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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28 08:38

넌 내게 반했어 "90년대 청춘드라마에 대한 추억"

내가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계속해서 보게 되는 이유...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왜 그토록 불만스러워하면서도 <넌 내게 반했어>라고 하는 드라마를 매번 빠뜨리지 않고 챙겨보는가. 7월 27일 드라마의 9회가 바로 그에 대한 답을 들려주었다.

어려서 즐겨보던 드라마 가운데 <사랑이 꽃피는 나무>가 있었다. 그로부더 얼마 뒤에는 <우리들의 천국>이 장동건이라는 스타를 만들어내며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었다. 이들 드라마의 공통점을 꼽아보자면 첫째 캠퍼스를 배경으로, 둘째 청춘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셋째 인기스타가 출연한다.

말 그대로다. 말 그대로 당대의 청춘스타가 출연하는 청춘드라마였다. 청춘스타란 당시의 청소년들에게 아바타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간절한 바람과 욕구를 투사하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청춘드라마는 바로 그러한 아바타들을 통해 당시 청소년들이 꿈꾸던 이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상화된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통해서.

저녁시간대였다. 더구나 회수의 제한도 거의 없다시피했다. 굳이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의지해 매회 다른 사건을 일상속에 등장시키고 해결해 나갔다. 아마 시트콤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이다. 한 회 정도 보지 않는다고 크게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실제 중간에 몇 회 건너뛰고 보았음에도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크게 곤란하거나 하지 않았었다. 말 그대로 편한 시간대에 편하게 보는 그런 드라마였다.

그게 문제였다. 저녁 10시 시간대란 아무래도 오던 잠도 쫓을 수 있는 일정한 자극성을 요구한다. 미니시리즈란 정해진 분량 안에 압축해 끝낼 수 있도록 사건위주의 전개를 요구한다. 한 마디로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자극적인 사건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넌 내게 반했어>는 거꾸로 간다. 마치 시대를 거스르려는 듯 맑고 밝고 투명하고 순수하던 그 시절의 방식으로. 늦은 시간 피곤한 몸을 누이며 보아야 하는 드라마에서 그렇게 맑고 밝고 투명하고 순수하게 밋밋하게 흘러간다?

경악했다. 아니 처음에는 기대했다. 임태준(이정헌 분)이 정윤수(소이현 분)에게 김석현(송창의 분)을 배반할 것을 제의했을 때, 그리고 정윤수는 그 제안을 고민하고. 여기에서 만일 정윤수가 김석현을 다시 한 번 배반하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정윤수와 김석현이 그렇게 일찍 화해하고 재결합했던 것은 이를 위한 반전을 노린 장치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순간 긴장까지 하며 지켜보았던 장면은 이내 소이현의 너무나 해맑은 이 한 마디로 마무리되고 만다.

"내가 석현씨를 배신했던 것은 석현씨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지금처럼 비겁하게 뒤통수를 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래도 설마 김석현과 정윤수가 한희주(김윤혜 분)를 두고 다투는 장면에서 이것이 정윤수를 자극해서 다시 그녀를 배반하게 만들지 않을까?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또다른 극적인 사건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무언가 자극적인 사건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역시,

"잘못했다!"
"나도 그런 것 아냐!"

이건 그야말로 청춘드라마에나 어울리는 장면이다. 내주도. 그 다음주도. 앞으로도 죽 얼굴을 대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갈 사이에서나 어울릴 법한 너무나 다정하고 보기좋은 모습이었다. 기껏 긴장하며 지켜보던 것마저 허무하게.

바로 직전까지 이규원(박신혜 분)가 이신(정용화 분)를 좋아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규원이 이신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니 이신이 이규원을 좋아하게 되고, 아마 만화에선가 비슷한 장면이 있었을 것이다. 뒷 부분은 사실 늘리기였다. 짝사랑이 해결되고 나니 더 이상 이어갈 이야기가 없어서 짝사랑을 끝내도 새로운 짝사랑을 시작해 버렸다. 순간 느끼게 되는 감정은, 도대체 뭔가?

이신이 이규원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기까지 사실 이렇다 할 계기같은 것도 없었다. 그리 되었을 것이다 납득할만한 사건도 없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이규원이 이신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나니 반사적으로 이신이 이규원에 대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사건들. 그냥 남녀만 바뀌어 전개된다. 그래서 더 할 이야기가 없으니까 이번에는 이규원이 계단을 구른다.

설마 거기에서 계단을 구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밋밋하게 이어지는 일상의 모습 끝에 그나마 일어나는 사건이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작스레 계단을 구르는 것. 연기마저 어색해서 이건 그냥 의도적으로 넘어진 것이로구나. 픽션에는 우연이란 있어서는 안 되는데 필연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새 간호하며 가까워지기에는 그렇게 중상도 아니다. 딱 공연에 지장을 주지 않을 만큼만이라는 어정쩡함이 여기에서도 발목을 잡는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이지 1990년대만 같았어도. 그리고 7시 시간대만 같았어도. 결코 저녁 10시에 일반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할 만한 드라마는 아니다. 공감할 수 있는 나이대가 있다. 필자의 경우 최근에도 그런 감수성의 만화들을 즐겨 읽고 하기에 다시 일깨울 수 있지만, 그리고 실제로도 낮에 한적한 시간에 다시보기로 보면 그렇게 재미없는 드라마도 아니다. 미니시리즈만 아니면. 그리고 심야시간대 드라마만 아니었다면.

기획부터가 잘못된 드라마였다. 방송이 방영될 시간과 그 시간대의 주시청층에 대해 먼저 고려했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방송회수라던가. 그도 아니면 단지 아이돌그룹 씨엔블루의 인기에 기대어 수출만을 고려하고 편성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라면 성공했을지도. <매리는 외박중>과 같은 경우도 국내시청율은 처참했지만 일본에서의 인기는 필자가 예상한대로 상당했었다. 장근석의 인기도 한 몫 했을 테지만 노려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일단 과거에 대한 향수만으로도 볼만한 드라마이기는 하다. 본방사수까지는 무리지만 시간날 때 잠깐 보는 정도는 그리 나쁘지 않다. 최근의 트랜드와는 한참 벗어난 복고취향이랄까? 나쁘다고난 할 수 없지만 상업드라마로서 결코 좋다고도 할 수 없다.

이신의 캐릭터는 제법 매력적이다. 이규원의 캐릭터 역시. 여준희(강민혁 분)이나 한희주, 차보운(임세미 분), 김석현, 정윤수, 임태준 역시 마찬가지다. 이선기(선우재덕 분)와 송지영(이일화 분)의 미묘한 관계도 관심이 간다. 하기는 그래봐야 드라마의 목적에 어울리지 않으면 실패일 테지. 다만 그래도 아주 재미없는 - 못만든 드라마는 아니라는 것일 테다. 목적만 달리 하면, 그래서 편성만 달리 했다면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을 수 있다.

앞으로도 지켜본다. 추억을 자극하는 무엇이 있다. 최수종과 최재성, 손창민이 아직 아이돌이었던 시절. 장동건과 김찬우와 이제는 고인이 된 최진영의 풋풋하던 시절에 대한 기억까지. 이렇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소모될 드라마는 아닌데. 아쉽다. 많이 아깝다.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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