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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02 07:01

계백 "무협에서는 주인공의 성장과정도 무척 중요하다!"

고증을 따지며 보는 역사드라마가 아니다!

 

<광개토대왕>에서의 고국양왕도 그렇고, <계백>에서의 무왕도 그렇고, 참 선왕들이 현대로 와서 무척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고국양왕 없이 광개토대왕이 있었고, 무왕 없이 의자왕이 있을 수 있었을까? 과연 광개토대왕과 의자왕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은 것일까?

당과의 외교는 무왕의 가장 중요한 치적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무왕은 신라와의 전쟁을 통해 자신의 친위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전쟁은 왕이 인력과 물자를 징발하여 통제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인 동시에, 전쟁을 통해 획득한 영토와 백성과 포로와 약탈한 재화는 친위세력을 기르고 그들의 충성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었다. 그리고 이때 무왕의 왕권을 뒷받침한 것이 다름아닌 사택씨, 중국사서에 나타난 사(沙)씨였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의자왕도 즉위하여 전통적인 귀족세력을 누르고 전제적인 왕권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공이 사씨에게 돌아간 채 무왕이란 단지 무력한 존재로서만 그려지고 있었으니.

하기는 어차피 정치에 있어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가장 위협적인 적이 되기도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백제의 왕실인 부여씨와 사택씨가 비록 협력하고는 있지만 모든 부분에서 두 집단의 이익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럴 경우 사택씨를 비롯한 목씨, 국씨, 연씨, 진씨 등 다른 대성팔족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부여씨가 사택씨와 손을 잡고, 사택씨가 부여씨를 받아들인 내막이 그런 것이다. 사택씨는 왕권을 옆에 끼고, 부여씨는 강력한 사택씨와 더불어 나머지 대성팔족을 누른다. 백제에 귀족이 사택씨만 있는 것이 아닐 텐데 과연 사택씨가 그런 식으로 무도하게 무왕을 억누르는 것이 가능한가. 조선에서도 안동 김씨가 국왕마저 업수이여길 수 있었던 것은 이렇다 할 경쟁상대가 없었던 탓이 가장 컸었다.

지금쯤이면 신라와의 전쟁을 통해 친위세력을 기르고, 당과의 외교를 통해 왕권의 정통성을 확립하며, 왜에도 사신과 서적 물자를 보내어 그들의 협력을 구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물론 당연하게도 적장자인 의자가 그 모든 것을 제대로 이어받을 수 있도록 정지작업을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의자는 641년 무왕이 죽고 왕위를 물려받고나자 642년 모후의 죽음을 계기로 교기를 비롯한 동모누이 4명과 내좌평 기미 등 유력인사 40여인이 왜로 망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과연 무왕이 무능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의자와 주위의 몇몇만으로 그와 같은 일들이 가능했겠는가?

하지만 그래서 무협인 것이다. 절대 역사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 드라마는 무협의 코드로써 접근해야 한다. 아버지인 무왕(최종학 분)마저 원수인 사택비(오연수 분)와 대좌평 사택적덕(김병기 분)으로 인해 손발이 잘린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린 의자(아역 노영학)는 짐짓 바보행세를 하며 목숨을 부지하고, 의자의 한 팔이 되어줄 계백(아역 이현우)은 주점에서 일하며 남다른 지혜와 용기로써 인근의 왈패들을 수중에 넣는다. 사택비와 위제회로 인해 한 팔과 아내, 그리고 명예를 잃고 어린 계백과 함께 술에 의지해 살고 있는 무진(차인표 분)은 그러나 살인청부업을 하며 원수인 위제회를 쫓고 있다.

사택비와 사택적덕의 강함과 악함은 바로 이들의 정의로움과 간절함을 보이기 위한 것이며, 마침내 이들이 지금의 어려움을 이기고 사택비와 사택적덕의 위에 섰을 때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확실히 역사에서대로 무왕이 미리 정지작업을 마치고 의자가 자연스럽게 왕위를 이어 물려받은 힘으로 귀족들을 누르고 강력한 왕권을 세웠다고 하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사택비는 악해야 하고 사택적덕은 강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의자와 계백이 한 데 모이는 이유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한 데 모여 함께 이들과 싸워 이기는 명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야말로 드라마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희생하는 경우라고나 할까? 더구나 삼국시대는 사료마저 부족하므로 이런 정도는 얼마든지 드라마적인 상상력으로써 허용범위라 주장할 수 있다. 선화공주의 설화가 사실인지 아닌지 누가 아는가? 사택비는 분명히 존재했을 테지만 의자가 누구의 아들인가도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 계백에 대해서도 삼국사기에 짤막한 열전만이 존재할 뿐이다. 더구나 괜히 국가단위로 스케일을 키울 경우 감당이 안 될 터이므로 그 모든 것을 개인의 일로써. 무왕도 개인이고, 사택비도 개인이고, 사택적덕도 개인이다. 의외로 그토록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택비나 사택적덕이나 그 세력이 드러나 있지 않다. 개인의 뛰어난 무예와 지혜로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그래서 무협이다.

결국 백제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여러 주역 가운데 하나인 은고가 계백과의 심상치 않은 인연으로 마침내 등장하게 되고, 이제는 성충과 흥수가 나타나 책사의 역할을 하게 되면 한국 역사드라마에서의 전형적인 파티가 완성되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은고는 의자와 더불어 나라의 명운을 걸고 거래를 하려는 모양이다. 원래는 욕을 많이 먹게 되는 역할인데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겠다.

참고로 계백에 대해서는 그 성이 부여가 아닌가 추측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마디로 백제의 핵심귀족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인데. 사실 의자왕이 항복하고 백제가 멸망하는 당시 백제의 지방세력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의자왕이 항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백제의 나머지 세력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도 어떻게 그려질 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역시 계백이 시장에서 비천하게 자라는 것도 무협적인 코드라 보면 되겠다. 사람이 비천했다가 귀해질 때 대중도 그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는다.

고증에 너무 신경쓸 필요는 없다. 드라마에서 어떤 역사적 사실을 유추하거나 찾아내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무언가 크게 기대를 가지고 작품을 보겠다. 그보다는 단지 보이는 장면과 장면에서 쾌락을 찾을 수 있기를. 다만 숨고르기였고 시간은 필요하겠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아마 그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큰 약점일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솔직히 너무 지루하다.

계백이 어른인 채였다면 어땠을까? 의자가 왕위에 오르고 강력한 사택씨와 교기의 세력과 건곤일척을 하려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그대로 휘몰아쳤다면? 하지만 성장과정이란 무협에서 필수적이니까. 역사물에서는 이미 성장한 채인 쪽이 더 좋을 수 있지만 무협에서는 과거로부터의 서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계백은 어떻게 그렇게 명장이 될 수 있었고 백제에 충성을 다하게 되었는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고 한계일 테지만.

너무나 뻔한 전개. 예상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 전형적인 모습이 차라리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다지 기대할 것 없이 그저 보이는대로 보고 즐기는 그런 드라마이리라. 주목할만한 배역이나 연기자도 보이지 않고. 무협이란 그런 재미에 보는 것이므로. 그냥 본다. 그 뿐이다. 그런 드라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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