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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08 16:30

남자의 자격 "베이스가 재미없는 이유..."

합창이란 우리네 살아가는 원리다!

필자 역시 중학교 다닐 때 잠깐 합창을 한 적이 있었다. 본격적인 합창은 아니었고 반대항 학교대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우승하여 합창부가 없었던 학교를 대표해서 이런저런 대회에 참가하고 하는 정도였다. 그때 아마 워낙 변성기 전인 학생들이 많아서 파트를 소프라노, 알토, 베이스 이런 식으로 남녀 구분 없이 나누었을 것이다.

솔직히 재미없었다. 필자의 파트가 알토였는데, 이 알토가 그렇게 애매했다. 베이스처럼 깔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프라노처럼 멜로디라인이 화려하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항상 탐을 냈다. 베이스의 묵직함을. 그리고 무엇보다 소프라노의 화려함을. 아마 마지막 서울대회에서 최악의 공연을 하고 말았던 것은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녀석들이 많았던 때문일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하는 합창에 대한 평가가 실력은 부족하지만 하모니는 좋다는 것이었으니까. 각학교의 합창부와 겨루어 어중이떠중이 모인 한 반으로 이루어진 우리 반이 항상 좋은 성적으로 예선을 통과했던 비결이었다. 그런데 지도교사였던 음악선생님이 화를 낼 정도로 엉망이었으니.

아마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럴 것이다. 어딘가에는 소프라노가 있고 테너가 있다. 치솟는 맑은 고음과 윽박지르는 듯한 우렁찬 고음. 그리고 그 넓은 음역대에서 나오는 인간의 귀와 감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하지만 소프라노도 테너도 알토와 베이스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그다지 멋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않고, 귀에 확 꽂히는 것도 없는 재미없는 알토와 배이스의 존재가 없다면 합창이란 성립할 수 없다.

어느 건물에든 온갖 오물들로 더러워진 화장실마저 마다하지 않고 깨끗이 청소해주는 청소부들이 계신다. 아침에 집을 나섰을 때 길가에 뒹구는 쓰레기 대신 말끔한 모습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미리 앞서서 그 쓰레기를 치워주시는 환경미화원들이 계시기 때문인 것이다. 과연 정화조를 청소하는 이들이 없을 때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기름때 묻혀가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하철을 정비하고 버스를 정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어디 갈 때 불편함이 없다.

방송을 보고 음악을 들을 때도 무대에서 직접 대중을 마주하는 스타의 뒤에도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관계자들이 있기에 우리는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사람들이 무대 앞의 화려함에 도취되어 자기 역할을 포기한다고 생각해 보라.

당시 우리반 꼴이 나는 것이다. 알토인데도 화려한 소프라노의 멜로디를 탐내 소프라노를 부르고, 베이스가 음역도 되지 않는데 소프라노를 따라가고, 합창은 무너져 버린다.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한 꿀포츠 김성록씨조차 혼자서 목소리가 튀게 되면 합창이 아니게 된다. 베이스가 그 지루한 멜로디를 감수하지 않으면 합창은 사상누각으로 무너지고 만다. 유명 호텔의 CEO로써 청춘합창단에 참여한 권대욱씨의 말이 그런 의미일 것이다. 아니 CEO쯤 되기에 오히려 더 낮은 곳에서 모두를 받쳐주고 감싸줄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리더와 나쁜 리더의 차이가 그것이다. 좋은 리더는 책임은 자기가 지고 대신 공은 아랫사람에게 돌린다. 나쁜 리더는 책임은 아랫사람에게 돌리고 공은 자기가 가지려 든다. 화려함을 탐하는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꼭 필요한 역할을 스스로 맡으려 하는가. 리더란 가장 화려한 높은 자리에서 남들을 굽어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을 지고 무리를 떠받치고 이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리더가 자기 욕심만을 챙기려 들 때 그 무리는 무너지고 만다. 아마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믿음과는 정반대가 아닐까.

리더는 좋은 것만을. 화려하고 눈에 보이는 대단한 것들만을. 그리고 나머지가 그 리더를 떠받친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불거져왔던가. 눈에 보이는 화려함만을 쫓은 결과 정작 필요한 곳에는 사람이 없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의 경우만도 정작 그 일을 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기에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결과 외국인노동자를 데려다 쓰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과연 같은 대우를 해준다고 했을 때 외국인노동자가 하던 일을 대신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경영자 입장에서도 말이 통화고 문화적으로도 이질감이 없는 내국인 노동자를 더 선호하기 마련이다.

경제력과 직업,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따른 차별. 별로 대단하지 못하다 해서 멸시하고. 무시하고. 차별하고. 그래서 오로지 위로만. 저 위로만. 모든 사람들이 테너를 바라고 소프라노를 바라며. 지루하다고 베이스를 포기하고. 재미없다고 알토이기를 거부하고. 대한민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높은 대학진학율도 그 결과가 아니겠는가. 지금 하는 일이 남부끄럽기에. 그래서 자식에게는 그 일을 시키고 싶지 않다. 대학은 과거 거의 유일한 신분상승의 통로였다. 당연히 대학을 나오고 나면 그같은 비천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를 만드는데도 엑스트라는 필요한 법이건만. 가수가 무대를 꾸미려 해도 세션과 퍼포머가 함께 있을 때 더 풍성한 무대를 꾸밀 수 있다. 아니 아이돌그룹 가운데서도 노래하는 싱어가 있고, 퍼포먼스를 맡는 퍼포머가 있고, 시각적 화려함을 맡는 비주얼 멤버가 있다. 그래서 하나의 그룹이다. 노래 잘하는 멤버만이 가치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얼굴 예쁘고 몸매가 받쳐주니 의미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가치가 없고. 그래서 노래 잘하는 멤버만 모아 놓으면 보컬그룹이 되고, 얼굴 예쁜 멤버만 모아 놓으면 그냥 비주얼그룹일 뿐이다. 가장 안정된 것은 그 모두가 모여 있는 것. 은연중 그렇게 길들여져 있다. 엑스트라는 가치없다. 현장스태프들도 하는 일이 없다. 항상 급여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래서 이들에 대해서부터다.

청춘합창단 - 아니 작년의 합창단이 우리에게 주었던 메시지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아도. 그렇게 화려하게 드러나 있지 않아도. 그러나 배다해나 선우 말고도 모두가 있기에 합창단이다. 다른 모두가 함께 하기에 배다해도 선우도 있는 것이다. 지루해하면서도 성실하게 연습하는 베이스가 있기에 테너는 지휘자를 눌러버리려는 야망을 불태울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보이는 것은 테너 뿐일지라도.

그러고 보면 작년 박칼린이 이끌던 시즌1에서도 윤학원 선생님이 <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그리 칭찬하며 지지해주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더불어 사는 법칙. 파편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그 비결에 대해서. 합창이 그것을 가르쳐준다.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자기가 주변으로 밑으로 내려감으로써. 폼생폼사라던 테너파트에서마저 파트장인 김성록씨가 리더로써 가장 힘든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처럼.

아무튼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결국 서울대회로 끝나고 말았지만 모두가 조금씩만 참고 견뎌 주었다면 더 큰 대회에까지 진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어디 가서 자랑하기에도 그 쪽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놀고 싶어서. 방과후 강제로 남아 연습을 시키는데 어린 마음에 하고 싶은 합창도 아니었던 것이 그리 표출되었던 것일 게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화려함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단하고 멋진 이들만 있기에 세상이 존재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테너가 있으면 베이스가 있고, 소프라노가 있으면 알토가 있다. 앞에는 지휘자가, 그 옆에는 트레이너가 있다. 트레이너는 관객석에 앉는다. 연습이 진행되면 반주자도 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 반주자마저 합창의 일부다. 아니 김성록씨로 하여금 테너 솔로를 포기하게끔 만드는 그분의 사모님도 합창단의 일원일 것이다. 합창단 연습을 위해 집을 비운 아내를 대신해 집안일을 책임져 줄 남편과 아이들 역시. 그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역시 합창단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청춘합창단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저 수많은 각각의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거듭나는 과정에 대해서. 제아무리 시립합창단이라 할지라도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는 청춘합창단이 부를 때 더 빛이 나는 그들의 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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