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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27 07:58

계백 "잘 만든 기정역사무협드라마!"

다정하여 무정하고 무정하여 다정하다. 그것이 기정奇情이다!

 

말했듯 원래 이런 드라마였다. 사택적덕(김병기 분)과 사택비(오연수 분)의 음모로 인해 신라의 첩자로 몰려 죽음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선화황후(신은정 분)와 왕자 의자(아역 최원홍 분)를 구하기 위해 사택비는 직접 비수를 들고, 한편으로 호위무사 무진(차인표 분)을 구하기 위해 무왕(최종환 분) 또한 직접 복면을 쓰고 감옥으로 침입해 들어간다. 왕과 왕후가 직접 칼을 들고 비수를 든다?

원래 왕이란 전쟁에 임해서도 직접 칼을 휘두르며 싸우는 존재가 아닐 터였다. 물론 알렉산더와 같이 왕이 직접 군의 선두에 서서 말을 몰아 칼을 휘두르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다가 왕이 눈먼 화살에 죽기라도 하면 그것으로 전쟁은 끝나는 것이다. 설사 모든 군과 장수가 전멸하더라도 왕만 살아있다면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물며 음모에 빠져 감옥에 갇힌 부하를 구하기 위해 왕이 직접 칼을 들어야 하다니. 심지어 고귀한 출신의 왕의 비가 직접 비수를 들고 병사를 베어야 한다.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닐 터다.

차라리 몇 안 되더라도 측근들을 모아 지시했다면. 아직 의직이며 은상 같은 왕을 지지하는 장수들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혹은 사택비와 그러했듯이 정치적인 거래를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택비 역시 사택적덕이 자기 아버지인데 일을 모의하여 꾸미는데 직접 손을 써야 할 까닭이 어디 있을까? 체통 떨어진다. 고귀한 신분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무협이라 생각한다면 한 무리의 우두머리란 일을 행함에 있어 자기가 직접 손을 쓰는 것이 옳다. 첫회에서 무왕이 무진과 겨룰 정도의 고수로 묘사된 이유일 것이다.

사택비의 과장된 메이크컵이나 전형적인 캐릭터 연기도, 전체적인 세트의 분위기나 복장들도, 위제회의 설정부터가 무협의 전형적인 비밀결사이며 살수조직이다. 동시간대 경쟁방송사에서 방송하고 있는 <무사 백동수>의 흑사초롱과도 많이 닮아 있다. 도망치는 선화황후와 무진을 사택비가 직접 위제회를 이끌고 뒤쫓고, 그러고도 단호히 일을 끝내려 하기보다는 지난 정리를 정리하느라 이야기하느라 보내는 시간이 한참이다. 언제부터인가 무협의 앞에는 기정(奇情)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었다. 인간사 호협과 의기도 중요하지만 사람사이의 변화무쌍한 정도 무심할 수 없다. 다정하여 무정하고 무정하여 다정한 것이 강호라 하지 않던가.

무정하게 선화황후를 죽이려 했으면서도 다정하게 그 가는 길을 보낸다. 다정하여 무진을 원망하고 무정하여 그를 음모에 빠뜨린다. 차라리 사지를 잘라서라도 곁에 두고 후회하도록 만들고 싶다. 그것은 다정일까? 무정일까? 그런 사택비에게 무진을 곁에 두도록 하고 싶지 않아 무진을 직접 탈옥시킨 무왕의 행동은 다정이며 또한 무정인 것이다. 기정과 그리고 역사. 호협과 의기. PD와 작가가 무협에 대해 관심이 많음을 읽을 수 있다.

겨우 도망치는 무진과 선화황후, 그 뒤를 쫓는 사택비와 위제회, 마침내 무진과 선화황후의 뒤를 따라잡은 사택비와 위제회는 마차의 바퀴를 부수고 무진과 선화황후를 공격하고, 선화황후는 백제의 황후로 남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왕자 의자 또한 선화황후의 뜻을 쫓아 백제의 왕자로써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정표를 나누고 뒤에 남는다. 그리고 만삭인 아내와 함께 절벽으로 내몰린 무진은 마침내 위제회와 싸우다 절벽에서 떨어진다. 원한과 복수, 그리고 절벽. 무협에서 한 번 쯤은 중요 인물이라면 절벽에서 떨어질 필요가 있다.

전체적으로 백제나 신라가 아니고 서로 적대하는 문파의 이야기라면 오히려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돌아가는 분위기로 백제는 아마 사파일 테고, 신라는 사파와 대립하는 정파일 테고. 문파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장로들은 음모를 꾸며 정파출신의 장문인 부인을 제거한다. 그 과정에서 원한을 품은 의자는 복수를 가슴에 품고, 지켜야 할 이들을 지키지 못한 충신 무진은 그 아들을 통해 복수를 돕게 된다. 만일 국가간의 이야기였다면 괜히 쓸데없이 신라를 자극하고 더구나 명분까지 줄 수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선화를 그런 식으로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적국으로 떠나보낸 자식이고, 의절한 누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딸이고 누이일 것이다. 아니 아무런 정이 없어도 자식이고 누이일 것이니 그가 다른 사람의 손에 죽었다는 것은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다. 항상 칼을 겨누며 싸움을 반복해 오던 사이다. 전쟁에서의 명분은 전의를 높이고 힘을 효율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명분을 빼앗긴다는 것은 같은 일단 열세에서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백제의 귀족들이 생각이 있다면 신라의 공주인 선화를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죽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가 아닌 하나의 문파에 불과할 테니까.

그렇게 이해하면 좋은 드라마다. 그래서 잘 만든 드라마다. 삼국시대라는 실재했던 역사를 배경으로, 무왕과 사택적덕, 사택부인이라는 실존인물을 등장시키며 재구성한 무협드라마일 테니까 말이다. 마치 김용의 <의천도룡기>에서 실존했던 명태조 주원장과 서달, 상우춘 등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만들어갔듯 말이다. 허구와 실제가 교차하며 드라마에 설득력을 더한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혼동하지만 않는다면 무척 흥미로운 무협드라마가 될 수 있을 터다.

다만 아쉬운 것 몇 가지를 이야기하자면, 원래 백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다. 지배층의 언어는 고구려와 통했고 피지배층의 언어는 신라와 통했다. 방언설을 적용하더라도 평안도와 경상도는 일단 억양부터가 다르다. 고구려의 간첩을 신라의 간첩이라 허위자백하도록 했을 때 그런 정도도 감안않고 했겠는가? 가장 중요한 디테일에서 오류를 범했다.

그리고 칼에 있어서도 - 이건 정말 사소한 것이지만 아마 소품이 부족했는지 조선시대 환도와 같은 곡도형태의 칼이 의제단 가운데 몇 개 눈에 띄었다. 곡도는 한반도에서는 고려시대 이후부터, 일본에서도 헤이안시대 이후부터 쓰이기 시작한 형태의 칼이다. 백제 당시는 당대도의 영향을 받아 무진이 쓰는 직도가 일반적이다. 괜히 거슬렸던 부분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사택비가 직접 선화황후와 의자를 구하기 위해 시녀들과 더불어 경비병과 장수를 급습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은밀하게, 그러나 신속하게 비수를 꺼내 장수를 베는 사이 시녀들도 하나씩 병사를 맡아 제거하고. 그야말로 무협 그 자체였달까? 단순히 음모나 꾸미는 악녀가 아닌 진정한 강적으로서의 위엄이 느껴진다.

이제 의자는 백제로 돌아가 사택씨의 밑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어떻게 살아남은 무진과 계백은 또한 힘든 삶을 영위하며 기회를 기다리게 될 터이고.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 과연... 이 부분은 어떻게 묘사될 것인지.

아, 문득 떠올랐다. 어렸을 적 읽었던 위인전이 그랬다. 김유신전이든 연개소문전이든 계백전 역시 거의 무협소설 분위기였다. 산속에서 수련을 하고, 이인을 만나 비서와 신기를 물려받고. 그러나 계백은 그보다는 현실적인 노선을 걸을 것 같다는 것이다. 무진부터가 당할 자가 드문 고수일 터다. 기대해 본다. 이후 펼쳐질 드라마에 대해. 다음주를 기다린다. 재미있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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