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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29 07:24

공주의 남자 "종학을 찾아가는 좁은 샛길과 낮은 쪽문처럼"

홍수현이 경혜공주이고 문채원이 세령인 이유...

 
처음으로 궁궐이 왕과 그 가족과 내시와 나인 등 무수한 사람들이 살던 생활공간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경혜공주(홍수현 분)의 수족인 궁녀 은금(반소영 분)을 쫓아 종학으로 향할 때, 좁은 궁의 뒷길리며 작은 쪽문들이 과연 옛사람들은 이 길로 다녔겠구나 아련한 마음마저 들게 했다.

세령(문채원 분)이 종학으로 가기 위해 궁문을 들어섰을 때 우연히 김승유(박시후 분)와 스치는 장면도 좋았다. 역시 이런 장면에서는 자동차보다는 가마가 어울릴 것이다. 선팅이 된 차창보다는 한지가 발린 창호가 훨썬 더 어울릴 것이다. 조심스럽게 창을 열고 닫으며 교차하는 김승유의 모습. 김승유가 돌아볼 때에 창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을 때는 더 이상 그의 모습은 없다. 마치 운명의 엇갈림처럼. 확실히 감독이 카메라 앵글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앞서의 궁녀 은금을 쫓는 장면에서도 마치 실제 은금의 뒤를 쫓듯 앵글을 절묘하게 잘 잡더니만.

역시 로맨스는 화면이다. 장면이다.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는가? 매 순간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연기자는 물론 영상을 통해서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김승유와 말을 타던 벌판에서 홀로 쓸쓸히 그리워하고 있는 그녀를 신면(송종호 분)이 우연히 발견하고 다가가는 모습처럼. 세령은 여전히 김승유만을 바라보고, 신면은 그런 세령을 바라본다. 역시 엇갈림이다.

필자가 <공주의 남자>에 대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일 것이다. 화면이 참 예쁘다. 사랑을 하는 김승유와 세령의 모습이나, 그런 김승유와 세령을 질투하며 한 나라의 공주로써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경혜공주의 모습이나, 그리고 서로 모여 권력을 향한 추악한 모의를 하는 수양대군 등의 모습이나. 각각의 색이 톤이 달라 묘한 느낌을 전한다. 한없이 밝고 화사하고, 그런가 하면 더웁고 무겁고, 더구나 음침하고 불길하기까지 하다. 어느샌가 경혜공주가 머무는 공간마저 그렇게 물들어간다. 감옥에서조차 서로 대화를 나누는 김승유와 세령의 너머로 보이는 수양대군은 짙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개인적으로 홍수현이 공주일 수밖에 없고 문채원이 여주인공이 세령의 역할을 맡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경혜공주 문채원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세령 홍수현을. 홍수현에게는 공주로서의 무게감이 어울린다. 그녀는 철저히 공주로써, 무엇보다 당시의 실존인물로써 그 배경에 녹아들어가 있다. 수양대군에게 그러면 자신을 추국하라 할 때의 눈빛은 과연 공주의 눈빛이었다. 그에 비하면 문채원의 캐릭터는 어딘가 동떨어져 있다. 시대에 속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김승유의 캐릭터가 정작 그 안으로 녹아들지 못하는 것처럼.

마치 남의 일인듯.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인듯.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그래도 물론 시대는 그네들을 끌어들인다. 어른의 사정이 젊은이를 죽인다. 어른의 탐욕과 입장이 젊은이를 희생시킨다. 경혜공주나 신면 등과는 달리 전혀 비장하지 못하기에 오히려 그것이 더 절실히 느껴진다. 전혀 아무런 고민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들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시대라는 것은 그렇게 잔인하고 가혹하다.

어쩌면 이 드라마야 말로 궁궐의 좁은 샛길과 같은 드라마인지도 모른다. 많은 드라마에서 보여졌던 화려하고 웅장한 겉모습 이면의 좁은 샛길과 낮은 쪽문처럼 숨겨진 역사의 이면으로 안내하는지도 모른다. 그때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지금의 눈으로. 지금의 생각으로. 지금의 감성으로. 단지 몇 줄에 불과한 문장에서 이름조차 없던 이들을 되살려내어. 그들이 되어 시대를 살아간다.

아무튼 진정 어려운 것이 그래서 다름아닌 사극일 것이다. 필자의 경우만 해도 사실 이 드라마의 끝에 대해 어렴풋 짐작하고 있다. 일단 김승유와 세령은 물론 정종(이민우 분)과 신면, 경혜공주 등 주요인물들의 끝을 알고 있다. 어쩌면 신면의 죽음과 관련해서 이시애의 난까지 등장하게 될지도. 김승유는 이시애의 난에까지 참가하게 되는 것일까?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미 알고 있다. 다른 창작물과는 달리 역사드라마는 실제 있었던 역사적 배경과 인물들을 통해 이루어지기에 대부분 그 전개나 결말에 대해 대충은 짐작하고 보게 된다. 이미 결과를 아는 드라마가 재미있을 것인가? 그래서 역사드라마는 그 과정이 중요해진다. 경혜공주가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보다는 경혜공주는 과연 어떤 캐릭터였는데 어떠한 과정을 거쳐 그러한 결과에 이르게 되더라. 역시 홍수현이 경혜공주의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미안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홍수현이 여주인공 문채원보다는 평가가 높다.

하지만 세령과 김승유의 로맨스에 대해서는 철저히 작가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얼추 짐작은 하지만 그에 대한 그 어떤 힌트도 없는 상태다. 깊이보다는 느낌이 중요하다.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 사랑스러움. 사랑이 주는 애절함과 아름다움. 지금까지 문채원은 그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내고 있다. 일단 설렌다. 세령과 김승유가 같이 있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들이로구나 느끼게 된다. 역시 이 또한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시대를 정면으로 맞아야 했던 경혜공주와 그러한 시대로부터 살짝 비껴나 있던 세령. 공주로써 시대의 중심에서 그 시대를 맞아 치열하게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경혜공주에 비해 그 이름마저 역사로부터 지워져버린 세령의 존재가 갖는 의미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김승유를 향한 두 여자의 다른 사랑의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경혜공주에게 김승유란 현실이기도 하다면 세령에게는 온전한 꿈이었다. 수양대군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다른 눈빛처럼. 그들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런 드라마인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일 것이다.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내가 한다!"

그야말로 공주다운 사랑법이라고나 할까? 세령은 공주에게 매달려 사정할 수 있다. 하지만 공주는 설사 임금 앞에서도 함부로 매달려서도 사랑해서도 안 된다. 김승유에 대한 간절함과 그러면서도 공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 하는 치열함. 차라리 김승유를 죽이겠다. 죽이더라도 세령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 진심으로 경혜공주와 홍수현이 아름다워 보였다. 차라리 자신을 추국하라며 수양대군을 노려보던 눈빛과 함께.

이제 정종도 경혜공주와의 결혼을 계기로 전면으로 나서게 될 테고, 신면 역시 세령의 약혼자로써 그 비중이 커져갈 터다. 김승유는 주인공이니까. 서로 엇갈리는 마음과 그로 인한 애증과 그리움, 질시와 원망, 증오. 어른들은 탐욕으로 싸우고 젊은이는 정으로 갈등하고 부딪힌다.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대립이 첨예해질수록 그들 사이에 휘도는 감정의 골 또한 깊어지고 예민해지리라.

사실 약간은 역사적인 사실을 무시하고 전재하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역사를 재현하는 드라마가 아니니까. 이를테면 트릭일 것이다. 사실 가운데 거짓을 숨긴다. 진실 사이에 허구를 숨긴다. 의도한 바 꾸민 이야기를 더욱더 사실 속에 숨겨 속여 들려준다. 그런 만큼 사실에 대한 묘사는 매우 훌륭하다. 다만 사소한 부분에서는 과감하게 무시하며 이야기 자체에 충실하고 있다. 더욱 극적 재미나 흥미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알면서도 속아넘어가는 기분이란 이런 것일 게다.

기대하며 본다. 매회 설레며. 세령과 김승유가 마치 실재했던 사람들인 것처럼. 그 시대가 아닌 지금에 살아가는 연인인 것처럼.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매력일 테지만. 이 또한 트릭일 터다. 마음껏 속아주며 즐긴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시대를 살았던 어느 연인의 이야기를. 즐겁게. 재미있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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