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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05 08:37

보스를 지켜라 "차지헌, 노은설에 길들여지다!"

고양이를 방에 들여 키우는 이유!

 
아니나 다를까 상당히 전형적인 설정이며 전개다. 겉보기에는 제멋대로에 철부지 도련님이다. 그러나 속정이 깊고 본성은 착하다. 폭력과 강압으로써만 대하고는 있지만 누구보다 아버지로써 아들을 아끼고 걱정하며 사랑한다. 하긴 그러니까 고양이가 필요한 것일 게다.

어차피 차무원(김재중 분)이 고용한 직원이니 괴롭혀서 그만두도록 만들겠다. 하지만 겨우 얻은 직장이니 어떻게든 버텨보겠다. 그렇게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에 어느샌가 차지헌(지성 분)도 노은설(최강희 분)의 근성과 그 존재에 대해 인정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떻게 차회장(박영규 분)와 배짱이 맞아 그의 제안으로 차지헌의 집에까지 드나들게 된다.

중요한 부분이다. 침실이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개인의 내밀한 일상이 존재하는 장소다. 그것은 이불에 감춰진 차지헌의 속옷과도 같다. 차지헌이 비밀로 하고 있는 공황장애와 서랍속에 가득한 약병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을 노은설은 당사자의 허락 없이 차회장의 동의 아래 강압으로 침입하여 들어가게 된다. 그의 비밀스러운 일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만일 단순히 보스와 비서라는 일적인 관계였다면 그렇게까지는 필요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은설은 다름아닌 고양이다. 지금의 뒤틀리고 일그러진 차지헌과 그의 주위를 정리하고 바로잡을 장화신은 고양이다. 그러자면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분명 사무실에서의 공식적인 관계가 아닌 회사를 벗어난 사적인 일상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비서이지만 노은설은 차지헌의 침실까지 찾아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공식이다. 가정교사이거나 경호원이거나, 가사도우미이거나. 아예 처음부터 사적 영역이 허락된 관계이거나. 설사 아니더라도 점차 사적 영역을 허락하게 되거나. 모든 원인은 바로 그러한 개인의 공간에 있다. 그리고 그들은 카운셀러이자 어드바이저이자 중개자로써 모든 왜곡된 관계를 바로잡고 그를 치유하게 된다. 설사 비서로써 고용되었더라도 노은설이 차지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의 침실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차지헌 역시 노은설의 침실로 들어와야 한다.

이를테면 진심에 대한 판타지라고나 할까? 모든 문제의 원인은 진심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에 있다. 진심만 제대로 전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들은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진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뒤틀리고 일그러진 관계에 대해서. 거짓과 오해들에 대해서. 그래서 솔직하게 털어놓고 진심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모든 가식과 위선을 벗어던지고 진실로써 마주하고 부딪힐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으니 외부의 힘을 빈다. 전혀 다른 논리와 환경에서 살아온 외부인이. 그래서 고양이다.

사람들이 동물을 의인화하여 그로부터 교훈을 구하려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동물은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사정이라는 것으로부터도 유리되어 존재한다. 그래서 동물은 순수하다. 문명인이 원시인에게서 어떤 순수를 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복잡화될수록 보다 단순한 사회의 단순한 진실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니. 하필 왕자와 거지에서 왕자가 거지와 신분을 바꿈으로써 보다 진실을 가까이에 접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다. 어째서 노은설은 고등학교 시절 날라리에 3류대학출신의 도저히 차지헌이 몸담고 있는 대기업에 감히 취직할 생각도 할 수 없는 비주류로 설정되어 있는가?

차무원이 차지헌에 대해 묻는데도 경계심없이 중요한 단서를 넘겨주는 것이 그런 예일 것이다. 노은설은 차무원과 차지헌 사이의, 기업의 경영권을 둔 재벌일가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차지헌이 느끼는 재벌 3세로서의 압박감이라든가 그렇기 때문에 차지헌을 폭력과 강압으로써만 대할 수밖에 없는 차회장의 부담감이라든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저간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오히려 더 본질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또한 노은설은 차지헌을 치유할 수 있다.

차무원이 노은설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것이나, 차지헌이 노은설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나. 사람들이 때로 사람보다 반려동물에 대 애정을 쏟게 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은 어느 정도 경계를 하고 대해야 하지만 동물은 - 특히 반려동물은 그런 것이 없다. 사람 사이에 마음이 치이고 다치다 보면 그런 일 없는 동물에 보다 의지하게 된다. 그래서 역시 반려동물인 것이다. 그리고 반려동물은 방에 들여 기르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고양이를 길들이기 위한 회차였다고 할 수 있다. 노은설은 차지헌을 길들이고, 차지헌은 노은설을 길들인다. 원래 고양이를 길들이기보다 고양이에게 길들여지는 시간이 더 짧다.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막아서는 노은설의 모습에 차지헌은 조금씩 마음을 열며 길들여지게 된다. 차지헌이 노은설의 집을 찾아가 그녀의 방에서 잠자게 되는 이유다. 상처가 많으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아무곳에서나 자지 않는다.

어쩌면 최강희에게 코미디란 맞지 않는 옷이 아닐까. 진지할 때는 너무 진지하게 웃기려 할 때는 딱 코미디라는 것이 보인다. 진지할 때와 웃길 때의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지성의 연기와 상당히 비교가 된다고나 할까? 특히 차지헌을 깨우려 그의 방을 찾아갔을 때 그녀가 보인 연기는 어색함의 극이었다. 몰입을 깬다. 코미디라고 대놓고 코미디 연기를 하게 되면 그만큼 드라마가 우습게 된다. 드라마가 우습다는 것과 드라마의 내용이 웃기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차지헌의 집을 찾아갔을 때 차지헌의 할머니인 송여사(김영옥 분)를 격려하는 장면에서도 말을 그런 식으로 함부로 하다가는 자칫 좋은 뜻으로 말하고서도 원망만 사는 경우가 있다. 격려나 위로 같은 것은 조심해서 해야 한다. 괜히 좋은 뜻으로 한 마디 한다고 했다가 폭력사건으로 번지는 경우가 대개 그런 경우다. 작가의 탓이겠지만 역시 신경써야 할 부분일 것이다. 아마 최강희의 연기도 충분히 자신이 노은설이 되지 못한 때문이리라.

시나리오는 제법 탄탄하다고 생각한다. 장면의 구성이나 연계도 상당한 편이다. 다만 이런 스타일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뻔히 읽힐 수 있는 설정이나 전개가 많이 아쉽다. 과연 그런 부분들에 대해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아직은 많이 못 미친다.

기대했던 풍자나 비판은 이번회에서는 없었다. 다음회부터 나타나게 될까? 사실 첫회의 인상이 너무 강했던 탓에 은근히 기대하게 되는 부분이다. 어떻게 될까? 노은설의 좌충우돌은 다음주로 미뤄두어야 할 듯하다. 재미 역시. 약간은 실망스러운 것이 있었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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