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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10 18:00

공주의 남자 "세령을 위한 변명"

서사멜로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부족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주인공 세령(문채원 분)에 대한 민폐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요체는 어떻게 아버지인 수양대군(김영철 분)이 왕위를 찬탈하려 음모를 꾸미고 있는데 혼자서만 그 사실을 모른 채 김승유(박시후 분)와의 사랑놀음에만 빠져 있는가? 그러나 과연?

일단 당시 세령의 나이부터 따져보자. 조선시대 여성의 일반적인 초혼연령이 15세에서 20세 사이였다. 그 전이나 그 후에도 혼인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이때 거의 대부분의 초혼이 치러지고 있었다. 수양대군에게 굳이 세령을 출가시키지 못할 다른 이유가 없다면 세령의 나이는 아무리 많아야 20살보다 아래라는 뜻이 된다.

실제 세령과 또래로 묘사되고 있는 경혜공주(홍수현 분)만 하더라도 문종이 승하하던 1452년 1436년생으로 우리나이로 갓 17살이 되고 있었다. 참고로 경혜공주가 정종(이민우 분)에게 하가하여 출합한 것이 문종 1년 15살 때였고, 정종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세조에 의해 능지처참당한 것이 그녀가 22살 때인 1461년이었다. 참으로 어린 나이에 많은 험한 일을 겪은 불행한 여성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채 마흔을 살지 못하고 1473년 3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아무튼 세령과 경혜공주가 드라마에서 묘사된 대로 서로 또래라면 세령의 나이 또한 우리 나이로 17살, 만으로 16살 언저리가 될 것이다. 딱 요즘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의 나이다. 과연 그 나이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게 될까? 역사를 고민할까? 시대를 갈등할까? 지금 세상이 어찌 돌아가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헤아리고 있을까?

사실 그것은 경혜공주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문종(정동환 분)의 병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고 숙부인 수양대군의 야심을 깨닫기까지 그녀 또한 자신을 가르치러 온 종학의 학사들을 짓궂게 골탕먹이던 철부지에 불과했었다. 아버지의 별과 숙부 수양으로부터 그 생명마저 위협받고 있는 동생의 존재가 그녀로 하여금 일찌감치 어른이 되게 했을 뿐. 원래 부모의 그늘이 거둬지면 아이는 빨리 어른이 되어 간다. 그에 비하면 세령에게는 부모가 모두 건강하니까.

더구나 세령은 여성이다. 그것도 대군가의 여식이다. 아무리 조선전기 여성의 지위가 조선후기보다는 많이 나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전근대 남성중심의 사회에 속한 여성이었다. 오히려 지배계급에 속해 있기에 교양과 품위에 대한 압박마저 상당했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 표정조차 마음대로 감정을 드러내어 짓지 못하고 항상 신분에 어울리는 모습을 갖출 것을 강요당해 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세령의 입장에서 아버지에게, 하물며 3족을 멸한다는 역모라는 중대한 죄에 대해 드러내 놓고 따져물을 수 있었을까? 설사 직접 묻더라도 한 번 아버지인 수양대군이 아니라 하면 그대로 믿고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직접 다른 사람에게 물어 알아본다는 것은 더 무리일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수양대군 자신이 꾸미는 일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꾸미는 일을 그 딸에게 고해바칠 간 큰 사람이 있겠는가. 그것도 좋은 일이라면 모를까 역모라는 입에 담기도 두려운 흉한 일에 대한 이야기다. 경혜공주 역시 그래서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세령과 더불어 그에 대해 전혀 까맣게 모르고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나이까지 어리고 더구나 귀한 신분의 여성이라면.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가 꾸미는 흉한 일에 대해 세령이 알아낼 수 있는 가능성은?

물론 그럼에도 세령도 바보가 아니기에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가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다. 세령이 굳이 출합하는 경혜공주를 찾아가 시집가는 딸에게 준다는 물건들을 직접 만들어 건넨 것이 그런 의미일 것이다. 김승유가 친구이며 자기를 죽이려 했던 신숙주를 아비로 둔 신면(송종호 분)에게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의 일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아무리 그래도 친아버지인 수양대군과 적대할 수도, 그렇다고 수양대군의 뜻을 쫓아 김승유와 경혜공주를 적으로 돌릴 수도 없을 테니 그녀로써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달까? 타협일 것이다. 무기력하기 이를 데 없는.

하기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사랑이다. 이제 갓 사춘기 아가씨가, 더구나 규방에서 곱게 가두어 자라느라 면역이 전혀 안 되어 있는 그녀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도 주위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랑에 빠진 초기증세다. 김승유의 말처럼 그것이 거부한다고 거부되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외면하고 무시하려 하면 그래서 더 집착하게 되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낙랑공주는 그래서 호동왕자의 뜻에 따라 나라를 지켜주던 자명고마저 찢었는데. 과연 김승유에 대한 감정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을 세령에게 조선이니 왕위니 하는 것이 귀에 들어오기나 할까?

그게 문제인 것이다. 이제 10대의 사춘기 소녀가 첫사랑에 빠졌다. 알고 보니 그 상대가 아버지와 적대하는 집안의 자제였다. 아버지가 꾸미는 일이 있어 친구며 연인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이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아버지를 거역할 수도 없고. 더욱 김승유에 대한 감정으로 그런 다른 사정들따위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흔히 보게 되는 설정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민폐가 되고 심지어 비호감이 된다. 어째서? 개별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 된다. 과연 세령의 나이 때 자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행동하고 있었는가? 그것이 서사멜로다. 역사라는 거대서사 속에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작은 개인의 개별서사. 계유정난이라는 완결된 서사 속에 존재하는 김승유와 세령이라는 미완의 로맨스.

제작진의 실수일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는 거대서사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국가, 민족, 시대, 역사... 그에 비하면 개인이란 여전히 그에 종속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어디 시대가 이러한데 그런 짓을. 시절이 이러한데 어찌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는가. 한국인으로써. 혹은 다른 무엇으로써. 개인에게 주어진 시대의 사명이며 당위다. 설사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은 여전한 현재의 이야기다.

분리가 잘 안 되는 것이다. 완결된 이야기인데도 완결되지 않은 것처럼. 세령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조금 더 능동적으로 알고 대처한다고 이미 정해진 역사가 바뀔 것도 아닌데 세령에게 이래라 저래라. 정작 그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세령 자신일 터다. 하지만 이미 완결된 역사 속에서 그녀에게 정해진 답을 찾으라 한다. 그 요구에 따르지 않을 때 그녀는 밉보이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미 역사의 한 부분으로써 위화감 없이 존재하는 경혜공주란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가. 그대로 보고 동정하면 된다.

그런 정서를 이해했어야 했던만. 정히 서사멜로를 만들려 했다면 배경이 되는 역사의 비중을 지금보다 더 줄였어야 했다. 역사라는 거대서사와 사랑이라는 개별서사를 분리하여 볼 줄 아는 사람에기는 지금이 매우 적절한 균형이고 조화이지만, 거대서사에 대한 집착이 강할 경우 지나치게 디테일하고 비중이 큰 거대서사는 개별서사를 먹어버릴 수 있을 것이니. 필자 개인적으로 무척 좋게 보았던 역사파트와 로맨스파트의 분리가 안 좋게 작용한 결과랄까?

물론 홍수현의 잘못은 아니다. 그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역을 충실하게 소화해낸 것밖에 없다. 문채원 역시 작가가 드라마를 쓰면서 염두에 둔 세령의 모습은 지금 그녀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 그대로일 터다. 다만 거대서사를 선호하는 대중의 취향이 그 균형을 깨지 않았겠는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작가지만 작품을 정의하는 것은 소비자다. 작가는 작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지만 그것을 정의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다. 시장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 이런 난감한 결과도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동시간 시청율 1위가 원래 의도한 김승유와 세령의 로맨스로 인한 것이면 좋았을 테지만 경혜공주와 정종, 그리고 수양대군과 김종서가 부딪히는 계유정난 때문이니. 아쉬운 부분이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참 아깝도록 잘 만든 서사멜로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묵직하니 무게감있는 역사파트와 한결 가볍고 유쾌한 멜로 파트의 조화가. 다만 시청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정작 목표한 김승유와 세령의 로맨스를 죽이는 결과를 낳았달까? 이러다 이야기가 흐트러지지는 않을지.

하여튼 돌이켜 보면 필자 또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들을 살면서 꽤 맞았을 것이다. 과연 그러한 때 필자는 어떻게 행동했는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고민하고 있었는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었는가. 역사란 개인과 아주 밀접한 것 같지만 항상 그런 것만도 아니다. 밀접한 가운데서도 도저히 침범할 수 있는 개인의 영역이라는 것이 있다. 이 경우는 사랑일 터다.

어느 순간 사랑에 빠진 10대 소녀에게. 그녀에게 무엇을 물으려 하는가. 무엇을 요구하려 하는가. 서사멜로라는 장르에 대한 근본적 이해일 터다. 사람은 결국 그러면서 살아가게 된다. 시대와 상관없이. 그러나 역사의 한 부분으로써. 어려운 것이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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