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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09 07:37

계백 "황제가 된 백제 무왕..."

가련한 사택비와 어리석은 의자, 그리고 무진의 무협액션...

 
항상 불만이었다. 여기도 황제, 저기도 황제, 오나가나 조선을 제외하고는 죄다 황제다. 심지어 백제의 무왕마저도 황제라 불리고 있다. 한반도 역사상 황제라 불렸던 군주는 단 셋, 고려의 광종과 조선 - 아니 대한제국의 고종과 순종 뿐이었음에도.

물론 짐은 괜찮다. 폐하도 역시 괜찮다. 태자니 태후니 하는 호칭도 당시 쓰였던 호칭들이었다. 바로 황제라는 칭호 자체가 무의미한 이유일 것이다. 왕이 곧 황제였으니까. 황제가 곧 왕이었다. 원래 주나라 때까지 왕이라 불리던 것이 전국시대를 거치며 너도나도 왕을 자처하자 진시황이 그것을 통일하며 왕 위에 황제라는 칭호를 새로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황제란 칭호 자체도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인 삼황과 오제에서 따온 것으로써 하나의 고유명사에 가까웠다. 중화라고 하는 이데올로기가 동아시아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정히 왕 위에 더 높은 존재를 두고자 한다면 한반도의 경우는 그래서 태왕이니 대왕이니 하는 호칭을 쓰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광개토대왕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고구려의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일 것이고, 또한 신라의 법흥대왕일 것이다. 이들은 모두 각각 영락과 건원이라는 연호를 정하여 쓰고 있었다. 연호란 한 마디로 시간을 기록하는 기준일 것이니 독자적으로 연호를 정하여 쓰도록 한다는 것은 즉 자신이 곧 세계의 중심임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현재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서기가 곧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정해진 연호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정한 기준에 따라 시간을 헤아리고 그것을 역사에 기록한다.

그래서 고려의 광종도 황제를 칭할 때는 준풍과 광덕이라는 연호를 스스로 정하여 쓰고 있었다. 대한제국 역시 황제를 칭하면서, 아니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의해 거의 반강제로 청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자주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이미 건양이라는 연호를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한제국에서는 고종이 광무, 순종이 융희의 연호를 쓰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황제가 즉위하면, 혹은 스스로 황제를 칭하려 할 때면 연호를 새로 정하여 쓰는 것이 관례가 되고 있었다. 거꾸로 신라의 진덕여왕이 독자적인 연호인 태화를 포기하고 당의 영휘로써 여호를 빌려쓴 것은 그만큼 당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정치적 표현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광개토대왕과 법흥왕이 스스로를 칭한 호칭이 호태왕과 대왕이었다. 과연 황제라 하지 않고 뒤에 왕을 붙였다 해서 광개토대왕과 법흥왕의 격이 황제에 비해서 떨어지는가? 여전히 고구려와 신라 국내에서는 폐하였고, 그 자식은 태자였으며, 모후는 태후였다. 다만 그들의 세계관에서 세상의 모든 왕 가운데 가장 으뜸인 왕이 태왕이고 대왕이었던 것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태왕과 대왕의 호칭은 고구려와 신라의 중앙정부가 지방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붙여진 것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지방세력을 아우르는 왕중의 왕으로써.

과연 무왕대의 백제 왕실이 스스로 왕중의 왕임을 선언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가. 드라마에서도 나오듯 무왕 이전까지 수많은 백제의 왕들이 짧은 재위기간을 끝으로 역사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사택씨 역시 대성팔족의 하나로써 유력토호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고, 여전히 백제의 지방은 수많은 지방세력들이 거의 반독립상태로 지배하고 있었다. 무왕은 사택씨에 의해, 사택씨와 손을 잡고, 그들을 등에 업고 사비에서 남부여라 고친 나라를 다스리던 군주였다. 그런데 황제라...

뿌리깊은 중국에 대한 컴플렉스의 결과일까? 중국에 사대하여 굴복했던 역사에 대한 반발이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자존광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기록에도 없는 것을 굳이 중국의 것을 빌려가며. 그저 왕이라 칭하고 폐하라 부르면 되는 것을 굳이 황제라 하고, 황후라 하고. 참고로 조선에서 왕의 부인을 왕후라 불렀는데 후(后)라는 자체가 황제이 부인을 칭하던 것이었다. 왕의 부인은 비(妃), 왕자의 부인이 빈(嬪), 대부의 부인이 말 그대로 부인이다. 말이야 전하이고 세자이지만 스스로 종(宗)과 조(祖)를 붙여 묘호를 짓던 불량한 번신이 곧 조선이었다. 굳이 황후가 아니어도 된다.

그리고 위제회라는 것도 그렇다. 백제를 위한 비밀결사라. 신라의 피를 거부하고 백제인의 피에 의한 위대한 백제를 추구하며. 물론 근대 이전이라고 종족에 대한 집착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로마인이라 불렀고, 스키타이인이라 불렀으며, 그리스인은 아카이아인과 도리아인으로 크게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써 정착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국가와 종족을 동일시하는 그같은 자발적 행동과 역할을 위한 이념은 19세기 이후에나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백제 자신이 부여계가 남하하여 한강유역의 마한을 정복하여 세워진 나라였는데 과연. 오히려 피지배층은 지배층인 부여계보다는 신라인에 더 가까웠다.

오히려 비장해서 더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던 장면이었다. 더구나 위제회를 이끄는 것은 사택씨 하나일 텐데. 사택씨가 곧 백제다? 그렇다면 먼저 백제왕을 죽이기보다 백제를 분열시키는 백제의 귀족들부터 죽였어야 했을 것이다. 대성팔족이 권력을 나누어 가진 채 왕만 죽여서 하나된 백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물며 부국강병은 어림도 없다. 차라리 말하는 사택비(오연수 분)가 가엾기까지 했다. 그녀의 비장함과는 달리 주위는 전혀 다른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제각각 움직이고 있으니.

사택비도 알고 보면 참 불쌍한 여자일 것이다. 사택비가 보이는 호감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무진(차인표 분)을 보라. 워낙에 무뚝뚝한 캐릭터라서인지 단지 눈을 크게 뜨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놀라고 당황해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뜨거운 차를 다 번에 들이키고,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고. 그러나 단지 무진이 탄 말이 날뛰어 무진이 다쳤다는 한 마디로 관리인을 베어버리는 배포는 여염의 아낙이 아닌 권력을 쥔 왕후의 그것이었다. 무진의 부인으로써 그랬다가는 견뎌내지 못한다. 왕이 되거나 그에 준하는 지위를 손에 넣거나. 순진한 무진이 감당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그것이 못내 상처가 되었던 것은 그녀 또한 그저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여인이기 때문이었을 테고. 정치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었을 테지만 무왕은 또 왜 하필 그녀를 비로써 선택했는가.

실체도 없는 백제와 백제인, 그러나 알고 보면 사택씨의 권력을 위해서. 어쩌면 그녀 역시 속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 사택적덕(김병기 분)에게 속아 사택씨의 부귀영화를 위해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사택적덕은 가문을 위해서 쉽게 그녀의 목숨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일 게다. 그녀는 백제를 위한다 생각하지만 정작 사택적덕도 위제회도 전혀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다. 오히려 이 쪽이 더 개연성이나 고증에 맞을 것이다.

아무튼 역시 아무리 영악한 척 해도 의자(노영학 분)도 아직은 어린 아이라는 것일 게다. 그런 식으로 대놓고 바보흉내 내는데 조금만 머리를 쓸 줄 안다면 누가 모를 수 있을까? 사람이란 당연히 가져야 하는 감정이 있고, 오히려 어리석고 무능하기에 보여야 하는 반응이 있는 것이다. 사택비가 하지 말라 하는데도 굳이 생모인 선화황후의 위패를 태워버리는 그 옹고집을 무어라 해석해야 할까? 차라리 선화황후를 그리워하며 그래서 엎드려 울면서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쪽이 나았을 것이다. 사택비를 원망하고 그래서 반항도 해 보지만 끝내 두려워서 좌절하고 마는. 고집은 있지만 영리하지는 못하다. 의지는 있지만 명석하지도 못하다. 파국에 대한 복선일까. 결국 그래서 사택비에 의해 죽을 위험을 넘기고 마니. 이런 정도에 불과하니 그 끝도 그리 한심했다.

의상은 참 흥미로웠다. 어쩐지 중국과 일본의 고대복식을 적절히 섞어 놓은 것 같은 것이. 가만 보고 있으면 일본의 고대의상인 듯 싶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중국의 복식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참고로 일본의 복식은 당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것이다. 일본과 함께 당의 영향을 공유하고 있었다. 다만 어떤 것들은 고대보다는 중세와 더 어울리지 않을까. 갑옷의 형태도 일본의 찰갑인 오요로이의 원형을 참고하여 상당히 잘 고증해 만들고 있었다. 어쩐지 실제 그런 옷을 입고 그런 갑주를 걸치고 싸웠을 것 같다. 몇 안 되는 감탄하는 부분이다.

더불어 위제회에서의 무진의 액션 역시 무협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할 것이다. 중국의 무협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비밀결사와 그 비밀결사로 잠입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살수. 하필 무진이 한쪽 팔이 없는 것이며 그것을 이용해 소매로 적을 공격하는 것도 역시 많이 익숙한 작면이다. 천정으로부터 흰 천이 떨어져내리고, 그 천을 베며 적과 싸우고. 검은 복장의 적과 하얗게 드리워진 천, 그리고 붉은 바닥, 푸른 빛이 도는 어두운 배후. 다만 동선이 조금만 더 깔끔했더라면. 무언가 동선이 거칠게 부딪히는 것이 어색하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어쨌거나 문제일 것이다. 지나치게 몇몇 인물을 중심으로 사변으로만 이야기가 흘러간다. 백제라고 하는 국가단위에서 일들이 벌어지는데 결국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것은 무왕과 무진, 의자, 사택비 등 몇몇 인물들에 불과하다. 당연히 사건의 폭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나오는 말들도 하는 행동도 짓는 표정들까지도. 캐릭터들마저 자꾸 평면이 되어간다. 예상하게 만든다. 이럴 것이다. 혹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쉽게 납득하게 만들고. 한 마디로 뻔하다.

기획단계의 문제일까? 신라와의 싸움이 시작되면 무언가 달라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누가 제목이 계백 아니랄까봐 이런 식으로 몇몇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춰서는 일찌감치 소모되고 말 뿐이다. 벌써 많이 소모되었다. 배우란 누구 말처럼 비밀이 있어야 하는데. 매일같이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식으로 반복해 모두 보여주고 말 테니. 지겨워지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그다지 기대는 없다. 다만 무협으로써 영상은 꽤 멋지지 않은가. 무진의 액션이며, 무진이 싸우는 배경이며, 영상들이. 무협은 기대하며 보는 것이 아니다. 습관으로 본다. 장르의 특징이며 한계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결국은 습관으로 보게 된다. 딱 그에 어울리는 드라마 아니었을까.

역시 습관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유일하게 기대하는 부분이다. 7세기 백제를 배경으로, 그 실재했던 역사 속에 어떻게 무협이라는 허구를 접목시킬 것인가. 아직까지는 많이 허술하고 아쉽지만. 그래도 차인표의 당황한 표정 하나로 용서가 된다. 아쉬웠던 위제회와의 액션 역시.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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