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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4.06.30 07:31

[김윤석의 드라마톡] 정도전 마지막회 "민본의 나라 조선, 그 멈추지 않는 이상을 위해"

악역이 되어 버린 이방원, 영웅 정도전이 시대를 가리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원래 민본은 유가의 근본이라 할 수 있었다. 유가의 사상이 동시대 다른 사상들과 차별되는 지점일 것이다. 가부장적 권위와 수직적인 질서 위에 그에 비례한 책임 역시 함께 강조하고 있었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어버이는 어버이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임금에게 최선이란 백성을 바르게 보살피는 것이다.

천하는 어느 누구의 것이다. 모두의 것이며 따라서 모두가 함께 누리고 함께 책임도 나눠야 한다. 유가에서 말하는 가부장적 신분질서란 바로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 터다. 하늘이 임금을 내는 것은 임금의 자리를 빌어 모두를 이롭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관리가 관리인 것도, 선비가 선비일 수 있는 것도, 농부가 되고 어부가 되는 것 역시 모두가 천하를 이롭게 하기 위해 하늘이 그리 정한 것이었다. 엄격한 신분질서를 말하면서 묘하게 평등을 함께 말하고 있었다. 임금이 임금으로써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일개 필부만도 못하게 된다. 바로 공자의 대동사회였고 맹자의 왕도사상이었다.

정도전(조재현 분) 한 개인의 생각이 아니다. 조준(전현 분)이 반역임을 알면서도 이방원(안재모 분) 앞에서 스스로 무릎을 꿇었던 것도 결국은 같은 이유에서였다. 비록 조선의 임금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조선이 이성계(유동근 분)의 것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고려왕실에 자격이 없다고 여겼기에 새로운 임금을 찾아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이성계보다 더 자격을 갖춘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마땅히 임금의 자리는 그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하물며 이미 스스로의 실력으로 임금의 자리를 움켜쥐려 하는데 굳이 그것을 거스를 필요는 없다. 누가 임금이 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임금이 되고 나서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물론 왕의 아들이기까지 하니 명분상 크게 문제될 것도 없었다.

▲ KBS 제공
그만큼 정도전의 실정이 뼈아팠다. 정도전과 함께 무모한 요동정벌을 고집하던 이성계에 대한 실망도 컸다. 이방원이라면 다를 것이다. 사실상 아버지 이성계에게 반기를 든 이방원의 행동에 동의하는 자체가 곧 조선이라는 나라가 이성계 개인의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증거인 것이다. 힘이 있는 자가 왕위를 차지하는 것이니 이방원이 아니더라도 나중에라도 누군가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면 마음대로 왕위를 차지할 수 있다. 그래서 손자인 세조 역시 적손이던 단종을 밀어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고, 연산군의 폐정은 중종이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르는 명분이 되어주고 있었다. 인조반정까지 이들은 반역이라 부르지 않고 정난이라, 혹은 반정이라 부른다. 어긋난 임금의 자리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았다는 뜻이다.

태종이 즉위하고도 양녕대군의 폐세자를 두고서 신하들과 대립하고 있기도 했었다. 누구를 세자로 삼는가는 임금의 권한이다. 임금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차 누가 임금이 될 것인가를 두고 신하들은 양녕대군을 지키려는 태종의 의지에 맞서 결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기는 태조의 조선건국에는 반대했으면서도 이미 조선이 건국되자 조선조저에 출사하여 벼슬을 살았던 이들도 많았다. 당장 태종의 측근인 하륜(이광기 분)과 권근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세조의 찬탈은 반대했는데 성종의 부름에는 응했다. 세조의 찬탈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세조의 후손인 새로운 왕들에게는 충성을 다하는 모순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물론 조선이라는 나라는 왕의 나라였다. 정도전이 살아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성계의 나라였고, 태종 이방원의 나라였고, 세종의 나라였다. 한 번도 왕이 아닌 존재가 왕을 넘어서 권력을 휘두른 적이 없었다. 세도정치기에도 여전히 모든 권력은 왕 한사람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다만 나라의 주인으로서 임금 개인에게 지워진 정치적인 책임의 무게가 남달랐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임금의 나라지만 임금이라는 자리는 조선에 사는 모두의 것이다. 그나마 세조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정통성에 흠집이 생긴 이후 조선의 임금들에게 사생활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도전의 의도와는 달랐지만 어쨌거나 천하는 다시 천하인의 손으로 돌아간 것이다. 영정조 이후 왕권의 독주에 기댄 세도정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결국 드라마적인 재미를 위해 최대한 단순화시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도전이 처음으로 한 말도 아니다. 임금은 단지 천하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유학자로서 이방원 또한 그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처가다. 공적으로는 공신들이다. 그러나 다음대 보위에 오를 세자를 위해 이방원은 과감하게 세자의 외가를 정리한다. 양녕대군을 대신해 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된 뒤에도 자신의 최측근까지 희생해가며 충녕대군의 처가까지 철저히 숙청하고 만다. 인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같은 잔혹한 행위의 이면에는 인정에 이끌려서는 안되는 공인으로서의 임금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숨어있었다. 어차피 조선이라는 나라가 임금 개인의 것이라면 명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임금의 위세를 빌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임금 개인에게 피해만 없다면 전혀 상관할 바가 없는 것이다. 무리하게 이방원을 정도전의 반대편에 세우려니 그런 무리수도 가능하다.

대를 잇게 해주는 정도가 아니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정도전의 아들 정진은 당장은 죄인이 되어 수군으로 충군되었지만 이내 사면받고 세종대에는 판서까지 되고 있었다. 그 손자인 정문형은 정승의 반열에 오르고 있었다. 정도전과 함께 죽은 다른 아들들 역시 처음부터 굳이 죽이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았었다. 역사에 기록된 이방원은 드라마에서보다 훨씬 냉정하고 침착했다. 이방원이 보인 광기는 역시 드라마적인 재미와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다 보는 것이 옳다. 정도전을 마지막 순간까지 설득하려다 실패했을 때 보인 애증과 왕위에 오르기 위해 자신이 치러야 했던 댓가들에 대한 복잡한 심리는 오히려 이방원의 말년의 모습에 더 어울린다. 그래도 숨가쁘게 달려가는 역사의 시간 속에 복잡하게 변화하는 이방원 개인의 내면은 보는 이의 흥미를 자극한다. 왕과 권력과 인간에 대해서도.

이성계는 틀렸다. 이방원이 옳았다. 왕은 개인이 아니다. 사인이 아니다. 공인이나. 왕이 곧 국가다. 국가란 천하다. 천하는 모두의 것이다. 왕이 개인의 감정을 드러내면 그것이 곧 모두에게 불화의 근원이 된다. 왕이 개인의 호불호를 겉으로 드러내려 하면 그로 인해 소요가 일고 혼란이 생겨나고 만다. 이성계의 정도전에 대한 일방적인 신임이 결국 조선을 지금과 같은 혼란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막내인 방석을 세자로 삼았다면 가장 위협이 되는 이방원 역시 정리했어야 옳았다. 무엇도 하지 않았다. 이방원은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아버지와 같은 왕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하륜도 이숙번도 정도전과 같은 절대적인 신임은 누리지 못했다. 조선은 이방원의 나라였으며 이방원이 조선 그 자체였다.이방원의 의지로 새로운 조선을 세워나간다.

정도전의 여물지 않은 허튼 이상이었을 것이다. 단지 타고난 혈통만으로 이어지는 왕에 비해 오로지 능력만으로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재상이 모든 정치적 실권을 가지는 정치. 그런데 그 재상은 누가 임명하는가? 이미 한 번 지적한 바 있다. 정도전이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정치적 지위와 권력이 바로 누구로부터 나오고 있는가를. 이성계의 일방적인 신임이 없으면 정도전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정도전이 어떤 이상을 품고 어떤 계획과 능력을 가졌든, 결국 이성계의 신임이 있었기에 지금의 정도전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은 임금이 임명하여 재상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누가 재상이 되는가 역시 임금의 인품과 역량에 달린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임금에 의해 임명된 재상이기에 이성계가 그러했듯 재상의 실정 또한 임금에게 고스란히 책임으로 돌아온다. 그 이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도전의 말처럼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최한기가 서구의 민주주의제도에 감탄했던 것처럼.

민본의 이상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굳이 정도전이 아니어도 되었다. 이방원 역시 즉위하여 태종이 된 뒤 민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훌륭한 정책들을 펼쳐보였다. 태종의 뒤를 이어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라는 세종이 즉위했었다. 즉위과정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세조나 성종 역시 백성의 삶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기록 가운데 하나가 백성을 어떻게 편안케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조정의 관리로부터 재야의 선비들까지 그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이 지금도 문서로써 남아 증명해 보이고 있다. 단지 정도전 개인의 이상이 좌절되었을 뿐 민본은 최소한 세도정치가 이 땅에 나타나기 전까지, 아니 그 동안에도 여전히 살아숨쉬며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다. 정도전의 이름 또한 수많은 선비들에 의해 꾸준히 기억되고 계승되어지고 있었다. 단지 공식적으로 복권된 것이 조선말인 고종때였다는 것 뿐이다.

정도전 한 개인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아니었다. 민본 역시 정도전 개인의 이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의 다른 사대부들과는 다른 정도전만의 특별한 사상이나 실천이 없지는 않았다. 어떤 것들은 역사를 되짚어 볼 때 무척 아쉽고 아깝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시대이고 역사다. 한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것. 그러나 결코 한 개인이지만은 않은 그 무엇. 그 시대 속에, 그 역사의 흐름 속에 단지 정도전 자신만의 삶을 살다 갔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많은 유산들이 조선과 함께 후대로 계승되었다. 좌절이 아니다. 그렇게 역사는 발전해간다.단지 그를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아쉬운 마무리였다. 이방원이 지나치게 악역이 되어 있었다. 선과 악의 대립 속에 단지 권력을 향한 탐욕 때문에 이상이 좌절되는 전형적인 구도를 그리고 말았다. 어쩌면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아직까지도 일반적인 부정적 인식에 근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이란 단지 백성들을 억압하고 수탈하던 양반기득권을 위한 나라였다. 사실이었을까? 백성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던 수많은 유학자 사대부들을 기억한다. 단지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민주주의는 근대에 들어서야 유럽인들에 의해 발명되었다. 시대의 한계였다.

정도전이란 시대였다. 그가 살았던 역사였다. 한 사람의 위인을 위한 전기가 아닌 역사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차라리 정도전이 뒤로 물러나 있음에도 드라마가 높은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 시대와 사람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지고 있었다. 정도전이 전면으로 나서며 오히려 역사와 사람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만다. 시대가 정도전에 가려버린다. 고려멸망 이후 조선이 건국된 이후 드라마의 힘이 전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로지 정도전만 남았다. 그럼에도 인상에 남는 것은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이었을 것이다.

흔치 않은 정통사극이었다. 정통사극에 어울리는 정통연기자들이었다. 짧은 대사 한 마디에도 호흡이 다르다. 화려한 화면과 연출 또한 힘을 더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까지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드라마를 보는 맛이 난다. 무엇보다 드라마로서의 완성도와 재미가 시청자를 TV앞에 모이게 한다. 사치이고 호사다. 잊지 못할 것이다.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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