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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30 08:14

남자의 자격 "리얼리티를 넘어선 다큐버라이어티"

남자의 자격의 재미의 이유, 감동의 이유...

 
KBS의 일요버라이어티 <해피선데이>의 코너인 <남자의 자격>은 사실 그다지 재미없는 프로그램이다. 다른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방송분량을 뽑고, 보다 재미있게 멘트를 하고 상황을 만들어 보고자 골몰하고 있는데 전혀 그런 것이란 없으니.

아마 그러한 <남자의 자격>만의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여준 것이 바로 올초 김태원의 암발견으로 화제가 되었던 '암특집'이었을 것이다. 원성이 자자했었다. 예능에서 무슨 암인가? 그렇다고 정작 방송에서 웃기려 노력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암검진을 받고 의사로부터 암에 대한 상식을 듣고 서로 일상적인 수준의 대사를 하는 정도였다. 과연 웃자고 보는 예능에서 이렇게 웃음을 빼도 좋은 것인가? 이건 차라리 다큐멘터리다.

바로 얼마전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청춘합창단"에 앞서 방송되었던 '배낭여행편'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불만을 갖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어째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배낭여행의 전형이 아닌 차량을 타고 하는 오프로드 여행을 선택하고 있었는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직접 걷기도 하며 현지의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는 것이 배낭여행일 터인데 내내 차안에만 있는 것이 무슨 재미인가? 더구나 차 안에서도 그다지 재미있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배낭여행이라는 것이 단지 배낭을 매고 발로 걸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현지에서도 멤버들이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다름아닌 'Backpacker'였다. 한 마디로 배낭여행족이라는 말이다. 그들이 묵었던 숙소, 그들이 텐트를 치던 캠핑장, 심지어 그들이 타고 다니던 오프로드용 랜트카 역시 모두 Backpacker, 즉 배낭여행족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하기는 그 넓은 호주를 여행하는데 우연히 마주친 어느 낙타여행자처럼 걸어서 카리지니든 벙글벙글이든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더구나 역시 우연히 마주친 어느 가족여행자처럼 어린아이가 포함되어 있는데 도보로 이동하는 것은 무리일 터다.

다시 말해 차를 랜트하여 이동한다는 것은 배낭여행자에게 있어 교통수단에 대한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배낭여행이라는 자체가 배낭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을 최대한 챙겨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즐기는 여행이라는 뜻일 터다. 최소한의 비용이라는 것이지 그것이 교통수단마저 정의하지는 않는다. 호주와 같은 곳에서는 랜트카를 이용할 수 있고, 혹은 도보이동이나 대중교통이 부담스러운 고령자나 저연령의 어린이, 혹은 장애인이 일행에 포함되어 있다면 역시 랜트카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불필요한 사치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경우 랜트카 역시 반드시 필요한 수단일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멤버들의 평균연령이 벌써 40세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으니까. 그나마도 내내 험한 오프로드만을 달리다 보니 50대인 이경규는 체력의 한계마저 느끼고 있었다. 스케줄의 문제만 아니었다면 체력을 고려해서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나았다. 단지 정해진 비용 안에서, 그래서 나중에는 돈이 부족해서 해변에서 낙타를 타고 해지는 것을 볼 때는 그나마 외국에서 방송촬영 나왔다고 공짜로 얻어타고 있었다. 양준혁이 남은 음식을 챙기고, 이윤석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 어디에 럭셔리한 관광이 있을까? 하지만 배낭여행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그러니까. 그래서 배낭여행 도중 만난 다른 배낭여행족도 럭셔리한 관광을 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에 대한 설명이나 해명이라도 있었다면. 아니 그보다 배낭여행이라 할 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에 맞춰 여행지며 여행방식이며 선택하고 했다면. 아니면 기왕에 그렇게 된 것 오프로드를 달리는 것만 보여주는 것은 지루할 테니까 게임이라도 하면서 웃음을 만들려 노력했다면. 하지만 없었다. 해명도 하지 않았고, 일반의 상식에 맞추려고만 하지도 않았다. 호주로 배낭여행지가 결정되었으니 기왕에 가는 것 호주의 광대한 자연을 살펴보자, 그렇다면 역시 오프로드가 제격 아니겠는가. 그리고 우직하게도 마냥 오프로드를 달리는 차안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런 게임도 개그도 상황극도 않는 모습들을. 차에서 내려서도 밥먹고 잠자고 그나마 김태원은 작곡을 하고. 비난을 들을 만도 했다.

"내가 생각했던 배낭여행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남자의 자격>이 특히 인터넷상에서 항상 비판에 직면하는 이유였다. 방송초기부터 그런 비판은 있어왔었다.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다.

게임도 없다. 웃기고자 하는 멘트도 없다. 상황극도 따로 없다. 그나마 예능으로 잔뼈가 굵은 이경규 정도만이 일부러 의식하며 웃음을 만들어내고 한다. 앞서 언급한 '암검진편'을 보라. 어디 웃겨보겠다고 애써 노력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멤버의 모습이 보이는가. 대화라는 것도 일상수준, 행동하는 것도 보통의 상식 수준에서, 그래서 또 하나 다른 비판이 나온다. 비싼 출연료 받고 예능에 출연하면서 몸을 던저 무엇을 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확실히 '마라톤편'을 비롯한 몇몇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멤버들이 무리하게 무언가를 이루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이 <남자의 자격>만의 매력이었을 것이다. 과연 생각해 보면 <남자의 자격>이 아니고 어느 예능프로그램이 '암'이라는 질병에 대해 그렇게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었겠는가. '암'이라고 하는 질병이 갖는 무게에 맞게 진지하게 암을 다룰 수 있는 예능프로그램이란 모르긴 몰라도 현재 <남자의 자격> 하나 뿐일 것이다. 물론 오프로드가 갖는 거칠고 위험하지만 호쾌한 여행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것도 <남자의 자격> 정도다. 더 웃기고 더 감동적이었을지는 몰라도 오프로드의 느낌을 살리면서 호주의 광활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을 그토록 사실감있게 전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 역시 <남자의 자격> 뿐일 것이다. 다큐멘터리라면 여행과정에서의 소소한 일상들까지 굳이 보여주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멤버들과 함께 호주를 여행하고 있는 것처럼.

하긴 어쩌면 시청자를 무시하는 제작진의 오만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시청자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제작진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있는 것이니. 시청자가 바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제작진이 하고 싶은 것만을 한다. 하지만 바로 자기가 가장 재미있다 여기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작가가 대중에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인 것이다. 대중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타협하기보다는 설사 당장에 반발이 있더라도 자기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에게 그것 이외의 다른 재미와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때로는 모험도 해가면서. 결국은 대중이 보는 프로그램이므로 최대한 재미있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분명.

그래서 바로 그와 같은 <남자의 자격>만의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 것이 이번의 '청춘합창단' 미션이었을 것이다. 진행하는 사람이 없다. 굳이 나서서 웃기거나 감동을 전하려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저 들어주고 함께 눈물을 흘리고 또한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다. 출연자로 하여금 말을 끊거나 특정한 멘트를 유도하려는 법 없이 오로지 들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심사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이경규가 저렇게까지 조용한 예능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예능이라는 사실조차 어느새 잊은 채 순수하게 감동하고, 순수하게 기뻐하며, 철저히 참가자의 입장에서 들어주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청춘합창단'의 감동은 극대화되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다. 자막이 오버다. 하지만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방송만으로는 보여지지도 들려지지도 못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제작진만 아는 이야기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그조차도 거추장스럽게 여길 정도로 합창단에 참가하고자 하는 도전자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인 것이었다. 꾸미지 않은 이야기이기에 그 진솔함과 담백함이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굳이 누군가 나서서 희화화하거나 감동을 유도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강호동이나 유재석 역시 그런 상황에 굳이 자신이 나서서 흐름을 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보여주고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들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간결하게 들어주는 것에. 더하는 것도 빼는 것도 없이 그 순간에 대해 충실하게 전하는 것에 대해서. '암'을 다룰 때는 암 자체에 대해서. '배낭여행'에 있어서는 배낭여행 자체에 대해서. '무인도'편에서도 평균나이 40대 이상이 실제 무인도도 아닌 섬에 들어가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무인도란 꿈도 낭만도 아니다. 현실에거 감당할 수 있는 무인도의 체험이란 이런 정도에 불과하다. 굳이 꾸며서 감동을 주거나 놀라움을 주거나 반전을 꾀하거나. 그래서 말한다. 다큐버라이어티라고.

어느새 확실히 이경규의 예능에 대한 철학이 바뀌었다. <남자의 자격>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이경규는 어떻게 해서든 상황을 만들어 시청자를 웃기려 부단히 애쓰며 노력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그런 부분이 없잖아 보이기는 한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는 이경규에게서도 힘이 빠지기 시작했으니, 얼마전 인터뷰에서 밝힌 바대로 '리얼버라이어티의 끝은 다큐멘터리다.'라고 하는 생각의 변화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미 지금은 떠난 신원호PD가 인터뷰에서 밝혔던 억지로 무언가 만들려 하지 않으며 단지 모아놓고 카메라를 돌릴 뿐인 명실상부 연예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것이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 주제를 던져 놓고 그에 임하는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반응들을 리얼하게 전하는.

이를테면 리얼버라이어티를 넘어서는 다큐버라이어티라고나 할까? 리얼리티라고는 하지만 출연자들이 의식해서 말을 만들고 상황을 만들고 장면을 만드는 여타의 리얼버라이어티와는 다른 그조차도 의식하지 않는 버라이어티라는 것이다. 차라리 할 말이 없으면 병풍으로 있는다. 이렇다 할 보여줄 것이 없으면 가만히 뒤로 물러나 병풍으로 남아 있는다. 그러고 보면 '비덩'이라는 이름으로 비주얼만 맡으며 철저히 병풍역할을 했던 이정진이 전혀 어색하거나 아쉽게 느껴지지 않았던 예능도 <남자의 자격>이었다. 웃기지는 않아도 막내 윤형빈이 없으면 어쩐지 어색할 것만 같은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러면 예능인데 웃기지도 않고 어디에다 쓰는가? 바로 '청춘합창단'에 답이 있다. 그동안에도 주욱 웃기지 않는 예능으로 비판을 들어 왔음에도 어느새 동시간대 시청율 1위까지 기록하며 <1박 2일>과 함께 일요일저녁의 최강자 <해피선데이>를 이끌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바로 감동, 다른 말로 공감이다. 항상 <남자의 자격>이 화제가 되곤 했던 이유.

재미란 여러 의미로 쓰인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가 즐거움이다. 즐거움이란 달리 낙천과 긍정이다. 근심도 걱정도 없이 단지 지금이 즐겁고 행복한 것. 반드시 웃음을 통해야만 하는가? 그보다는 결과적으로 짓게 되는 웃음일 터다. 끝끝내 다리를 끌면서도 마라톤을 완주하는 이윤석을 보면서 느끼는 감동. 24시간의 금식 끝에 겨우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몰래 감추어 두었던 빵을 동생들과 나눠먹으려 하던 이경규를 보면서 느끼는 어떤 짜릿함. 김태원이 인기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넉살이 좋다. 심각한 일을 전혀 심각하지 않게 대한다. 힘들면 힘든대로.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못하겠으면 못하겠는대로. 그래도 괜찮다.

"이만하면 좋지 아니한가?"

'청춘합창단'의 주제이기도 할 것이다. 누구나 지금이 힘들다. 지금이 어렵고 고통스럽다. 고민도 많고 갈등도 많을 것이다. 오로지 나만이 불행한 것처럼. 나만이 이런 일을 당하는 것처럼.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같은 고민들이란 얼마나 사소한가. 1년 전에 자식을 잃고서도 부부는 서로 의지해 웃을 수 있고, 15년 전 잃은 아들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는 이제 슬픔마저 삭고삭아 여상한 떨림을 들려준다. 그래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남자의 자격>을 보고 나면 <남자의 자격>에 나온 미션을 한 번 쯤 따라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되는 것도 그래서다. 굳이 무리해서 하려 하지 않는다. 굳이 무리해가며 성공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모자르면 모자른대로.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모습 그대로.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역시 중년 이상을 위한 프로그램이라 할 것이다. 이제는 성공이라는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실패해도 이만하면 좋지 않은가. 단지 그것을 시도해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별 것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남자의 자격>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윤석은 마라톤을 완주했던 것일 테고, 김태원도 역시 지리산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일 터다. 그야말로 인생이다. 일상의 삶이다. 꾸미지 않은. 아마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자격>이 10%이상의 꾸준한 시청율을 기록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공감대일까? 휴일의 피곤에도 지친 일요일 저녁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해야 하는 때 위로가 되어준다. 힘이 되어 준다. 작은 웃음과 소소한 일상으 공감이.

어차피 대단하게 웃겨보자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웃음만을 얻고자 했다면 굳이 <남자의 자격>이 아니어도 좋았을 것이다. 처음의 멤버들 역시 그다지 웃음을 기대한 멤버구성은 아니었다. 전현무는 몰라도 양준혁 역시 웃음을 기대하고 새로 영입한 것은 아니었을 터다. 그 나대기 좋아하던 전현무조차 어느새 <남자의 자격>의 멤버가 되어서는 아직 조용하기만 하다. 예능이기에 예상하고 예능이라서 기대한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에게는 <남자의 자격>만의 색깔이 있고 재미가 있다. <남자의 자격>이기에 줄 수 있는 재미이고 즐거움인 것이다. 필자가 첫 회 이후 한 회도 빠지지 않고 지켜보는 이유일 것이다. 그 어떤 프로그램도 <남자의 자격>을 대신할 수 없다. <남자의 자격>이기 때문이다.

가장 웃긴가? 가장 웃긴 것은 모르겠다. 가장 감동적인가? 그것도 사실 모르겠다. 그러나 편안하다. 그리고 재미가 있다. 일상의 긴장과 피로를 풀어준다. 그것이 <남자의 자격>의 재미일 것이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그 담백함. 그것이 리얼리티를 넘어선 다큐버라이어티의 힘일 것이다. 이제는 마치 일상의 한 부분과도 같다. 밥은 건너뛰어도 <남자의 자격>은 반드시 보고 넘어가야 하는 듯한.

PD도 바뀌고 그렇지만 지금의 색깔을 유지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괜한 시청율에 대한 욕심 대신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시청자들에 대한 믿음을 지켜주기를. 항상 지켜볼 것이다. 부디 101가지를 넘어서 1001가지까지 할 수 있기를. 가장 사랑하는 프로그램이다.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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