나타난 사내들로 인해 다음주 또 한 번의 파란이 예고되고 있는데. 누구의 음모일까? 이야기가 상당히 급박하게 진행될 수도 있겠다. 고진국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을 이용한 음모가 도리어 드라마의 결말에 이르는 중대한 계기가 될 수 있을 지 모른다.

아무튼 재미있었다. 계속 볼까 망설이다가도 막상 보기 시작하면 도저히 눈을 떼지 못한다. 지루한가 싶다가도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흥미롭다. 감탄하게 되는 이유다. 꽤 괜찮은 드라마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