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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26 08:07

계백 "성의와 노력이 깃든 역사무협드라마"

역사적 엄밀함을 따지며 보면 안 된다.

 
아주 오랜만에 병사들이 진형을 이루고 싸우는 장면이 나왔다. 양군이 서로 극(戟)을 세워들고 서로 부딪혀 대치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그 대치하고 있는 사이로 칼로 베고 찌르며 적을 죽이는 그 모습에서, 어쩌면 삼국시대 당시에도 병사들이 이렇게 싸웠을 수도 있겠다.

사실 많이 짧다. 그리고 극이라는 무기가 그다지 찌르는데 유리한 무기도 아니다. 장병기란 찌르는 용도도 있지만 내리치는 용도도 있다. 전국시대 일본군은 두 간, 세 간짜리 창으로 적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며 공격했다. 드라마에서도 보다시피 극으로 서로 대치해봐야 공격수단이 무척 제한된다. 워낙 서로간의 거리가 짧다 보니 드라마에서처럼 창과 창 사이로 칼을 내밀어 베거나 찌르는 것도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근세 유럽에서 3미터가 넘는 장창이 쓰이던 시절에 주로 쓰이던 전술이었다. 하지만 이나마라도 어디인가? 그동안의 개싸움에 비하면.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계백(이서진 분)의 별동대가 들이닥치는 순간 싸움은 다시 원래의 개싸움으로 돌아가고 만다. 진형이고 전술이고 없이 각자 칼 들고 창 들고 개인무술로 하나씩 맡아 쓰러뜨리기. 하기는 그러면 계백의 위대함을 그의 칼질에 쓰러지는 신라병사들의 모습을 통해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불멸의 이순신>에서 명량해전에서 적과 맞서 싸우다 느닷없이 적의 배로 건너가 적과 칼부림하던 이순신 장군처럼. 그때가 그토록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다연히 난중일기는 물론 어떤 사료에도 나오지 않는 장면이다.

결국 그런 허술함이 10배나 되는 신라군을 맞으면서 땅에 기름을 묻는 허술함으로 나타나고 마는 것이다. 기름을 묻어 그것으로 적을 무찌르면 한 번은 어떻게 넘어가겠지만 그 다음은? 거기에서 전술이 나오는 것이고 계백의 지휘능력이 나타나는 것이겠지만 그런 것을 묘사할 능력 자체가 되지 않는다. 계백은 그저 뛰어난 무용으로 직접 칼을 휘둘러 적을 베면 그 뿐이다.

한국드라마에서 항상 반복해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일 것이다. 일본의 역사드라마에서는 오히려 인원은 더 적지만 진형이라든가 전술 같은 것이 어느정도 묘사되고 있는데. 오히려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하고도 저런 무협활극이나 찍고 있다는 것은. 지휘관이 하는 일이란 소리나 지르고 직접 나가 칼을 휘두르는 것 뿐, 전투란 전술과 지휘관의 적절한 지휘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 크고 싸움 잘하면 이기는 것이다.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 여겼건만.

그래도 나름대로 노력은 높이 사 줄만 하다. 황산벌의 지형적 조건이나, 그로 인한 전술적인 문제들, 그리고 초반 신라군과 백제군이 부딪히며 잠깐 나타난 진형같은 것들. 무엇보다 갑옷 역시 어쩐지 국적불명에 싸구려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당시 대세를 이루던 찰갑의 기본적인 특징을 잘 살려내고 있었다. 무기도 흔한 창이 아닌 극으로 설적한 것에서 제법 신경쓴 흔적이 있다 하겠다. 그래도 조금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볼 가치는 있지 않은가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괜찮을까?

확실히 편으로 들어가서도 사실 판단하기가 상당히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일단 원래 사료에 나오는 최종환 분)의 비는 사택부인(오연수 분)으로 의자왕 또한 사택부인의 아들이었다. 선화공주가 무왕의 비였는가에 대한 부분은 현재 여러 이설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일단 선화공주가 무왕의 비였다는 기록이 있는 이상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허용범위 안에 드는 재해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화속의 선화공주와 사료에 나타난 사택부인을 모두 긍정한다. 아마도 의자왕의 적은 사택부인과 역시 역사에서 그에게 제거된 일족인 교기가 될까? 역시 허용범위 안에서의 활용일 것이다.

사택씨를 비롯한 대성팔족에 눌려 제대로 권위를 세우지 못하는 무왕의 모습이란 또한 상당부분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 할 수 있다. 원래 백제 왕가인 부여씨의 기반은 한강유역에 있었다. 한강유역을 잃고 개로왕이 죽는 순간 웅진으로 옮겨간 부여씨란 망명정권에 불과한 것이다. 한강 이남은 한강 이남에 터를 둔 귀족들의 영역이었으므로. 더구나 독단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 성왕으로 인해 이후 백제의 왕권은 사택부인의 말처럼 불과 일이년을 버티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처참무인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런 때 무왕은 바로 대성팔족의 정사암회의에 의해 왕위에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백제가 왕권을 회복하는 것은 의자왕대에 이르러서다.

다만 여기에서 거슬리는 부분이라면 무왕이 굳이 사택씨를 비로 맞은 것은 유력귀족이던 사택적덕(김병기 분)이 이끄는 사택씨의 세력을 등에 업기 위해서일 것이다. 왕권이 미약한 상태에서 왕권을 다시 세우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스스로 힘을 기르거나, 아니면 힘이 있는 다른 누군가와 손을 잡거나. 왕권이 아직 미약한 채라는 것을 아는데 과연 무왕이 사택씨와 대립하려 했을까? 만일 무왕이 사택씨와 대립하고자 했다면 의자왕에 이르러 백제의 왕실이 왕권을 회복할 수 있었을까?

사료에서도 무왕은 여러차례 신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나온다. 의자왕 역시 그같은 무왕의 정책을 물려받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다. 사택씨와 손을 잡아 배후를 얻었다면 전쟁은 왕권을 강화하고 친위세력을 길러내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일 터다. 그런데 그것도 사택씨를 비롯한 귀족들이 협력을 해야 전쟁을 해도 한다. 드라마에서도 묘사되듯 당시의 군대란 귀족 개인의 사병이었다. 무왕의 정치력이 의자왕대에 왕권을 회복하는 기반을 닦아줄 정도이면 저런 식으로 감정을 드러내며 사택씨를 비롯한 귀족과 충돌해서는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왕으로써 저런 것은 어리석은 것이지 강직한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허용범위 안에서의 재해석과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다지 납득이 가지 않는 묘사와 설정들. 아마도 "위제회"의 존재가 그 모든 모순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리라. 계백의 아버지 무진(차인표 분)의 칼이 하필 계곡에, 폭포 옆에 그렇게 화려하게 치장되어 놓여 있었던 이유. 그리고 무왕이 직접 칼을 들고 병사들을 꾸짖고 호위무사인 무진과 칼을 마주하며 겨루어야 했던 이유. 무왕이 굳이 왕으로써 충분히 타협할 수 있었던 사택적덕이나 사택비와 노골적으로 대립하도록 설정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한 나라의 왕이라면 정치를 위해 타협도 할 수 있지만 한 문파의 문주라면 호협과 의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무왕이란 중국 무협에서 흔히 나오는 직접 칼을 들고 적을 무찌르는 왕과도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는 인이나 덕을 실천하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무예를 닦아 힘으로 주위를 누를 수 있는 고수가 되어야 한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불리한 싸움에서도 굽히지 않으며. 말하자면 드라마에서 말하는 역사드라마란 김용의 무협소설에 붙는 역사소설과 같은 의미라고나 할까?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무협드라마. 정확히는 무협적인 요소가 강하게 가미된 오락드라마일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보면 좋을 것이다. 역사드라마이지만 엄밀하게 역사적 사시를 추구하는 정통 역사드라마는 아니다. 단지 역사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보다 흥미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오락드라마다. 특히 그 가운데 중국문화권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무협의 코드를 차용한. 하필 원래 부여씨로 여겨지는 계백이 신라에서 노예생활을 했더라는 부분도 굳이 규염객전과 연개소문을 연결지으려는 시도에서 한 번 쓰였던 설정이기도 하다. 무협은 오락적인 성격이 강하기에 보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설정을 추구한다. 역사적인 고증은 그저 양념으로나 여기면 좋지 않을까.

사실 말 그대로 무협으로써는 상당히 괜찮은 시작이었다. 액션도 제법 깔끔하고 화려했다. 개인적으로 <공주의 남자>에서 쓰인 액션쪽이 취향에 맞지만 이쪽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음울하고 치열하며 비장하고 잔인하다. 음모와 탐욕이 깔리고 무모한 의기가 넘쳐흐르고. 배우들도 하나같이 멋지다. 보는 즐거움이 있다. 한여름 무더위를 날려버릴 시원함을 기대하게 된다.

역사적 엄밀함 같은 것은 바라지 말기를. 그러자고 보는 드라마가 아니다. 어차피 작가 자신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철저히 오락드라마로써. 장면장면이 주는 흥미와 호기심에 이끌리기를. 의천도룡기보면서 원명교체기를 배웠다 한다면 비웃음부터 당한다. 무협은 무협, 역사는 어디까지나 역사다.

미니시리즈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대한 신경쓰며 노력한 것이 보인다 할 것이다. 이만한 노력과 성의를 들이고서 단지 역사적 고증에만 소홀했을까. 어쩌면 오랜만에 진짜 괜찮은 역사무협드라마를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기대가 크다. 제대로 된 정통 무협이리라.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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