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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11 06:55

공주의 남자 "순수하기에 더 가련한 세령의 사랑..."

어른의 사정이 젊음의 순수를 희생시킨다!

 
드디어 세령(문채원 분)을 위한 시간이 돌아왔다. 그동안 역사에 눌려 있었다. 계유정난이라고 하는 첨예한 역사적 사건에 눌려 모두가 비장하게 인상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습은 참 정겹고 아름답다. 원래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했던 모습일 터다.

경혜공주(홍수현 분)가 하가한 나이가 원래는 문종 1년인 1451년으로 경혜공주의 나이 15살 때였다. 그리고 경혜공주가 16살이 되던 해 문종이 세상을 떠난다. 세령이 경혜공주보다 한참 나이가 더 많지 않은 이상 세령의 나이 또한 그 또래였을 것이다. 세상 모르고 그저 좋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만 쫓을 나이다. 수양대군의 야심을 알기 전까지 경혜공주 또한 그랬건만.

세상물정을 모르기에 그만큼 더 빠져들게 된다. 집안이니 왕이니 역모니 하는 것은 그녀에게는 너무 멀다. 원래 그 나이가 그런 나이대 아니던다. 더구나 곱게 규방에서만 자란 규수라면. 그저 처음 알게 된 사랑이 마냥 신기하고 좋기만 할 터다. 시대의 불길은 거세건만 제 몸 타는 줄도 모르고 날아다니는 부나방처럼. 순수하기에 그만큼 무모하다.

부모를 속이고 김승유(박시후 분)를 만나려 산사를 찾고, 정작 김승유를 만나서는 다 털어놓겠노라 다짐하고서도 만나서는 아무말 못하고 돌아서고, 심지어 김승유와의 만남을 들키고 집에 갇힌 상황에서조차 동생을 꼬드겨 경혜공주의 탄신을 축하한다는 핑계로 김승유를 만나러 간다. 철모르는 행위지만 그것 또한 용기다. 갓 첫사랑을 알게 된 사춘기 소녀의 무모함이다. 하기는 사춘기 소녀가 아니더라도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그렇게 바보가 되어 버린다.

어째서 문채원이었을까? 하지만 그저 해맑게 웃는 모습에서 그녀여야 했던 이유를 깨닫게 된다. 훤칠한 이마에 큰 눈, 동그란 얼굴, 아마 극중 세령에 비해 거의 10살 가까이 많은 나이일 것이다. 하지만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승유를 바라볼 때는 어쩜녀 이리 사랑스러운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운 듯 짓는 웃음에서 아직 사춘기 소녀에 불과한 세령이 보인다. 차마 김승유를 보기 민망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숨다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을 때는 첫사랑에 설레어하는 소녀의 설레는 수줍음이 보이는 것 같았다. 웃음이 선량하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마냥 그 첫사랑에 빠진 소녀 자신이 된 양 설레고 기분이 좋아진다. 연기력 이전에 배우가 갖는 매력일 것이다.

아무튼 이런 것이 바로 시대물의 매력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너무 쉬워졌다.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나 쉽게 사랑을 고백하고, 손을 잡는 거은 문제도 아니고 키스 정도는 그냥 한다. 하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차마 좋아하기에 얼굴 보기조차 두렵고 민망한. 감당 못할 벅찬 감정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런 시절이. 그런 것을 낭만이라 하는 것일 게다. 계곡에서 계곡물을 먹물삼아 시를 적어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다리를 건너면서는 손을 잡는데 그리 조심스럽다. 과연 부채를 사이에 둔 입맞춤이라는 것이 이보다 더 설렐 수 있을까. 김승유의 얼굴을 마주하고는 화들짝 놀라고, 느닷없는 입맞춤에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내 헤실헤실 풀리는 표정이란. 그런 시절이 아마도 있었을 텐데. 마냥 바보가 되어 버린 두 사람처럼 보는 사람도 아련한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순수와 낭만이 있던 시대로.

물론 그럼에도 시대는 흘러간다. 김승유와 세령이 시대와 상관없이 사랑을 나누듯, 시대 역시 김승유와 세령의 사정따위 상관없이 몇몇 주체들에 의해 무정하게 흘러간다. 문종이 죽고 단종이 즉위하고 김종서(이순재 분)가 고명대신으로써 단종을 보위하며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김영철 분)과 대립하게 된다. 야심도 야심이지만 김종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수양대군은 한명회(이희도 분) 등과 더불어 드디어 정난을 모의하게 된다. 더불어 김승유와 정종(이민우 분), 신면(송종호 분), 세령의 운명 또한 그들 자신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흘러가게 된다.

아버지이기에. 집안을 위해서. 혹은 살아하는 여인을 위해서. 차라리 공주와의 염문으로 죽을 뻔하고 아버지가 관직을 내놓아야 했을 때가 더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었다. 그런데 반가의 여식도 아닌 여인을 마음에 두게 되다니 그것이 더 수치스럽고 실망스럽다. 사랑조차도 부모의 사정에 따라야 한다. 부모의 신분을 쫓아, 부모의 체면을 따져가며, 비록 죄가 되기는 했지만 공주를 유혹했다면 그것은 아주 체면이 깎이는 일은 아니다. 단지 김종서의 아들이고 수양대군의 딸이라는 이유로 자기 이름조차 몸종인 여리의 이름을 대야 했던 세령처럼. 여전히 세령이 따다준 꽃을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짐짓 경혜공주는 세령을 차갑게 대해야 한다. 부모의 사정인 때문이다.

김승유와 신면 역시 평화로운 때라면 그저 사랑하는 여인을 사이에 두고 주먹다짐이나 하고 평생 못 볼 사이가 되고 말면 그만일 테지만. 아니 우정이라는 것도 그만하니 평생 못 볼 것처럼 하다가도 정종이 사이에서 다리를 놓아주먼 언제 그랬느냐는 듯 원망의 말 몇 마디 내뱉고는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무력한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감당하기 힘든 것들 뿐이라. 김승유의 아버지 김종서에게 모욕당하는 자신의 아버지 신숙주(이효정 분)를 보면서 신면이 느끼는 굴욕감과 분노, 질투가 그것일 것이다. 세령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순수한 감정마저도 단지 수양대군과 신숙주의 야심에 이용될 뿐이다. 우정을 배신했다는 오며을 써가며.

하기는 아무리 그렇다고 김승유에 대한 자신의 감정마저 김승유를 죽이려는 음모에 이용하려 드는 수양대군을 아버지로 둔 세령에 비하겠는가? 수양대군을 아버지로 두어 다행이라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 순간 수양대군 역시 조금은 찔리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양대군의 집념은 그조차도 김승유에 대한 증오로 바꾸어 더욱 그를 죽여야 하는 이유로 만들어 버린다. 어른이란 그렇게 제멋대로다. 단지 사랑을 했을 뿐이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야심에 이용되어 연인과 그 가족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김승유 역시 단지 세령을 사랑했을 뿐이건만 부모와 형제가 모두 죽임을 당하는 비극의 단초가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이 그리도 해맑았던 것이다. 이후 찾아올 어둠을 더욱 무겁게 암울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토록 순수하게 사랑했기에 그 순수마저도 부정당하고 이용당한다;. 어린아이의 철없음이라고. 그보다는 어른의 사정에 의해. 그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상처와 충격이란. 경혜공주가 그러했듯 세령 역시 어른이 되어야겠지. 부모가 없으면 아이는 한 순간에 어른이 되어 버린다.

의외로 신면을 대하는 세령의 단호한 연기가 좋다. 아무런 다른 감정이 없다는 듯 냉정하게 선을 긋는 무표정이 이후 세령의 변신을 기대하게 만든다. 물론 지금의 바보같은 순진함도 좋다. 그렇게 바보같은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시대라면. 사람이 순수해서 잘못이 아니라 순수한 것이 잘못이 되는 그 시대가 잘못인 것이다. 그 시대를 만든 수양대군이 아버지라는 것이 세령의 잘못인 것이고.

비극이 심화되려 한다.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가장 가까운 친구를 배신하고 그에게 칼을 겨누어야 하는 신면. 자신의 순수한 감정을 이용하여 아버지와 형제를 죽이려는 수양대군과 역시 자신의 감정을 비정한 야심에 이용당하는 세령. 피바람이 불고 많은 이들이 죽게 될 터다. 날이 밝으면 모든 것이 바뀌게 될 터다. 그들은 어찌 살아갈 것인가.

말하지만 당시 경혜공주의 나이가 16살이었다. 세령의 나이도 그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김승유는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그래봐야 애송이들이다. 시대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작은 이들. 눈앞에 닥친 일상만으로도 버거운 청춘들이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비극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 작고 무력하다. 다가올 불행마저 예감하지도 막지도 못할 만큼. 그들이 만든 것이 아니었기에.

기대하게 된다. 김종서와 함께 죽었어야 했을 김승유가 살아난 데는 세령의 역할이 있지 않았을까. 역시 무모하게 담을 넘는 예고편에 기대를 걸어 본다. 앞으로 닥칠 참혹한 운명과 그것을 딛고 헤쳐나가야 할 힘든 시련에 대해서도. 사랑에 빠진 인간은 강하다. 그것을 믿는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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