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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26 10:35

힐링캠프 "먼훗날 뒤돌아보면 다 아시게 될 것입니다."

고통은 두려움에서 오고 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

 
"지금은 굉장히 힘드시겠지만 먼훗날 되돌아보면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뒤돌아보면 다 아시게 되니까 현재를 최선을 다해 사십시오."

SBS의 새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를 보다가 문득 귀에 들어온 한 마디였다. 과연 이래서 김태원이 국민멘토라고까지 불리는 것이로구나.

사실 그렇다. 사람은 어떤 때 고통스럽다 느끼는가? 두려울 때다. 그리고 두려움은 미지로부터 나온다. 알면 무섭지 않다. 무섭지 않으면 고통스럽지도 않다. 그러면 어째서 지금 나는 고통스럽다 여기는가? 모르니까. 알지 못하는 것이다.

왜 내가 지금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어째서 내가 이런 처지에 놓여 있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두렵다. 모르니까 어떻게 될 것인가도 알지 못한다. 더 큰 고통이 있을 것인가? 아니면 언제고 이 고통이 끝날 것인가?

만일 이 고통이 이제 곧 끝날 것임을 알게 되면 어떨까? 10분만 참으면 된다. 하루만 더 견디면 된다. 1년만 버티면 이제 더 이상의 고통은 없다. 희망이 생긴다. 희망으로부터 버티고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용기가 생겨난다.

어째서 나는 지금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아파 죽겠는데 의사선생님이 말한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아픈 것이다. 차라리 이유라도 알 수 있으면 덜 고통스럽다. 어쩌면 그 이유에서 방법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 낫고 나면 그래서 그랬거니.

그래서 불가에서도 모든 죄업과 고통의 원인으로써 무지를 첫손에 꼽는다. 무지로 인해 현상을 왜곡하고, 그 왜곡된 현상이 분노와 증오와 공포와 원망을 낳는다. 인간이 고통받고 죄악을 저지르는 것은 바로 그러한 무지 때문이다. 진실을 보아야 한다. 그 진실이 무엇인가. 모든 것이 원인이다. 그 모든 것들이 일어나는 원리다. 그것이 지혜이고 깨달음이다.

물론 김태원은 불교신자가 아니다. 그는 알기로 가톨릭신자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깨달음이란 종교를 뛰어넘는다. 지혜란 종교를 초월하여 갖는 보편적인 것이다. 만일 신이 있어 인간에게 지혜를 주었다면 굳이 종교를 가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유가 있어 고통스러운 것이고 따라서 그 이유를 극복할 수 있다면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아니 최소한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지는 못하더라도 억울함과 분노, 원망, 증오의 감정으로부터는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시한부 환자들도 편안하게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실제 죽음을 눈앞에 둔 시한부 환자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인정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죽음이란 더 이상 그에게 어떤 고통도 공포도 아니었다. 때가 되면 죽으리라. 그 죽음을 맞이하리라.

단지 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죽음은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고통과 공포란 내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어째서? 왜? 의문이 공포를 부르고 고통을 낳는다.

아마 돌이켜 보면 느끼게 될 것이다. 무엇이 가장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가. 결국은 공포다. 그리고 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무지다.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니기에 공포스럽고 고통스럽다.

언제고 알게 될 것이다. 그 이유를.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들을. 깨달음을. 그것을 지혜라 부른다. 돌이켜 보면 어쩌면 그런 것들은 별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하필 최근 <남자의 자격 - 청춘합창단>을 무척이나 감동하며 즐겁게 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거기 출연하신 분들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배우자를 잃고, 힘겨운 일상을 견뎌내고, 그러나 그것을 여상하게 넘길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노래를 부르며. 함께 의지하며. 그것을 받아들이고 긍정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다.

적절한 한 마디였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알게 되리라. 모든 이유를. 모든 사연들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게. 그때쯤 되면 모든 고통도 공포도 사라지리라. 그런 일도 있었거니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돌아보면 그리 심각하던 일도 별 것이 아니게 되리라.

위로이기도 할 것이다. 희망이기도 할 것이다. 그보다는 인생의 진리가 아닐까. 필자 역시 동의하는 것이다. 알고 맞이하는 고통과 공포는 더 이상 고통도 공포도 아니다. 지금을 충실히 산다면 언제고 도리어 그 기억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고통도 공포마저도.

조금은 질투도 났다. 필자에게는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과 들어 알게 되는 것과는 다르다. 몸으로 깨닫는 것과도 다르다.

부디 그 뜻을 알고 스스로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기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고 알게 될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경규의 말처럼. 단지 심각한 것은 지금 뿐이다. 심각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지금 뿐인 것이다. 가슴을 울리는 한 마디였다.

고통이란 어디서 오는가. 공포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자기 안의 어둠이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감사한다. 힘이 되었다. 될 수 있기를. 부디.

솔직히 프로그램 자체는 그다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납득되지도 않았다. 이런 게 재미있을까? 하지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이야기속에 어느 순간 빠져드는 자신을 느끼기도 했다. 오히려 차크라 어쩌고 하는 컨설팅을 빼고 보다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부분을 키우는 쪽이 좋지 않을까.

예능에서 보기 힘든 김태원의 기타를 들을 수 있어서도 좋았다. 김태원의 어쿠스틱은 독특한 느낌이 있다. 섬세한 피킹과 따뜻한 밴딩과 비브라토. 음악의 이야기도 많았다.

다시 보게 될 것인가? 지금으로서 여전히 프로그램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쉬운 부분일 것이다.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하리라. 즐거운 시간이었다. 의미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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