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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28 07:40

공주의 남자 "지금의 눈으로 보며 해보는 즐거운 상상"

세령과 김승유는 바로 지금에서 비롯된 투사다!

 

드라마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픽션이다. 역사드라마란 역사에 기반한 픽션이다. 다만 그 시대로 돌아가 그 시대의 눈으로 그 시대의 사람과 사건들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가. 아니면 지금의 시점에서 지금의 눈으로 그 시대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이는가. 평가도 역시 달라져야 한다.

과연 묻는다. <공주의 남자>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역사드라마인가? 아니면 단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드라마인가? 그 시대로 돌아가 그 시대를 재구성해보자는 것인가? 지금의 눈으로 그 시대를 바라보며 한 번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는 드라마인가?

<공주의 남자>에서 계유정난이란 단지 존재했던 사실에 불과하다. 수양대군도 김종서도 경혜공주도 역시 당시 존재했던 인물들일 뿐이다. 세령(문채원 분)도 김승유(박시후 분)도 사료에는 그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금계필담이라는 설화적인 야담을 담은 책에 잠깐 그 존재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세령이란 이름을 붙이고 김승유란 이름을 지어 화면 속에 살아나게 한 것은 지금의 우리들이다. 지금의 작가이고 감독이고 배우들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마 이제까지의 어느 계유정난에 비해서도 <공주의 남자>에서의 계유정난이 더 치열하고 비정하게 그려지는 것은 그런 때문일 것이다. 누구도 그 당사자가 아니니까. 문종이나 단종의 입장에서 볼 필요도, 수양대군의 입장에서 미화하며 볼 이유도 전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이미 존재했던 사실이며 세령과 김승유를 존재하게 하는 배경으로써의 의미 말고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등장인물들과 유리된 채 더 첨예하게 사실을 다루어도 좋다. 대신 그러한 실재했던 배경 속에 세령과 김승유가 갖는 비극성이 더욱 극대화되는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어쩌면 사극과는 어울리지 않는 현대적인 말투나 행동을 보이는 세령과 김승유의 모습에서 그다지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다른 등장인물들은 거의가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다. 경혜공주(홍수현 분)과 정종(이민우 분), 신면(송종호 분), 수양대군(김영철 분), 김종서(이순재 분), 문종(정동환 분), 한명회(이희도 분), 신숙주(이효정 분) 등등. 그들은 그 시대를 살아갔던 존재로써 연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반면 세령과 김승유는 지금의 시점에서 창조된 캐릭터로써 그것을 연기해 보이면 충분하다. 과연 세령과 김승유가 실제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처럼 사랑하고 갈등하고 고민하고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그들 역시 다른 배우들처럼 사극에 어울리는 말투며 행동을 보이면 그것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더라도 어차피 그들은 현대의 인물들에 의해 현대의 감정과 욕구를 반영하여 만들어진 존재들인 것이다. 이를테면 현대의 의식이 과거로 타임슬립하여 태어난 인물들이 그들인 것이다. 그들의 주위가 실제의 역사와 다르다고 굳이 탓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일 내가 작가였다면 그런 부분까지 계산해서 문채원과 박시후에게 요구했을 것이다. 오히려 더 어울린다.

확실히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한 나라의 공주가 종친의 여식과 서로 신분을 바꾸고, 또 신분을 바꾼 채 그래도 세도가의 딸인 세령이 밖으로 김승유를 만나려 돌아다니고. 한 나라의 공주씩이나 되는 이가 그런 식으로 저자를 거니는 것을 보고도 김승유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일까? 21세기가 아니다. 15세기가 배경이다. 공주인 것을 알면서도 서로 어울려 저자를 거닐며 장신구도 보고 그네도 타고. 거기부터가 역사적 엄밀성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어울리게 연기하고 연출하면 된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문채원과 박시후는 이미 세령과 김승유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있다.

아무튼 역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일 것이다. 세조의 야심을 어떤 대단한 대의로 포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권세 앞에 굽히지 않는 강직한 관리에 대해 협박하여 그 뜻을 꺾게 만들고. 당대의 재사들을 모아 정치와 무관하게 학문에만 전념하도록 만든 집현전을 권력을 미끼로 정치판에 끌어들이고. 참고로 세종이 만든 집현전을 폐한 것이 다름아닌 세조 수양대군이었다. 정통성 없이 불의하게 정권을 잡은 탓에 집현전의 학자들이 그를 거부하고 도전하려 드니 아예 그 언로를 막아버린 것이었다. 세종과 문종을 거치면서 이룩한 조선전기의 위대한 관학의 기풍은 이로써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훈구파와 관학파는 다르다. 관학파란 다름아닌 조정에 출사하여 실무적 관점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집현전이 대표적인 예다. 그에 비하면 훈구파란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을 기점으로 세조를 옹립하는데 공을 세우며 등장한 권신집단이다. 어떤 이익을 노리고 대의를 저버린 채 정난에 참여했던 만큼 이들은 매우 탐욕스럽고 기회주의적인 성향을 보였다. 세조를 세운 공을 내세우며 왕권마저 위협하며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렸다. 사림파가 등장한 것은 이들 훈구파와 대립하면서이지 관학파와 대립한 것은 아니었다. 관학은 훈구파에 의해 옹립된 세조에 의해 명맥이 끊겼고, 훈구파란 그런 학문적 기풍과는 거리가 먼 이익집단이었다. 훈구파와 관학파를 동일시여기는 것은 비참하게 죽어간 사육신을 모욕하는 일이다.

더구나 문제는 그러한 기회주의적인 집단이 왕을 끼고 권세를 잡으면서 조선의 조정 자체가 타락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오히려 왕을 받들며 신념을 지켰던 올곧은 선비들은 거의 세조의 반정에 반대하다 죽어나갔고 일신의 안위와 영달에만 관심이 있는 인사들이 세종을 옹위하며 부귀영화를 누릴 기회로 삼았었다. 어찌되었겠는가? 조정으로 돌아갈 재정은 이들의 부정부패와 탐욕으로 사라지고 조선은 내부에서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림이 그나마 등장하면서 청류의 기풍을 돌이켰기에 망정이지 그럼에도 조선은 세종을 정점으로 이미 쇠락해가고 있었다. 그 계기를 제공한 이가 세조이고, 그 기점이 된 사건이 계유정난이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지금의 탐욕스럽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수양대군과 천박하기 비할 데 없는 한명회와 어울리는 모습이랄까?

그럼에도 그런 시대적 상황과는 상관없이 김승유와 세령의 사랑은 달콤하기만 하니. 마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듯하다. 그들에게 시대를 전하고 시대를 겪게 하는 것도 다름아는 그 시대의 인물인 경혜공주와 신면, 정종 등이다. 신면은 마침내 수양대군을 마주함으로써 그 시대로 뛰어들 준비를 한다. 잔혹한 운명은 그렇게 시작되려는 것이다. 김승유와 세령과는 상관없이. 그런 대비야 말로 이 드라마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을 것이다. 어떤 드라마인가.

상당히 의도도 좋고 만들기도 잘 만든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색감이며 영상이 무척 세련되며 아름답다. 어쩌면 시대가 시대인 탓에 구차하고 비루한 모습도 있을 법 하건만, 어쩌면 이리 아름답기만 한지. 가공된 꿈일까? 그래서다. 이건 그 시대로 돌아가 그 시대로 돌아본 역사가 아니다. 지금 여기서 바라보는 그 시대에 대한 환상이다. 상상이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는 매우 적절하다.

드라마란 결국 작가가 쓰고 감독이 만들지만 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시청자 자신이라는 것일 게다. 그것이 결국 모든 논란의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드라마에 따라 보는 눈을 달리 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조금만 달리 보면 더 재미있어지는 드라마라는 것도 있다.

액션이 참 좋다. 현재 방송중인 3사의 드라마 가운데 액션이 가장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이다.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모자르지도 넘치지도 않는 정교함이 가슴조이는 긴장으로 다가온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액션이다. 역시 관록의 KBS. 앞으로 펼쳐질 김승유의 복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이유일 것이다. 아름답기까지 했다.

좋은 드라마일 것이다. 이런 드라마가 더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있을 정도다. 역사의 시대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살았다. 그 먼 과거의 역사에서도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의 방식이 존재했었다. 역사란 그저 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일 게다. 즐거웠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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