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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27 07:05

스파이명월 "차라리 한희복과 리옥순이 주인공이었다면"

일관성이 없으니 기대가 없고 기대가 없으니 재미도 없다.

 

보면서 생각한다. 차라리 강우(문정혁 분)와 한명월(한예슬 분) 대신 한희복(조형기 분)과 리옥순(유지인 분)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지금보다는 몇 배 더 재미있는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재미란 기대에서 나온다. 기대를 충족하거나. 혹은 기대를 배반하거나. 물론 배반하는 것과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 기대한 만큼의 예상하지 않은 내용이 나왔을 때 그것을 배반한다고 말한다. 결국은 이 또한 기대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면 기대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일관성에서다.

이제까지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까지는 이랬지만 앞으로는 저럴 것이다. 그럴 때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과 그것을 지켜보고 싶다고 하는 충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기대하며 TV앞에 앉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없다면?

도대체 거기에서 한명월이 강우에게 반해야 하는 개연성이 무언가? 하기는 재미있기는 하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으로 인해 당혹스러워하는 한명월과 그런 한명월의 상태를 오해하여 마음을 풀어주고자 평소에 하지도 않던 친절을 베풀다가 오히려 더 곤란한 일을 당하는 강우의 모습이라는 것이 딱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다. 단, 이제까지의 <스파이명월>만 없다면.

차라리 시트콤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강우에게 반한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착각이더라. 실제 강우를 좋아하게 된 것이지만 어떤 계기로 착각이라 잘못 오해하게 된다. 단지 일회성 헤프닝이었다면. 그런데 한명월이 맥락없이 강우에게 빠지더니만 강우 역시 한명월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된 것 같다. 20회 이내의 분량에서 어떤 일관된 구조를 가지고 전개되어야 할 미니시리즈에서 모든 것이 너무 급하게 단속적으로 전개된다. 당황스럽다.

이제는 강우와 한명월의 관계를 의심하여 질투한 주아인(장희진 분)에 의해 스캔들이 터지고 궁지에 몰린 강우는 한명월을 마침내 해고하려 한다. 짐작이 가는가? 앞으로 어떤 내용이 전개될 지? 스캔들 기사로 인해 한희복과 리옥순은 잔뜩 고무되어 있고 북한의 고위층에서는 사실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무언가 벌어지기는 하겠는데 그러나 어떤 일관된 선이 그려지지 않는다. 또 어디서 이제까지처럼 전혀 뜬금없는 상황을 뜰어다가 엉뚱하게 웃기려 들리라.

서사란 곧 관계일 텐데, 까마귀가 날아오르는 것과 배가 떨어지는 모습 사이에 어떤 유기적 개연성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곧 서사구조인 셈이다. 그런데 까마귀는 단지 날고 배는 단지 떨어진다. 그러면 그로부터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겠는가? 드라마를 보는 것은 시청자다.

작가 혼자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어봐야 소용없다. 그래서 서두에 기대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여준다. 보여줌으로써 유추하게 한다. 짐작하게 한다. 기대하게 한다. 그로부터 작가는 그러한 기대를 충족하거나 배반할 것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전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면 충족이든 배반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까마귀가 날지 않았는데 배가 떨어져봐야 떨어진 것이다. 까마귀가 날고 끝난다면 까마귀가 날고 끝나는 것이다.

갈수록 <스파이명월>이 재미없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일관성이 없다. 기대할 것이 없다. 어떤 흥미도 호기심도 생기지 않는다. 당연히 지금의 장면을 보면서 떠올라야 할 어제의 장면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별개의 사건처럼. 아예 별개의 드라마처럼. 굳이 드라마를 기다려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보면서도 그냥 흐르는대로 맡길 뿐이다. 전혀 어떤 기대도 이입도 없이. 재미란 없다.

아쉬운 것이다. 혹시 작가는 이런 종류의 드라마는 처음이 아니었을까? 2회 분량을 넘어서는 길이에 대해서는 그다지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닌가? 첫회는 그래도 괜찮았다. 2회까지도 코미디로써 왁자하게 웃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중심이 흐트러지며 드라마가 산으로 가는 것 같은 데에는, 아니 산으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저 아무 생각이 없을 뿐이다. 그냥 보니까 본다. 흐르는대로. 흘려 놓는다.

아이디어는 참 괜찮았는데. 세계적인 한류스타를 북한으로 망명시키기 위해 미모의 북한 특수공작원이 한류스타의 주위로 잠입한다. 사랑따위 경험한 적 없는 임무밖에 모르는 북한공작원과 뭇여성을 유혹하는 최고의 한류스타와의 어울리지 않는 동거라. 그러나 결국 아이디어도 실현시켜야 아이디어인 것이다. 아이디어는 감성에서 나와도 작품은 기술에서 나온다.

이번에도 힌트는 있었다. 비가 오는데 산을 오르다 조난을 당한 강우와 그런 강우를 구하기 위해 폭우가 쏟아지는 산을 오르는 한명월의 모습이었다. 전혀 예상밖에 산에서의 생존방법에 능숙한 한명월을 보며 놀라는 강우의 모습이. 이 역시 조금 더 일찍 나왔어야 했다. 기왕에 북한공작원으로 설정했다면 단순히 팬을 힘으로 저지하는 것을 넘어 강우가 보다 그녀의 특별함을 우연찮게 계속해서 보게 되고 두려움과 위화감을 느꼈어야 했다. 강우의 표정이 무너질 정도로. 그런데도 이제까지 거의 특수공작원이라 할 만한 - 강우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으니. 웃을 수 있는 장면에서도 웃음이 멎어 버리는 것은 작가가 보이는 허술함의 결과인 것이다.

보다 일찍 한명월은 강우에게 반하고,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대쉬하며 망가지고, 그런 와중에 간간이 보이는 한명월의 본모습에 강우는 당황스러워하고 위화감을 느끼고, 그러면서 뻣뻣한 강우를 가지고서도 웃게 만들거나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다. 일관성을 가지고. 한명월이 강우를 유혹하느나? 아니면 강우에게 유혹당하느냐? 무엇으로 재미를 삼을 것인가?

바로 그것이 핵심일 것이다. 이 드라마는 무엇으로 재미를 삼는가?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결국 무엇으로써 기대하게끔 할 것인가. 그런 것이 있는가?

사합서에 대해서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드라마만 산만해지고. 사합서와 강우를 보다 일찍 보다 가깝게 밀착시킬 필요가 있다. 이야기를 모아야 한다. 모두가 한 데 모이도록. 한 데 모여 서로 끼어들 수 있도록. 언제까지 이렇게 따로따로 사건을 전개해나갈 것인가.

다만 한 가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무엇을 보게 할 것인가? 무엇으로부터 재미를 느끼게 할 것인가? 어떤 재미를 느끼게 하려는 것일까? 중심이 필요하다. 이 드라마의 중심이. 작가가 부여잡고 있는, 그리고 시청자가 공유할 수 있는 그 하나가. 과연 있는가?

솔직히 많이 늦었다는 생각이다. 지금 와서 새로이 다른 어떤 것을 등장시켜봐야 "또!"라는 소리나 들을 뿐이다. 필자 역시 그것을 인정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기왕에 벌인 일들이나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으면. 그 중심이 있어도 그 가운데 있어야 한다.

한희복과 리옥순이 정말 아깝다. 그야말로 한 쌍의 바퀴벌레인데. 이미 전설이 된 최고의 간첩들로 남한에서의 일상에 젖어 허당이 되어 버린 모습이 세월이 무상하달까? 남한의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과 북한에 대한 충성과 북에 남겨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전설적인 스파이로써의 자긍심과 초라한 현실에 대한 자괴감, 무엇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바퀴벌레 커플로써. 이만한 중심은 가지고 있어야 드라마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주아인(장희진 분)도 나름대로 중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고 있건만. 주회장과 최류 사이의 관계도 너무 급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사합서는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지. 강우의 과거이야기는 최소한 작은 단서라도 보여주어 기대와 호기심이라는 것을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시청율이는 다 이유가 있다. 물론 시청율은 낮지만 좋은 드라마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스파이명월>은 아니다. 잘하면 컬트.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졸작. 감성과 이성이 따라가지 못한다.

이제 겨우 6회. 아직 남은 분량은 많다. 차근히 시청자를 설득해 되돌릴 수 있다면. 그다지 기대는 되지 않지만. 안타까운 것이다. 보고 있는 나 자신이. 보고 있어 불쌍하다. 그런 드라마다. 한 마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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