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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칼럼
  • 입력 2014.07.29 11:12

출산율 저하와 경쟁사회, '저출산에 대한 우려에 의문을 던지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원래 조선전기까지 유산상속은 분할상속이 원칙이었다. 딸과 아들 모두가 고루 유산을 나눠가졌다. 그러나 조선중기 이후 장자상속이 강화된다. 문벌간의 경쟁 때문이다.

이를테면 중세초기 유럽에서도 어떤 대영주들은 영지를 아들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쪼개진 영지는 한 사람의 상속자에게 물려진 영지보다 작을 수밖에 없었다. 승자는 당연히 한 사람의 상속자에게 모든 것을 물려준 영주들이었다.

조선 중기 이후 사림이 본격적으로 관직에 진출함으로써 문벌간의 경쟁이 가속화된다. 관직은 한정되어 있고 급제자들은 넘쳐나고 있었다.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킬 당시에도 세종과 문종을 거치며 안정된 대신 적체되었던 관직에 대한 불만이 한 몫 하지 않았던가. 조정에서의 권력다툼은 곧 문벌간의 경쟁으로 이어졌다. 더 이상 유산을 나누어 상속할 여유가 사라졌다.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물려준다. 여성이 상속대상에서 배제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궁극적으로 사돈 역시 수많은 경쟁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경쟁에서 도태되면 끝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겨우 한 사람 몫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 제대로 대우받으며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바로 그것을 직접 몸으로 경험한 세대들이다. 지금 가임연령에 있는 바로 그들이 그러한 가혹한 현실을 직접 겪으며 자라난 세대들이다. 더구나 경제적으로도 아직 충분히 풍족하지 못하다. 한 사람은 가능할지 몰라도 두 사람부터는 무리다. 아니 한 사람조차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

차라리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면 낳지 않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기왕에 낳을 것이면 그래도 자신들의 능력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한 사람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과거에는 인구조절을 위해 출산을 제한했지만, 이제는 자식세대에 대한 걱정으로 출산을 스스로 조절한다.

저출산에 대한 우려들을 보면서 웃음부터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왜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가? 그 근본원인부터 되짚어야 한다. 아이를 기르기 힘들다. 무엇보다 그 아이들이 살아가기 너무 힘들다. 그런 현실을 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돈이 드니까.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니까. 그만큼 내가 번거롭고 성가시니까. 그러니까 남들더러 아이 낳으라. 그러면 기르기는 누가 기르는가?

아이들을 걱정없이 낳아 잘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보다 애국심에 호소하며 아이 낳으라. 70년대다. 국가가 낳으라면 낳고, 낳지 말라면 낳지 않는다. 개인의 강함을 요구한다. 개인의 인내심과. 그러니까 아이 잘 기르기 위해서라도 경쟁에서 승리해서 부자가 되라.

지금으로선 다른 방법 없다. 나부터도 아이 낳으라면 싫은데. 늙어서도 걱정이다. 애 낳아 기르다가 노후대비 충분히 못하면 늙어서 또 고생해야 한다. 차라리 월급 받으면 절반을 보험과 적금에 쏟아붓는다. 아니면 지금을 즐긴다. 그냥 부족한 인구 만큼 인구 남아도는 다른 나라에서 들여올 밖에.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한계가있을 수밖에 없다. 개인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저출산을 걱정하면서도 출산율을 높일 근본적인 대책에는 관심이 없다. 왜 아이를 낳지 않으며, 무엇이 그토록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되는지 전혀 알려 하지 않는다. 아니 알고 있다. 단지 모른 척 할 뿐이다. 세월호와 같다. 세월호 피해자와 유가족은 동정하지만 그들에게 내 돈과 내 시간과 내 수고와 노력을 희생해가며 도움을 주고 싶지는 않다. 세월호 특별법을 반대하는 이유일 것이다.

먼저 마음놓고 아이를 낳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고 아이를 낳아도 낳아야 한다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직까지 무상급식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은 사회다. 역시 내 돈과 수고를 희생하는 것은 아깝다.

10년 뒤를 내다본다. 혹은 20년 뒤, 100년 뒤. 하기는 굳이 정부를 비판할 필요는 없다. 그 정부를 선택하고 지지를 보내는 것이 바로 국민들인 때문이다. 어떤 모습일까? 이 사회의 30년 뒤는. 때로 두렵기조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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