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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병준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4.05.26 16:22

[전설을 노래하다] 전설이 된 남자 - 오자키 유타카

[스타데일리뉴스=박병준 기자] 김광석, 김현식, 김재기, 유재하의 공통점은 뭘까.

이 사람들은 일찍이 최고라는 평가를 받지만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뮤지션이다.

일본에도 이들 같은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오자키 유타카’다. 오자키 유카타는 일본 오리콘에서 2009년 '가장 충격을 준 전설이라 할만한 록 아티스트는?'리나는 설문에서 1위를 차지한 뮤지션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수 포지션의 ‘I Love You’의 원곡 가수로 더 알려져 있다.

▲ 전설이 된 남자 '오자키 유타카' (출처 오리콘)

일본의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사립고인 아오야마 가쿠인 고등학교까지 진학했으나, 음주와 흡연 등으로 징계를 많이 받았던 오자키 유타카는 어릴 때부터 작곡과 작사에 관심을 두었고, 1982년 CBS 소니 재팬의 오디션에 합격했다.

이후 오자키 유타카는 18살 고등학생이던 1983년 12월 첫 싱글 ‘열다섯의 밤’과 앨범 ‘17세의 지도’를 내며 데뷔하고 고등학교는 자퇴했다. 미국과 일본을 번갈아가며 음악 활동에 전념했던 그였지만 약물로 인해 구설수에도 많이 올랐고 구속되기도 했다.

오자키 유타카는 사회적 모순이나 부조리에 대해 10대들이 품는 숨수한 분노를 직설적인 가사로 표현했다. 80년대에는 일본에서 가히 비교할 대상이 없는 절대적인 위치에 올랐으며, 때로는 콘서트 도중 골절상을 입어도 계속 노래한다는 무대 퍼포먼스가 그의 카리스마 성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는 젊은 연령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싱글 ‘졸업’으로 대히트를 친 오자키 유타카는 ‘I Love You’, ‘Oh my little girl’, ‘쉐리’ 등이 있다.

 

1992년 4월 25일 아침, 한 민가 앞에서 나체로 쓰러져있는 오자키 유타카를 동네 주민이 발견하고 병원으로 이송했다. 당시 그의 온 몸이 상처 투성이였지만 의사는 과음이라며 오자키 유타카를 집으로 돌려보냈고 다음 날 사망했다.

오자키 유타카의 공식적인 사인은 폐수종이지만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한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있었고 그의 죽음 과정에서 목격자가 없는 시간대가 존재하기에 그의 죽음은 아직까지 의문사로 남겨져 있다. 당시 그의 아내가 이를 부정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 오자키 유타카 (출처 오리콘)
실제로 오자키 유타카는 죽기 직전 자신이 속해 있었던 소속사 ‘마더 앤 칠드런’에서 독립해 자신만의 회사를 설립해 기존의 반항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순수한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로 활동을 재기해서 투어를 성공적으로 돌고 있었다는 사실과 일본의 가수 겸 배우인 사이토 유키와의 불륜으로 아내인 시게미와 이혼 소송 중이었다는 사실은 의혹을 더 크게 부풀리게 만들었다.

또한 오자키 유타카 사망에 대해 병원 측의 행동에서도 ‘왜 상처투성이인 오자키 유타카를 집으로 돌려보냈는가’, ‘왜 사인을 폐수종이라고 계속 주장하는가’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한편, 현재까지 그를 추억하는 대중들의 깊은 애정에 힘입어 NHK에서는 10년이 넘게 BS-2 방송으로 1~2년 마다 그의 기일에 맞춰 특별방송프로를 편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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