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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04 07:15

공주의 남자 "세령이 민폐녀가 되어야 하는 이유"

시대란 때로 순수마저도 죄이게 한다.

 

김승유(박시후 분)와 신면(송종호 분)은 정종(이민우 분)과 더불어 깊은 우정을 나누던 친구사이였을 터다. 하지만 신면의 아버지 신숙주(이효정 분)가 수양대군(김영철 분)의 편을 들어 김승유륵 죽이려 하는 순간 김승유의 형 김승규(허정규 분)로부터 거부당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장차 신면은 아버지인 신숙주가 선택한 수양대군에 의해 친구인 정종이 죽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아니 그 전에 김승유가 아버지 김종서(이순재 분)와 더불어 수양대군의 손에 죽게 될 때에 한 손 거들게 될 것이다. 아무리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더라도 시대라는 것이 그렇다.

단지 세령(문채원 분)은 김승유를 사랑했을 뿐이었다. 혼담이 오간다 하여 호기심에 경혜공주(홍수현 분)와 자리를 바꾸었고, 한 순간의 오해를 그대로 둔 채 김승유와 사랑을 나누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김승유는 죽을 위기를 겪었고, 경혜공주는 마음에 두고 있던 김승유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김승유의 아버지 김종서마저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없었다. 세령의 탓이었을까?

세령의 잘못이라면 난세를 주도하고 있는 수양대군을 아비로 두고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그런 사정따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일 게다. 경혜공주 또한 수양대군의 야심을 알기 전까지는 세령에게 그렇게 살갑게 대하고 있었다. 문종과 수양대군 사이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따위는 아랑곳없이 마치 친동기처럼, 친구처럼 어울리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 놓은 것이 누구였겠는가? 세령이었을까? 경혜공주였을까? 아니면 김승유였을까? 보통 때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사랑이었지만 그러나 시대가 그것을 잘못으로 만든다. 죄가 되게끔 만든다.

젊다는 것은 순수하다는 것이다. 아직 세상의 탐욕에 물들지 않은 그들은 순수를 쫓고 싶어한다. 어른들 사정따위 아랑곳없이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하고, 그리고 꿈을 쫓고. 그러나 이미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은 젊은이들의 순수를 온전히 허락지 않는다. 우정이 죄가 된다. 사랑이 죄가 된다. 꿈은 부수어지고 순수마저 이용당한다. 그런 젊은이의 피 위에 기성세대는 탐욕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것이다.

세령이 민폐캐릭터로 여겨지는 이유다. 순수하니까. 그것은 김승유 역시 마찬가지다. 겨우 목숨을 구해 의금부 옥에서 걸어나오는 김승유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김승규의 시선이 그것이다. 김승유가 조금 더 영악했더라면. 김승유가 조금 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 영리하게 굴었더라면. 하지만 그랬다면 김승유가 아니었겠지. 세령이 아버지 수양대군의 야심을 알아 그것에 대비하여 행동할 수 있었다면 그녀는 미실이나 사택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세령이 과연 경혜공주와 우정을 나누고 김승유와 그토록 지순한 사랑을 나눌 수 있었을까?

순수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시대, 그저 사랑을 한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가 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것을 누가 만들었을까? 세령일까? 김승유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일까? 그래서 항상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증오하고 기성세대는 그런 젊은 세대를 길들이려 들게 마련이다. 신면에게 던져진 세령이라는 유혹처럼. 오랜 우정마저도 그렇게 아버지를 쫓아 저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드라마는 역사왜곡이 무척 심한 드라마다. 문종이 살아있을 당시 수양대군은 저렇게 당당하게 문종 앞에 자신의 야심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아니 계유정난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도 수양대군이 거느리고 있던 것은 약간의 무뢰배들 뿐이었다. 그 약간의 무뢰배들로 김종서가 방심하는 틈을 타 한밤중에 급습하여 그를 죽이고, 다시 궁궐안으로 들어가 등청하는 관리들을 미리 작성한 살생부대로 죽여 정난을 완성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심지어 단종마저 내쫓고 왕위에 오른 다음에도 몇몇 측근을 제외하고는 자기 편이라고는 없을 정도로 그의 지지기반은 취약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이 결국 그로 하여금 집현전을 폐하고, 세종이 길러 놓은 무수한 인재들을 죽이며, 기껏 구축해 놓은 조선의 제도를 허물고 지방세력들에 많은 기득권을 양보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그를 왕으로 옹립한 공신집단의 부정과 부패, 전횡에 대해서도 그래서 세조는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그들이 아니면 왕위마저 위태로을 지경이었으므로.

비록 왕위에 올라 불과 2년만에 세상을 떴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세종의 치세 후반 5년은 각종 병에 시달리고 있던 세종을 대신해 세자이던 문종이 섭정을 하고 있던 터였다. 세종이 남겨 놓은 인재며 제도등이 여전하고, 또한 섭정을 맡으며 국정전반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장악하여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문재만이 아니라 무재까지 뛰어나 죽을 당시에도 조선의 군제를 개혁시킬 구상에 몰두해 있었다. 그런데 고작 무뢰배의 우두머리밖에 안 되는 수양대군따위에게 기가 눌려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양새라니. 문종이 살아 있을 당시에는 신숙주 역시 감히 수양대군의 편에 서지 못했었다.

하지만 악이란 클수록 좋으니까. 세령과 김승유가 겪게 되는 비극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악은 크고 깊고 어두워야 한다. 한밤중에 깊은 산길을 서로 손잡고 오르듯 어둠이 깊을 때 고난도 깊어지고 정도 깊어진다. 헤어날 수 없은 어둠이기에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갈등하면서도 마침내 그 잡은 손을 놓치 않게 된다. 실제 역사에서 그러하듯 수양대군이 문종 앞에 몸을 낮추고 기회나 노리는 한심한 인사였다면 오히려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 김승유야 말로 우스워지기 쉬우므로. 그래야 신면이 우정을 배반하고도 할 말이 있게 된다.

이런 것이 바로 서사멜로일 것이다. 시대의 격랑과 그 격랑에 휩쓸리는 순수. 순수가 죄가 되고 순수를 탓하고 마는 그 절망과 시대에 대해서. 그럼에도 사람은 여전히 사랑하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기는 희망찬 시대라면 사실 서사멜로라는 장르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어둠이 깊고 절망이 깊을 때 위태롭게 흔들리는 촛불처럼 그 작고 여린 순수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과연 두 사람은 어떻게 그 비극의 시대를 헤쳐나갈 것인가.

아무튼 그래서 여전히 필자의 경우 문채원의 연기에 대해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당시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몇 번이고 말했지만 시대를 정면으로 맞아야 했던 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비장하다. 역사속의 인물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문채원이 맡은 세령과 박시후가 맡은 김승유는 상대적으로 시대로부터 벗어나 있으므로. 그나마 김승유는 수양대군이라고 하는 시대의 중심과 맞서야 하지만 세령은 그로부터도 벗어나 있기 쉬울 것이다. 그녀에게 요구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 아니라 역사를 살아가는 개인의 순수함이다. 지금보다 연기가 더 훌륭했으면 당연히 좋았을 테지만 아니더라도 그다지 불만을 가질만한 수준은 아닌 것이다.

실재했던 역사 속에서, 아니 그 역사마저 뒤틀며 역사속의 인물 가운데 존재하는 허구의 인물들. 아마도 그 시대에서 본다면 그들은 허깨비와 같을 것이다. 형체도 없는 귀신들이다. 형체도 없는 귀신이 당시의 인물을 연기해 무엇할까? 오히려 그러한 유리감이 세령의 캐릭터를 더욱 분명히 하여 필자로서는 만족스럽다고나 할까? 일부러 그렇게 작가나 감독이 문채원에게 요구한 것 같다 여겨질 정도다.

어쨌거나 확실히 홍수현의 연기는 대단하다. 아마 젊은 세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축에 들지 않을까? 혼례를 앞두고 김승유와의 이루어지지 않은 인연에 대한 미련과 체념, 그리고 떠밀리듯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절망과 분노, 슬픔, 세령을 마주하고서는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세령을 원망하고 증오하면서도 한 편으로 모든 것이 세령의 탓만은 아님을 알고 그녀와의 우정을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는 감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음 감정을 마치 폭풍처럼, 그러나 피아노줄 위를 거닐듯 섬세하게 쏟아내고 있었다고나 할까? 원래 연기 잘하는 배우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주연을 맡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조연이란 배경과도 같다. 주연은 캐릭터로 충분하다. 하지만 조연에게는 디테일이 필요하다. 조선시대인데 법랑이 쓰여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한복을 입고 있는데 개량한복이다. 드라마에 대한 몰입이 깨져 버린다. 오히려 그래서 더 연기력이 필요한 것이 조연이다. 특히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조연들이다. 이순재나 김영철, 정동환 같은 베테랑들이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훨씬 어린 나이의 역할을 맡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그들이 중심을 잡아줌으로써 김승유와 세령이 헤쳐가야 할 시대는 더욱 첨예하게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그들에게 다가가게 된다. 조연이 더욱 탄탄하게 그 배경을 이룸으로써 주인공들의 이야기에도 생명력이 불어넣어지는 것이다.

아마 아버지 신숙주를 만나고 나와서 한밤중에 마당에서 홀로 칼을 휘두르던 신면의 모습은 그의 변화되어가는 내면을 보여주는 듯도 하고. 하필 세령의 모습이 시쳐지나가고 있을 때 그는 하나의 나뭇가지를 베고 있었다. 사방을 베며 휘둘러지던 그의 칼은 어느새 바닥에 꽂혀 버려지게 되었다. 그의 마음의 칼이 무엇을 베고 무엇으로 버려졌는가 궁금해지게 한다. 하지만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워낙 역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만큼 역사라는 거대서사속에 스러진 개인의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다. 현대의 시각에서 창조되고 재구성된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그야말로 필자를 위한 드라마라고나 할까? 무척 기대하며 설레어하는 이유일 것이다.

재미있었다. 아마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이제 문종이 죽고 나면 수양대군의 야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김종서와의 대립도 심화될 것이다. 신면은 아버지를 쫓아, 정종은 또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리고 김승유는 김종서의 아들로써.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더 이상 수양대군의 딸리기만 하지는 못하게 된 세령의 입장도. 더욱 절실하고 치열해진 경혜공주 또한.

탐욕이 정의가 되고, 피가 도덕이 되고, 혼란과 파괴 위에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고, 사람이 가져야 할 당연한 순수들은 어느샌가 시궁창에 버려진 채 조롱과 멸시를 당한다. 바로 그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시대란 그렇게 잔인하다. 인간이란 그래서 아름답다. 아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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