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7.25 08:23

[김윤석의 드라마톡] 괜찮아 사랑이야 2회 "비정상과 정상, 일그러진 인간과 관계에 대해"

키스와 부러진 하이힐, 지해수가 오열하는 이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아마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 가운데 유일하게 불을 가까이하는 것이 바로 인간일 것이다. 불은 따뜻하다. 그리고 밝다. 그러나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갈 때 불은 모든 것을 태운다. 고통 속에 자신도 함께 타버리고 만다. 그런데도 사람은 결국 불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의 관계란 어쩌면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불과 같을 것이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사람에 의지해 그것을 치유한다. 아니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심지어 여전히 상처로 피흘리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끝끝내 사람과의 관계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인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상처준 데 대해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로부터 고통받음으로써 자신을 용서하고자 했던 어느 트랜스젠더처럼.

▲ 지티엔터테인먼트, CJ E&M 제공
이영진(진경 분)은 조동진(성동일 분)의 전처이고, 조동진은 지해수(공효진 분)의 첫사랑이며, 최호(도상우 분)는 지해수와 가까운 사이인 조연출의 첫사랑이다. 여기에 조동진이 지해수의 첫키스상대이며, 지해수가 다시 박수광(이광수 분)의 첫키스상대였고, 마지막으로 최호와 조연출이 며칠전 딥키스를 나누는 것을 장재열(조인성 분)이 목격한다. 한꺼풀의 거짓이 벗겨지자마자 함께 축구응원을 하며 화기애애하던 거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바뀌고 만다. 마치 인간세상의 축소판 같다. 차라리 최호의 양다리를 밝힌 장재열을 원망하고 만다.

어릴 적 언니와 함께 어머니가 부정을 저지르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차마 자신이 보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었다.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대로 몸도 정신도 불편한 아버지와 자신들만 버리고 떠나버릴지 모른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어머니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고 지금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연인이라 여겼던 최호의 부정은, 아니 그의 딥키스는 그런 그녀의 상처를 건드리고 있었다. 하이힐 굽이 부러진다. 그녀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부러지며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그냥 쉽게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원망이든 이해든 솔직하게 속엣것들을 말했더라면 앙금이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것은 쉽지 않다.

지해수가 환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거부하는 이유일 것이다. 정확히 인간의 관계에 대한 신뢰가 없는 탓이다. 환자의 가족을 향한 분노는 곧 자기와 주위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로서 자신을 진단함으로써 타인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방패막이로 삼는다.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러면서 누구에게도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차라리 방관자처럼 모두를 지켜본다. 어머니의 부정을 몰래 훔쳐보던 그때 그 순간처럼. 섹스란 그녀에게 타인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간절히 바라는 욕구도 없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기피하고 싶은 의지도 없다. 키스는 어머니가 저지른 부정의 증거다. 어쩌면 장재열이 본 것이 키스가 아닌 섹스였다면 그녀가 그렇게 오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을 믿고 싶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뿌리깊은 인간에 대한 환멸과 증오가 도사리고 있다. 믿지 못하기에 믿고 싶은 것이다. 의지할 수 없기에 의지하려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장재열 자신의 발버둥이다. 20년지기 친구의 배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난 뒤에도 오히려 그 분노가 크지 않았던 이유일 것이다. 용서해주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용서이기는 한 것이었을까? 자신의 소설을 표절한 당사자인 옛여자친구에 대해서도 소송을 취하하고 자신의 책을 회수하는 등 관용을 보인다. 배신감과 분노는 믿음과 애정에 비례해 생겨난다.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상대에게 큰 상처가 되는지 그는 알지 못한다. 의외로 그는 이풀잎(문지인 분)을 사랑했을 것이다.

동류의 냄새를 맡는다. 타인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여자와 타인과의 관계를 갈구하는 남자다. 결국은 타인을 믿지 못하는 두 사람이다. 지해수에게 관심을 보이면서도 매몰차리만큼 가차없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자신이었을 것이다. 마음을 놓았는지 모르겠다. 이 여자라면 솔직한 자신을 내보여도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지해수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더 싫어질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장재열의 관계 가운데 유일하게 솔직하고 진실할 것이다. 미움이 차라리 진실하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상대로 그들을 이해하는 일을 하고 있는 지해수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아프고 상처입은 것은 그들 자신이다.

하여튼 프로이트 이래로 섹스는 정신분석과 뗄래야 뗄 수 없는 클리셰와도 같은 대상이 되고 말았다. 가족의 폭력으로 입원한 트랜스젠더와 타인의 성기를 그리는 청소년 역시 성기와 관계되어 있다. 지해수의 이성관계는 섹스를 배제한 채 이루어지고, 장재열의 이성관계는 섹스를 전제해서만 이루어진다. 하필 키스다. 유아기에 키스를 어머니의 키스를 목격한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구두라는 자체도 성기를 상징하는 섹스코드의 하나다. 과거의 사건 이후 장재열의 어머니는 집에 숨어 있다. 형이 이제 곧 출소한다. 과연 감춰진 과거의 진실은 무엇일까. 짐작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조용히 지켜보려 한다.

과거의 자신이다. 그리고 분신이다. 도전자다. 한강우(디오 분)은 끊임없이 장재열의 주위를 맴돌며 그에게 신호를 보낸다.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이제 곧 의식하게 된다. 집이란 어쩌면 자궁일 것이다. 태어나는 곳이다. 아직 미숙한 공간이기도 하다. 집안에서 지해수는 얼마든지 유치하고 솔직한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 그곳에서 장재열을 만난다. 아직 채 자라지 않은 일그러진 자아와 정신들이 그 안에 왁자하게 어울리고 있다. 태어남을 준비하듯이.

말 그대로일 것이다. 자라지 못한 어른과도 같다. 자신의 일부를 과거의 어느 시점에 놓아두고 잃어버린 채 그냥 시간과 함께 흘러왔다. 그 잃어버린 조각들을 찾으려 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다. 자기 안에 숨겨져 있다. 지해수도 언젠가는 섹스를 간절히 욕망하게 될까? 장재열의 섹스는 단지 자궁으로의 회귀다. 도피다. 대부분은 또 그런 채로도 살아가기도 한다.

어딘지 정상에서 벗어난 기괴한 공간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척 일상적으로 느껴진다. 인간의 사회 자체가 기괴하다. 인간의 관계 자체가 일그러져 있다. 그런데 사람만 멀쩡하다는 것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멀쩡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정상일 수 있다. 역설일 것이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