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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6.22 08:56

[김윤석의 드라마톡] 정도전 47회 "요동정벌, 권력과 권력자의 종말"

무엇을 위한 대의인가? 조준이 정도전에게 묻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정도전(조재현 분)이 요동정벌을 추진한 이유로 대개 두 가지를 꼽는다. 한 가지는 정치적인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군사적인 것이다. 명으로의 입조를 거부하고 사병을 혁파한다. 조선건국 이후 가시적인 성장과 발전이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드라마에서 묘사된 그대로다. 명황제의 계속된 입조명령은 정도전을 정치적 궁지로 내몰고 있었다. 정도전이 입조명령을 거부할수록 조선과 명의 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곧 고스란히 정도전 자신의 정치적 책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다고 죽을 것을 알면서도 명나라로 가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사병혁파도 있었다. 조정의 통제를 벗어난 사병의 존재는 장차 나라에 큰 불안요인이 될 것이다. 더불어 세력과 실력, 더구나 명분까지 모두 갖춘 쟁쟁한 이복형들을 항상 의식해야 하는 세자의 입장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라도 빨리 사병을 혁파하여 관군으로 흡수해야지만 새로운 나라는 항구적인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중원의 새로운 주인인 대국 명을 상대로 요동을 정벌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모든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하고, 그것은 곧 흩어져 있던 사병을 하나의 지휘체계 아래 모을 수 있는 명분이 되어 주고 있었다.

▲ KBS 제공

여기까지가 정치적인 이유라면 군사적인 이유란 어쩌면 너무나 흔하고 뻔한 인류사의 클리셰와 닿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전쟁에 있어 그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는 그것이다. 군사적인 자신감. 이길 수 있다는, 최소한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고려말의 혼란을 일신하고 나날이 발전해가는 조선의 모습에 남모를 뿌듯함마저 느꼈다. 정도전 자신의 작품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자신에 의해 세워지고 설계된 새로운 나라가 어느새 전조인 고려를 풍전등화의 위기로 내몰았던 왜구를, 그것도 그 근거지를 선제공격하여 승리를 거둘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원래 부모의 마음이란 자식의 재능이나 실력을 실제보다 더 크게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대마도정벌은 원래 고려말에도 몇 번이나 시도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성공으로 묘사하지만 사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알 도리가 없다. 우정승이든 김사형이 군사를 이끌고 이키도와 대마도를 정벌하러 떠난 기록은 있는데, 2개월 뒤 돌아오는 김사형을 태조가 맞았다는 기록 말고는 남아있는 것이 없다. 그래도 패배는 하지 않았으니 왕이 직접 나가서 김사형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것을 근거로 이야기를 전제한다. 하기는 실제로도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추진하는 과정을 보면 단순히 정치적인 판단으로 시작한 것이라기에는 정도전의 진심이 곳곳에서 느껴지기도 한다. 직접 진접을 고안하고 병사를 훈련시키는 등 정도전의 군사에 대한 관심도 무척 높았었다.

아마 태조 이성계(유동근 분)의 여진족에 대한 영향력도 어느 정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이징옥의 반란이 진압되기까지 동북면의 여진족들은 조선조정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동북면의 여진족을 동원할 수 있다면 명을 상대로 승산은 더 높아진다. 드라마에서 정도전이 이지란(선동혁 분)을 동북면으로 보낸 이유였다. 실록에서는 정도전과 이지란이 함께 북방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여진족을 움직여 요동의 상황을 정탐하고 계획을 세운다. 가장 현실적으로 타당한 전략이었다. 다만 당시의 명군은 북방의 사나운 이민족들조차 보기만 하면 도망칠 정도로 정예의 강군이었다는 사실이다. 북경의 연왕 주체의 병력만 조선의 군사력을 훌쩍 넘어선다. 모든 계획은 머릿속으로는 완벽하다.

아무튼 결국 문제가 이 모든 이유들이 정도전 자신에게 역풍이 되어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명과의 관계마저 악화시켜가며 끝까지 입조를 거부하는 정도전의 태도는 조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명의 요구도 무리한 것이지만 나라를 위기로 내몰면서까지 일신의 안위만을 챙기려는 정도전의 모습 또한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조선은 성리학을 숭상하며 사대를 국시로 삼은 나라였다. 과거 최영이 요동정벌에 나섰을 때 조선의 건국세력은 그를 비판하며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지지하고 있었다. 이제 정도전이 최영과 같은 길을 가려 한다면 그를 공격할 명분은 더 강해진다.

사병혁파의 대의는 물론 옳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직 명분과 실력은 왕자들에게 있을 것이었다. 정도전이 직접적으로 이방원(안재모 분)을 치지 못하는 이유다. 계유정난 당시 김종서가 수양대군을 의심하고 경계했음에도 끝내 그를 먼저 공격하지 못한 이유와 같다. 오로지 왕만이 왕의 혈족인 왕족을 죽이거나 벌할 수 있다. 왕에게 그럴 생각이 없는데 신하가 나서서 더구나 왕의 아들들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것은 유교사회에서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륜(이광기 분)이 주의를 주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만일 이방원이 먼저 정도전을 치려 군사를 일으킨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도전에게 이방원을 죽일 명분이 되어 줄 것이다. 끝까지 명분을 내어주지 않았기에 정도전은 이방원이 행동에 나서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실제의 역사와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다.

먼저 왕자들을 공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왕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공격할 빌미만 주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입조를 거부하며 명과의 관계가 악화된 데 대한 책임을 정도전에게 물으려 하는 상황이다. 사병까지 내주고 나면 왕자들은 더이상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어떤 수단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세자책봉과정에서도 상당한 충돌이 있었기에 세자가 즉위하고 나면 당장 왕자들이 어찌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정도전이 사병혁파를 강하게 밀어붙일수록 왕자들로서는 사병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만 강해진다. 막다른 궁지로 내몰았을 때 그에 대한 반발쯤은 미리 예상했어야 했다. 그런 상화에 현실에 대한 오판으로 요동정벌을 강행하며 조준등과도 틀어졌으니 고립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치적으로 서툴렀다. 서툴기보다는 무능했다. 자기 생각만 앞선다. 머리좋은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너무 많은 것들을 예측할 수 있기에, 자신의 지식과 식견에 그대로 갇혀버리고 만다.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 복잡한 현실의 모든 요소들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아니 헤아리려는 시도조차 않는다. 조준(전현 분)이 왜 자기에게 반발하는지. 어째서 자기와 멀어지려 하는지. 요동정벌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기의 전략에 빠져 패망한 지휘관으로 멀리 조괄이 있었다. 자기만의 계책에 빠져 결국 40만의 병력을 잃고 군사강국이던 조나라를 빈사상태로 빠뜨리고 만다. 정치적으로 유능했다면 자신과 반대편에서 자신과 다른 목적과 입장을 가지고 경쟁하는 관계에 대해서조차 배려하고 그들을 이용하려 했을 것이다. 정도전이 타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준이 말한다. 백성을 위한다면 먼저 군자가 되라. 국민을 위해 가장 올바른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바로 정의로운 나라다.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 바른 길로만 간다면 크게 낭패당할 일이 없다. 잘못된 길만 피한다면 평생 근심걱정없이 살 수 있다. 편법과 모략에 의해 유지되는 나라라면 결국 그 의도를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주위의 눈치만을 살필 수밖에 없다. 어제는 백성들에 해악이 되는 탐관오리를 향하는 칼이었겠지만 오늘은 바로 자신을 향해 겨누어지는 창일 수 있다. 밥만 먹여주면 된다. 안심하며 살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정작 백성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목적을 위해 과정을 돌아보지 않는 사이 어느새 그는 괴물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사랑이 깊어 한이 된다. 한이란 마음에 남기는 상처다. 갈기갈기 찢긴 수필낭이 바로 이방원의 마음이다. 어머니를 사랑했다. 친어머니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부인인 강씨(이일화 분)를 어머니처럼 사랑했다. 미워해야 했을 만큼. 강씨 역시 이방원이 자기의 친아들이 아님을 한탄했으니 두 사람은 끝내 잘못만난 모자지간이었을 것이다. 이성계가 즉위하기까지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던 사이였지만 권력은 끝내 두 사람을 갈라놓고 말았다. 사랑하던 사람의 배신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사랑했기에 미워한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 빈자리를 더 큰 미움으로 채운다. 안재모는 정말 대단한 배우다. 강씨가 죽는 그 순간까지 그 모순된 감정을 치밀하면서도 섬세하게 눈빛으로 표현해낸다. 그녀를 증오하지만 한 편으로 증오할 만큼 사랑했다.

강씨가 마지막 이방원을 가리키던 손을 거둔 것은 숨이 다해서일까? 아니면 그녀의 미움이 다해서일까? 아들을 죽이겠다 말한다. 자신의 친아들을 다름아닌 이방원이 죽이겠다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손에 쥐어준 수필낭처럼. 그를 원망해야 당연하다. 그를 미워해야 당연하다. 자신의 친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성계에게 마지막 힘을 쥐어짜 그를 죽여달라 부탁해야 한다. 죽어가며 남기는 마지막 유언인데 설마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을까. 도성에서 멀리 내치기만 해도 이방원의 의도는 충분히 저지될 것이다. 하지만 끝내 강씨는 이방원을 가리키던 손을 거두며 숨이 다하고 만다. 먼저 힘이 다해서인지. 마지막 순간 애써 외면해 왔던 모다간의 정을 다시 일깨운 것인지. 그럼에도 이방원은 그녀의 또다른 아들이었다.

이방원이 유독 자신의 계모인 신덕왕후 강씨에게 가혹했던 이유가 그렇게 설명된다. 애증이었다. 이미 죽은 사람마저 용서하지 못할 만큼 한이 깊었던 탓이었다. 무덤을 이장하고, 무덤에 쓰인 돌들로 다리를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밟고 지나게 하고, 조선개국 이후 첫왕후였지만 태종에 의해 후궁으로 격하되고 있었다. 조선에서 유독 서얼을 가혹하게 차별하게 된 것도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사랑한다고 다 사랑이 아니고, 미워한다고 다 미움이 아니다. 사랑이 미움이 되고 미움이 사랑이 된다. 안재모가 연기잘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마지막 신덕왕후 강씨의 눈빛은 크나큰 숙제를 남겨준다.

막바지다. 이제 거의 끝이다. 입조거부로 인해 많은 관리와 선비들이 등돌린 상태다. 여기에 요동정벌을 주장하며 조준 등의 공신들마저 정도전과 갈라서게 될 것이다. 하륜이 바란 기회다. 이방원이 노린 절호의 순간이다. 아직 사병이 혁파되지 않았으니 이방원과 왕자들에게는 충분한 힘이 남아 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정도전의 한계다. 역사의 정도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진 능력에 비해 정치적으로는 한없이 미숙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벌써부터 예정되어 있던 결말이지만 마치 새로운 이야기처럼 새삼스럽게 설득당하고 만다. 마치 당시처럼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게 만든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동정도 연민도 없다.

백성을 위한 대의와 나라를 위한 대의, 그리고 임금을 위한 대의, 그러면 이번에는 과연 무엇을 위한 대의일까? 누구를 위한 대의일까? 조준이 묻고 정도전은 대답하지 못한다. 요동정벌은 진정 백성을 위한 것일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인임이 경고한 괴물이 벌써 크게 또아리를 틀고 정도전 자신을 삼켜가고 있다. 이상이 변질된다. 인간이 타락한다. 굳이 부정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인간은 타락할 수 있다. 권력과 이상의 마지막을 보여준다. 그것을 스스로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긴 여정이었다. 수많은 권력자가 있었다. 서로의 권력이 다르고 권력을 향한 의지도 달랐다. 그러나 그 끝은 어쩌면 한결같았다. 마지막 방점을 정도전 자신이 찍는다. 역사를 관통한다. 정도전 이후에도 권력은 있었고 권력자는 있어왔다. 스스로를 돌아본다. 의미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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