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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6.27 09:36

[김윤석의 드라마톡] 개과천선 16회 "조기종영과 허술한 마무리, 시청자를 배신하다"

프로답지 못한 드라마, 실망과 아쉬움만 남기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프로와 아마추어를 나누는 기준은 결국 계약일 것이다. 아마추어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 어차피 아마추어가 하는 것은 일이 아니다. 누구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좋아서 하고 싶어서 하는 단지 취미생활에 불과하다.

그러나 프로는 다르다. 프로는 일을 한다.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대가란 책임이다. 자기가 받는 대가 만큼 약속된 일을 해내야 한다. 그래서 계약서도 쓴다. 자기가 해야 할 일과 그에 대한 댓가,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과 권한에 대해 문서화하여 확정한다. 작가로써 드라마의 대본을 쓰기로 했다면 드라마의 촬영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일정한 여유를 두고 대본이 배우들에게 도착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1주일에 2회 방송은 시청자와의 약속이다. 그 일정에 맞춰 촬영을 진행한다는 것은 배우와 스태프와의 약속이다. 드라마의 완성도를 위해서 촬영에 들어가기 전 사전준비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편집의 완성도를 위해서도 촬영을 마치고 방송으로 내보낼 때까지 역시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최소한 대본을 쓰는 입장에서 대본으로 인해 촬영이 늦춰지거나 배우와 스태프의 스케줄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책임이며 또한 의무다. 그러라고 비싼 원고료를 지불하며 프로작가와 계약하는 것이다.

▲ MBC 제공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있고 시청률이 높고 하는 것은 나중문제다. 작가 혼자서 만드는 드라마가 아니다. 배우는 연기해야 하고 스태프는 촬영해야 한다. 편집까지 마치고서야 비로소 드라마는 방영된다. 그 과정 자체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드라마의 완성도도 역시 보장할 수 없다. 결국 높은 관심과 호응 속에 화제를 모으며 시청률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던 드라마 '개과천선'이 조기종영하게 된 데에도 지지부진한 대본작업으로 인한 대본의 부재가 적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촬영스케줄과 배우들의 스케줄에까지 악영향을 미쳤다. 더 이상 드라마 제작을 이어갈 수 없다.

현실의 사정이나 여건이 그럴 수밖에 없기에 늦춰지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 할 것이다. 한국의 드라마제작환경에서 마지막까지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대본을 완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래서 대부분 촬영막바지에 이르면 쪽대본을 날린다. 구조적인 문제다. 하지만 축구경기와 선거중계로 인해 각각 1회씩 1회분 일주일 분량의 여유가 생겼음에도 여전히 비축분이 준비되고 있지 않은 상황은 납득하기 힘들다.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는다고 촬영까지 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스타일이라기에는 프로답지 않은 무책임한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창 재미있게 보다가 갑작스럽게 덜 여문 마무리로 흐지부지 끝내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이것저것 기대를 키워가며 보고 있는데 시간에 쫓기며 중간은 생략되고 허술한 결론만을 덩그러니 내놓고 있다. 차라리 배신이다. 시청자는 단지 TV앞에 앉아서만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도, 드라마를 보고 나서도, 드라마에 대해 생각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일상에서 드라마를 즐기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시간들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그나마 의미가 있었던 것은 김석주(김명민 분)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해 비로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일 게다. 어린 김석주의 집을 찾아온 흙발의 주인공은 권력기관의 누군가가 아니었다. 과거의 김석주가 그토록 혐오하던 아버지 김신일(최일화 분)이 도움을 주던 사회적 약자 가운데 하나였다. 낚시를 가자는 김석주의 말에 놀라는 김신일의 반응이 그래서 이해가 간다. 작가 나름의 정교한 장치였을 것이다. 기억을 잃음으로써 낚시를 싫어하게 된 이유까지 잃어버렸다. 상실은 곧 화해를 위한 기회다. 더이상 김석주는 김신일도, 김신일이 그토록 위하고자 했던 사회적 약자들도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과거를 뉘우쳤다고 죄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과거 자신이 저지른 행위까지 모두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노조의 도움으로 골드리치라는 거대다국적자본과 싸워 백두그룹의 경영권을 지켜낸 김석주지만, 그러나 그 과정에서 차영우로펌이 사용한 노조와해전략 역시 과거의 김석주 자신의 머리에서 나왔던 것이었다. 골드리치기 백두그룹을 집어삼키는 과정에서도 김석주 자신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자신의 망령과 싸우는 것 같다. 아마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상세하게 다루어졌다면 그 자체로 꽤나 흥미로운 드라마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나레이션처럼 스쳐지나간다.

대한민국의 기업인들을 질타하는 듯하다. 기업을 마치 사유물처럼 생각한다. 사용자 자신의 개인적 감정을 위해 기업의 자원과 자산을 마음대로 사용한다. 10대그룹임에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격지심이 기업을 위기로 내모는 무모한 투자와 확장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현금장사를 하는데 그로 인해 유동성 위기가 왔다. 골드리치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과정에서도 구체적인 계획이나 전략 없이 주먹구구로 일관하고 있었다. 자본을 무기로 세계라는 전장에서 침략을 일삼는 자본의 제국 골드리치와 상대하기에는 돌도끼를 든 벌거숭이 원주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무지와 무능력, 백두그룹을 위기로 내몬 것은 백두그룹의 오너 진진호(이병준 분) 자신이었다.

노조의 도움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도움이 없이는 백두그룹의 경영권을 지킬 수 없다. 그런데 노조가 경영진을 믿지 못한다. 당연하다.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자 진진호는 바로 말을 바꾸려 한다. 생산직노조와 사무직노조가 연대했다. 믿어야 할 것은 경영진이 아니다. 노동자 자신이다. 그들을 설득한 것도 같은 노동자의 딸인 이지윤(박민영 분)이었다. 전혀 다른 직장에 다니지만 노동자이고 노조위원장이라는 공감대가 그들을 서로 이어준다. 답은 그곳에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을 해결한 것은 원래의 김석주가 하드에 저장해 놓은 녹음파일이었다. 역시 조기종영으로 인해 급히 정리해야만 하는 혐의를 피할 수 없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다. 단지 돈문제다. 억울하고 안타깝지만 고작 그런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물질세계에 존재한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서도 최소한의 물질은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물질이 곧 자본이다. 꿈을 꾸기 위해서도, 먹고 살기 위해서도,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데도 자본은 필수다. 단지 돈이지만 그 돈을 잃는 순간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존재를 잃는 것이나 다름없어진다. 그 처절하고 절박한 전장에, 그러나 전혀 자각없이 존재해 왔다. 자각이다. 그깟 돈문제로 인해 죽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그깟 돈문제로 인해 직접 손에 피만 묻히지 않을 뿐 자신 역시 무수한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는 것을. 조금 더 정교하게 드라마 속에 등장시켰어야 할 대사일 테지만.

대사의 나열이다. 시간에 쫓기면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선택은 제한되어 있다. 다른 것은 배우와 감독에게 맡기고 단지 대사만을 써서 전달한다. 대사가 있으면 대사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나 전체적인 구조는 베테랑들에게 맡길 수 있다. 오해이기를 바라지만. 드라마가 막바지에 이르면 클로즈업이 늘고 특정한 백경이 반복해서 자주 쓰이게 된다. 조기종영으로 인한 배신감이 분노로 실망감으로 변해간다. 어쩔 수 없는 시청자의 입장인 때문이다. 드라마라도 차라리 재미없었다면 실망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크다.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전문법정드라마였다.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드라마적으로 재현해 보여준다. 사회경제적인 이슈와 그 이면을, 그리고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법정이라는 치열한 전장을 보여준다. 흔한 로맨스조차 없이 단지 법과 정의와 진실이라는 이름만을 고민하며 끝낸다. 차영우로펌과의 승부를 미완으로 끝낸 것은 차영우로펌이란 이 땅의 왜곡된 법과 정의와 진실을 상징하여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보다 과장되었다. 김석주가 앞으로 싸워나가야 할 이 사회의 망령이다. 아직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끝나고 나서도 드라마를 놓치 못하게 만든다. 이것이 끝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기종영하는 드라마답게 마지막은 허술했다.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부실하기 이를데 없었다. 마치 철거를 앞둔 시장의 좌판과 같았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는 날이 서 있었다. 작가의 대사에도 살기가 보였다. 역시 놓지 못하는 이유다. 진정 가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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