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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10 08:16

계백 "말로 들려주는 액션은 더 많은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드라마도 아니고 무협드라마도 아니고...

 
서기 475년 장수왕에 의해 한성이 함락당하고 개로왕이 죽은 이후 백제왕들의 운명이란 참으로 안쓰러울 정도였다. 개로왕의 뒤를 이은 문주왕은 좌평 해구가 보낸 자객에게 죽임을 당했고, 해구에 의해 그 뒤를 이은 삼근왕은 다시 해구가 좌평 진남에게 제거되자 이듬해 겨우 즉위 3년째에 갑작스레 죽음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즉위한 것이 바로 동성왕이었다.

사료는 성왕에 의해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고 남부여로 나라 이름을 바꾸기 전에 동성왕 때에 이미 왕이 사비 일대로 사냥을 나서고 있었다 기록하고 있었다. 하필 동성왕은 말년에 귀족들과 대립하다가 위사좌평 백가에게 살해당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동성왕 사후 무령왕은 백가를 죽이고 22담로에 왕족을 임명하는 등 왕권을 강화하고 있었고, 무령왕의 아들 성왕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있었다. 사비의 사(泗)는 사택씨의 사(沙)로 비정된다. 아마 이때쯤 백제의 왕실은 사택씨와 손을 잡고 있었을 것이다.

성왕이 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무리하게 신라를 공격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난 뒤 위덕왕이 30년이라는 상당히 긴 재위기간을 무리없이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토착세력과의 유착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실제 위덕왕이 죽고 그 아들인 아좌태자를 대신해서 동생인 혜왕이 고령임에도 왕위를 이어받고 다시 그의 아들인 법왕에게로 왕위가 이어지는 과정에서는 어떤 백제 지배층 내부의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왕이 즉위한지 2년만에 죽은 뒤 위덕왕의 서자, 혹은 서손으로 추정되는 무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사택씨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국사기에 무왕이 법왕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고, 무왕이 완공한 미륵사가 법왕에 의해 그 터를 닦았다는 것은 그같은 관계를 유추할 수 있도록 해준다. 천도를 목적으로 터를 닦았지만 완성된 것은 불교의 도량이었으며 법왕은 불교에 깊이 빠져 폐정을 저지르고 있었다. 사택지적비를 통해 드러난 사택부인의 마음 또한 상당히 간절하다.

다시 말해 무왕대에 무왕과 사택씨와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운명공동체와도 같은 관계였다는 것이다. 다른 귀족세력을 누르기 위해서라도 무왕에게는 사택씨의 세력이 필요했다. 사택씨에게 역시 무왕이란 다른 귀족세력을 누르고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해주는 확실한 명분이었다. 그래서 사택씨는 굳이 한미한 신분이던 무왕을 딸까지 주어가며 왕위에 올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무왕은 그러한 사택씨의 도움에 힘입어 왕으로써 권위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 독자적인 세력이 부족했던 무왕에게도, 그렇다고 다른 귀족세력을 모두 누를 수 있는 힘까지는 없었던 사택씨에게도 서로는 간절히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무왕과 사택씨가 드라마에서처럼 서로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물론 어느 정도는 서로 견제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덕왕이 죽고 그 아들이 배제된 채 동생인 혜왕이 즉위하는 과정에서는 다른 정치세력이 관여했던 혐의가 있다. 법왕이 즉위 2년만에 죽고 위덕왕의 서자인 무왕이 즉위하게 되는 과정 역시 그렇다. 사택씨 입장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왕을 세우려 해도 그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발생할 지 모른다. 차라리 무왕을 옹립하여 그의 권위를 세워주느니만 못한 것이다. 과거 무령왕과 성왕이 그랬듯이. 위덕왕도 덕분에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왕으로 있으며 천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위덕왕이 죽고 나서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무왕 입장에서도 확실한 자기 세력도 없는데 사택씨와 대립한다는 것은 비극만 반복할 뿐이다.

권신이라는 게 마냥 왕을 무시하고 능멸하려 든다 해서 권신이 아니다. 때로 권신은 누구보다 왕에게 충성스런 충신의 모습도 보인다. 왕권이 바로 서야 자신의 권위도 바로 설 것이므로. 왕의 권위를 세워줌으로써 왕을 낀 자신의 권위도 더 높아진다. 차라리 사택씨를 그렇게 묘사했다면 좋았을 것을. 무왕을 내세워 다른 대성팔족등의 귀족들을 견제하면서도, 다시 귀족세력을 규합하여 왕을 견제한다. 더불어 무왕 역시 다른 대성팔족들에게도 손을 내밀므로써 사택씨의 충성을 이끌어낸다. 차라리 무왕에 충성을 다하며 그와 함께 다른 귀족들과 대립하며 때로 무왕을 위협하는 사택비와 사택적덕의 모습을 그렸으면 어땠을까? 혹은 무령왕이 담로로 내보냈던 왕의 가장 가까운 친위세력인 부여씨의 왕족 역시.

하기는 그래서 사택비는 전혀 시대와 어울리지도 않는 국가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있는 것일 게다. 무왕이라는 국왕 위에 백제라는 나라가 있다. 사실 모순이다. 왕이란 하늘이 내린 자리인데 이미 사택씨는 위제단을 동원해 혜왕과 법왕을 죽이고 있었다. 백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리고 그를 위해 대성팔족을 규합하고. 왕을 필요치 않는 국가라는 이데올로기가 왕권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계백>이 갖는 가장 큰 모순이다. 아무리 그래도 왕비라는 이유로 아버지 앞에서 자기가 곧 사택가문이며 백제라 하다니. 당시 시대에 있어 가문은 곧 나라보다도 우선했다. 조선 이후에나 나타날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아무튼 어차피 역사시대에 대한 고증은 포기했다고 치고, 나름대로 상당히 흥미로운 머리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은 공성계인 것이다. 상대가 주도권을 쥐었을 때 재빨리 모든 것을 놓아 버림으로써 오히려 상대를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그다지 영리하지 않은, 성급하고 행동이 빠른 사람에게 그것은 오히려 자충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격다짐으로 일단 밀어붙이고 볼 터이니. 하지만 오히려 영리하고 생각이 많기에 그같은 허점들은 상대를 주저하게끔 만들 것이다. 주저하게 되면 이쪽에도 기회가 생긴다. 실제 무왕(최종환 분)은 사택비(오연수 분)의 계산대로 사택비와 사택적덕(김병기 분)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알지 못해 신중을 기하느라 때를 놓치고 만다. 계유정난 당시 소수의 사병들만을 이끌고 김종서와 황보인등을 기습하여 살해함으로써 권력을 손에 쥔 세조의 결단력과 비교된다.

선왕들인 혜왕과 법왕의 죽음과 그리고 심지어 왕 자신의 부인인 선화황후의  죽음과 관련한 중요한 단서인 살생부를 손에 넣고서도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모습이라니. 정치란 정의가 아니라 의지다. 대의와 명분은 사실 다른 말이다. 명분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대의란 속에 품은 뜻이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칼을 품고, 겉으로는 칼을 겨누고서도 다른 손으로는 뒤에서 손을 잡는 것. 선왕들의 죽음이나 아내의 죽음마저 무왕에게는 사택씨를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는 한 수단으로만 보일 뿐이다. 최악의 경우 무왕은 그것들을 이용해 자신의 왕위를 보전하고 목숨을 지킬 것이다. 권력의 비정함일 것이다.

다만 역시 지적하는 너무 등장인물이 뻔하다. 갈등구도가 무왕과 사택씨 단 하나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인물도 적고 갈등도 단순하다. 나올 수 있는 이야기 자체도 한계가 있는데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만이 열심히 떠들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비정하고 첨예한 정치싸움이 펼쳐지려는데 전혀 아무런 긴장도 긴박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그저 입에서 흘러나오니 말일 뿐 그 말에서 어떤 실감도 느끼지 못한다. 차라리 사택씨가 무왕에 충성을 다하며 가문의 이익을 챙기는 권신으로 그려졌으면 하는 한 이유다. 그랬다면 무왕과 사택씨, 그리고 다른 대성팔족이 보다 복잡한 관계를 이룰 수 있었을 텐데. 더불어 부여씨로 비정되는 계백(이현우 분) 역시 갈등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다.

결국 왕에 대한 충성이라는 대의를 위해 을녀(김혜선 분)는 죽임을 당하고, 그 을녀의 죽음에 무진(차인표 분)은 왕에 대한 충성이라는 오랜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한 번도 아내라 생각한 적 없는 을녀에 대한 의리라는 명분이 왕에 대한 충성이라는 대의를 대신한 셈이랄까? 비로소 계백 역시 무진과 더불어 그에게서 배울 기회를 가지게 되고. 다시 시간은 흐를 것이다. 계백이 의자 앞에 나타나 그를 돕게 되기까지. 이제까지의 전개는 그때를 위한 준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은고도, 그리고 계백의 의붓형 역시.

참 아쉽다. 사택비의 캐릭터가 무척 흥미롭다. 선과 악의 양면성을 가진 여인. 감성과 이성이 모두 발달하여 항상 고뇌하며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면서도 단호하고 강인하다. 복잡하고 입체적은 그녀의 내면을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내 보여줄 수도 있으련만. 그러나 워낙 관계가 단순해서. 갈등구조가 단순하다 보니 그녀의 양면성은 무진과의 일을 제외하면 단편적으로만 드러나 보일 뿐이다. 계속 지적하는 것이다. 너무 휑하다.

궁남원에서도 단지 무진과 위제단만이 있을 뿐이었다. 사택비와 있을 때는 무진과 사택비 뿐이었다. 사택비와 사택적덕, 사택비와 무왕, 무왕과 무진, 무왕과 윤충(정성모 분), 무왕과 사걸(서범식 분), 무왕과 의자(노영학 분), 계백(이현우 분)과 은고(박은빈 분), 계백과 무진, 단 한 번도 셋 이상이 모이는 적이 없다. 둘이 모여 서로의 입장만을 주장하고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더 깊이 들어가는 법도 없고, 더 넓게 확장하는 법도 없다. 딱 대본이라는 느낌 그대로.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그저 모여서 정해진 이야기만 하고 나오는 모양새다. 그것도 지극히 단순화된 개인 대 개인의 관계로써. 허할 수밖에 없다.

연기가 그리 썩 나쁜 편은 아니다. 나쁘다기에는 오히려 좋다. 그러나 한참 연기하는 와중에도 전혀 몰입하지 못하고 휑하다 여기고 마는 것은 그만큼 주위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항상 모여서 한 마디라도 대사를 하게 되는 인물은 둘이나 셋, 그나마도 거의 일방적인 대화를 뿐이다.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야 그 가운데 자기를 이입하기도 쉬우련만 무왕과 사택비의 화마저 그 과정의 서사가 생략된 탓에 공허해 보이니. 그저 좁은 무대 위에 간단한 소품만을 늘어놓고 몇몇 배우들이 소리 높여 떠드는 소품 연극을 보는 것 같다. 그쪽 출신이었을까?

그렇다고 차라리 처음 예상한대로 액션이라도 강조했다면. 인물간의 갈등구도를 단순화하는 대신 화려하고 강렬한 액션으로써 그것을 대신하는 것이다. 은고의 아버지 한벽 역시 시대에도 맞지 않는 상소를 하기보다 무리를 규합하여 사택씨를 공격하려 했다는 식으로 설정하는 쪽이 더 보기에도 흥미로웠을 것이다. 아니면 말로써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다면 보다 복잡한 구성으로 흥미를 높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항상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무언가 애매하다.

말로 하는 액션은 몸으로 하는 액션보다 더 많은 노력과 주의를 필요로 한다. 몸으로 하는 액션처럼 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시청자가 스스로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을만한 보다 첨예한 논리와 근거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고 보니 백제는 사료조차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터라. 아는 것도 부족하다. 그래서 더 공허한 것 아닐까? 도대체 하는 말이며 행동, 그들이 머무는 시간과 공간마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공감이 되지 않는다.

아쉬운 것이다. 보다 첨예하게 백제라고 하는 역사를 재구성해내던가, 그도 아니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확실한 재미를 주던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 그래도 아직까지는 단순한 대립구도 가운데 보이는 액션이 흥미를 끌었다. 사택비의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끝인 것인가. 말로 하는 액션이란 한계가 있다.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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