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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4.06.29 09:07

[김윤석의 드라마톡] 정도전 49회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 왕자의 난이 시작되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 정도전이 괴물이 되어가는 이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물론 왕위에 대한 야심이 아주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예 닿지 않는 곳에 있다면 모를까 왕의 아들이었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었다. 처음 세자를 정할 때에도 신하들에 의해 둘째형 방과와 더불어 물망에 오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정작 막내인 방석에게 세자의 자리가 돌아간 뒤에도 그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거나 야심을 내보인 적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아버지 태조 이성계(유동근 분)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분이 없었다. 현실을 뒤집을 힘도 없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신하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였다. 아무리 자기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어도 그 공이 아버지 이성계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그보다 더 큰 공을 세운 공신도 조정에는 적지 않았다. 세자로 책봉된 이방석의 친모 신덕왕후 또한 변방의 토호에 불과한 이성계가 개경에 정착하여 고려권력의 핵심에 다가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신덕왕후와 그녀의 친정의 도움이 없었다면 격변하던 고려말의 정세에서 이성계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무척 버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았기에 이성계도 신덕왕후를 정비로 삼고 그녀의 소생에게 왕위를 물려줄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하들도 결국에는 이성계의 의지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를 거슬러야 한다. 사적으로는 아버지지만 공적으로는 나라의 주인인 임금이다. 이방원 또한 왕자지만 공적으로 임금의 신하이기도 하다. 아들로써 아버지를 거역하고 신하로써 임금을 범하려 한다. 용납될 수 없다. 성리학의 이상을 쫓던 건국의 주체들에게 그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반역이고 패륜일 뿐이었다. 어떻게 당장은 형제들끼리 힘을 모아 뜻을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후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힘까지 부족하다. 그렇다면 결국 은인자중하며 일신의 안위를 도모하는 것만이 주어진 유일한 선택일 것이다. 태조가 죽고 세자인 이방석이 왕위에 오르더라도 안전만 보장된다면 지금의 위치에서 현재에 만족하며 어떻게든 버텨 볼 수 있었을 것이다.

▲ KBS 제공

그래서 이방원이 주도했던 왕자의 난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그렇지 않아도 신덕왕후 강씨와 공신들의 노골적인 견제로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던 이방원과 그의 형제들에게 있어 사병은 유사시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것이었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경젱자인 자신들을 해하려 할 지 모른다. 단지 가능성에 불과했던 것이 정도전이 추진한 사병의 혁파로 인해 어느새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병마저 잃고 나면 그렇지 않아도 자신들을 견제하는 세자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진다. 더구나 드라마에서도 묘사된 그대로 이성계가 병석에 눕자 다짜고짜 왕자들을 왕궁으로 불러들이고 있기도 했었다.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실제 비슷한 시기 명나라에서도 새로이 즉위한 건문제를 위해 위협이 되는 숙부들에 대한 숙청이 진행되고 있었다.

왕자의 난 당시 의외로 희생자가 적었던 것은 바로 그래서였을 것이다. 정적에 대한 제거가 아니었다. 정도전과 함께 있던 다른 아들들은 죽었지만 정작 떨어져 있던 큰아들 정진은 다름아닌 태종에 의해 사면되어 재상의 반열에까지 오르고 있었다. 직접적인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정도전, 남은, 심효생, 정지화 등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니 정진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가족에 대해서까지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난 뒤 바로 용서한다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자신의 즉위를 방해하거나 반대한 이들에 대해 계유정난 이후 세조가 보인 행동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 대상을 한정할 수 있었던 것은 목적 역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것이 왕위였는가 자신들의 안전이었는가는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정도전에게 왕위에 대한 야심을 버리겠다 거짓약속을 하고 나온 이방원의 표정이 복잡했던 것이었다. 죽여야 하는데도 죽이지 못했다. 이방원의 약속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끝끝내 이방원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이방원이 미워서가 아니다. 이방원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개인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방원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 역시 정도전에 대한 원한이나 미움에 있지 않다. 정치적으로 서로 적대하는 사이지만 그것이 곧 개인적인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큰 사람이라는 것일 게다. 오로지 자신의 대의에 의해서만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방원의 대의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다. 자신이 왕위에 올라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정도전과 약속한 민본의 대의를 위한 나라를.

결국 모든 것이 정도전 자신으로 인해 비롯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도전 자신이 동기가 되었다. 정도전 자신이 동력이 되어 주고 있었다. 지나치게 막다른 궁지로 내모는 정도전 자신의 행위가 왕자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거스르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등떠밀고 있었다. 당장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명분까지 제공했다. 정도전의 잦은 정치적인 실책들이 정도전을 비호하는 이성계 자신의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정도전을 막지 못하면 더 큰 혼란이 조선을 뒤덮게 될 것이다. 어차피 한계에 이른 고려를 일신하기 위해 이성계를 선택하여 새로운 왕조를 열었던 공신들이었다. 이성계 자신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변명거리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병석에 누웠으니 직접 관여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이성계를 사이에 두고 이방원과 마주보고 있는 정도전의 모습이야 말로 정도전이 주장하던 총재정치의 한계이자 정도전 자신의 한계였을 것이다. 오로지 이성계에게 의지한다. 이성계가 건재해야만 정도전 자신도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다. 대의를 주장하지만 이성계라고 하는 개인과 개인의 권위에 기대고 만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나의 방식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방식이더라도. 과거 정몽주와 나누었던 대화는 그런 정도전 자신의 무의식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이성계가 아니더라도, 정도전이 아니더라도, 이방원이나 다른 누구라 할지라도. 그것이 대의다. 그것을 놓치 못하는 것은 정도전의 아집이다. 그가 괴물인 이유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 순간 정도전은 이방원을 죽이지 못한다. 괴물도 되지 못한다. 이성계에 의지한 자신은 이성계가 사라지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그동안 곳곳에 만들어둔 적들이 그를 더욱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 것이다. 그 이후를 생각한다. 이방원마저 사라지면 누가 있어 민본의 대의를 새로운 나라 조선에 세워줄 것인가. 동지로서의 자각인지도 모르겠다. 서로 가는 길은 달라졌지만 마침내 이르게 될 그곳이 민본의 대의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을 이방원 자신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죽일 수밖에 없지만 대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다.

어쩌면 차라리 이방원을 철저히 약자로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입장으로 그려넣었으면 조선건국 이후도 재미있어졌을지 모르겠다. 정도전이 새로운 조선의 중심에서 자신의 대의를 실천해가는 과정이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왜곡되어가는 과정을 더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것이 결국 자신이 세운 이상과 새로운 조선의 틀을 허무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방원이 아니다. 하륜이나 이숙번도 아니다. 가장 큰 적은 정도전 자신이었다. 하기는 역사의 정도전과 드라마의 정도전도 상당히 다르기는 하다. 다만 사소한 욕심일 것이다.

거의 끝이다. 거병이 시작되었다. 역사에 기록된 1차 왕자의 난이 시작되고 있다. 역사대로 정도전은 남은의 첩 집에서 당여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있다. 왕자들의 사병을 대신해 하륜과 이숙번이 지방군을 이끌고 도성으로 들어온다. 훗날 원경왕후가 되는 이방원의 부인 민씨는 감춰둔 무기로 하인들을 무장시켜 이방원에게 쥐어준다. 이성계는 아직 병석에 있다. 바로 직전에 시간이 멈춘다. 드라마의 마력이다. 하루의 유예를 준다. 기다려야 한다.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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