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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5.19 11:00

[김윤석의 드라마톡] 정도전 38회 "선비들, 천하를 품고 대의에 죽다"

마지막 인사 "삼봉, 편안히 가시게!"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이보게 삼봉, 편히 가시게!"

"건승을 비네!"

바로 이런 것이 선비라 불리는 이들의 참모습일 것이다. 천하를 가슴에 품는다. 임금이 부모이고 백성이 가족이다. 천하를 마치 제 몸처럼 여긴다. 천하가 기쁘니 자신 또한 즐겁고, 천하가 슬퍼하니 자신 역시 아프고 괴롭다. 죽고 사는 것조차 하늘에 맡기고, 제 피붙이마저 돌아보지 않는다. 오로지 소중한 한 가지는 천하를 위하는 '대의', 그를 위해 모든 것을 건다.

그래서 그들의 마지막 인사는 담담하다. 이미 정도전(조재현 분)은 정몽주(임호 분)의 진정을 이해하고 있다. 자신 역시 가고자 했던 길이었다. 유자로서, 선비로서, 신하로서, 누구나 가기를 꿈꾸는 이상의 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길은 자신의 길이 아니었다. 정몽주도 이제야 비로소 알았다. 자신의 오랜 친구가 유자이기를 포기해가며 가고자 했던 그 길이 어떤 길이었는가를. 정도전이 선비로서 가슴에 품고자 했던 천하가 어떤 천하였는가 하는 것도. 먼 길을 돌아 두 사람은 다시 친구가 되었다. 서로 가는 길이 달라 결국 적대하게 되었지만 단지 가슴에 담은 천하가 달랐을 뿐 그들은 모두 대의에 모든 것을 거는 선비들이었던 것이다.

▲ KBS 제공

차마 목숨을 구걸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어쩌면 그 대상이 정몽주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품은 대의의 가치를 낮추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인정받고 싶었다. 자신이 품고 있던, 자신이 추구해 왔던 천하와 대의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님을. 단지 일신의 안위나 영화를 노려 그리한 것이 아니었음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몽주는 알아주었으면 했다. 정몽주만을 알아야만 했다. 기억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정몽주도 감히 정도전에게 온정을 베풀려 하지 않는다. 선비가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은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다. 자신의 천하와 하나가 된다. 자신의 대의와 한 몸이 된다. 그곳은 선비의 극락이며 천국이었다. 역사는 그 의지로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바른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 그것이 선비다.

선비로서 죽으려 한다. 선비로써 죽이려 한다. 고려의 역사가 그를 어떻게 기록하든 정몽주는 알 것이다. 친구인 정몽주는 기억해 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 순간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을 떠올려 줄 것이다. 정몽주는 이미 고려의 충신으로 죽고자 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이유다. 선비의 삶은 육신이 아닌 이름에 있다. 육신의 삶은 고작 수십년이지만 이름은 수백년 수천년을 이어간다. 피를 이은 후손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아도 누군가는 그 이름을 기억하고 떠올려준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고려의 마지막 충신으로 정몽주를 기억하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고, 한국인이라는 민족 역시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어도,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면 고려를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정몽주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조선왕조 내내 죄인의 오명을 들어야 했던 정도전이 최근 고려말의 피폐한 현실을 바꾸고자 혁명을 꿈꾸었던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재조명받는 것도 역시 그런 한 가지다. 이전의 시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백성이 아닌 국민 자신이 주인이 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지금이다. 백성을 위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정도전의 꿈은 지금에 다시 살아난다.

영원을 살려 한다. 허깨비같은 육신도 아닌, 고작 의복과 같은 혈육도 아닌, 오롯이 영원속에 존재할 대의다. 역사에 기록될 이름이다. 그래서 그들은 당당하다. 죽음을 앞에두고서도. 두려움을 마주하고서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이미 죽음이 결정되었다. 이제 정도전 자신은 죽는다. 정몽주에 의해 죽게 된다. 정몽주 역시 이길 수 없는 싸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은 물론 그동안 올곧게 지켜왔던 신념과 양심까지도. 오랜 친구를 베고, 진심을 나눈 우정도 베고, 자기 자신까지 베어낸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스스로 전혀 부끄럼없는 삶을 살았다. 알아줄 수 있는 친구가 한 사람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고려왕조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이성계(유동근 분)가 말에서 떨어져 다쳤다. 몸져누워 거동을 못한다. 모든 것이 이성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성계야 말로 이 모든 일들의 시작이며 끝이었다. 이성계 개인의 명성과 실력이 정도전과 조준등에게 마음대로 국정을 주무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성계가 있었기에 정도전과 조준 등도 성씨가 다른 새로운 왕조를 꿈꾸어 볼 수 있었다. 이성계가 사라진다면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정도전이나 이성계의 아들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 보려 해도, 그러나 그들의 앞에는 사대부는 물론 조정과 군부, 심지어 백성들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던 정몽주가 버티고 있었다. 이성계라면 몰라도 정도전이나 조준으로는 그를 상대할 수 없다. 이성계만 없으면.

군사를 이끌고 도당으로 쳐들어와 칼까지 빼드는 배극렴 앞에서도 정몽주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당당하고 단호한 태도로 꾸짖기까지 한다. 이성계가 사라진 이후를 보여주는 듯하다. 어쩌면 이성계라는 중심 없이 이성계의 일파가 폭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동서고금의 역사에 그런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몽주는 군부에서도 신망이 깊었다. 그것이 이성계가 병석에 누웠을 때 정몽주가 이성계를 따르는 세력을 거의 와해직전까지 몰고갈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만틈 위협이 되었기에 이방원도 정몽주를 죽이려 한다. 과연 정몽주 한 사람만 있어도 화면이 꽉 들어차는 것 같았다. 임호라는 배우의 힘인가, 아니면 정몽주라는 이름의 무게인가.

빠르게 변화한다.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지고, 이성계의 부재를 틈타 정몽주가 정도전의 당여들을 공격하고, 다시 정몽주가 이성계를 죽이려 병사들을 보내지만 이성계는 그들을 따돌리고 도성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도성으로 돌아온 순간 이성계가 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서 정국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든다. 이성계가 이대로 죽게 된다면? 이성계가 만일 다시 살아나게 된다면? 정도전의 당여들을 죽이는 일에도 생각들이 많아진다. 관상이 아닌 하륜(이광기 분) 자신의 불안이고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확고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다름아닌 정몽주, 대하드라마 '이인임'을 이은 대하드라마 '정몽주'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끝이 다가온다. 결코 맞이하고 싶지 않은 마지막이다.

이방원이 전면에 나선다. 이성계는 쓰러지고, 정도전과 조준은 유배되거나 죽을 위기에 있고, 배극렴은 정치적으로 무력하다. 누군가 그들을 대신해야 한다. 그 동기가 되어주는 것이 이방원 개인의 야심이라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이상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이상이 권력으로 바뀌는 순간 그 권력을 탐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많은 혁명들이 그러했다. 혁명의 시작은 순수했지만 그 끝은 항상 추악한 탐욕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단 한 번도 이상을 말한 적이 없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작가의 의도적인 설정이고 배치일 것이다. 혁명의 시작과 끝, 이상의 시작과 끝이다. 어쩌면 그것이 정치다.

다시 양지를 만난다. 황천복과 황연도 만난다. 다시 사람이 살고 있다. 여전히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 자식까지 낳았다. 곤궁하고 비참한 현실에서도 그렇게 그들은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영원이란 그곳에 있지 않을까. 그것이 천하고 그것이 대의다. 정도전이 자신의 이름을 묻고자 한 곳이다. 아내 최씨(이아현 분)가 찾아온다. 보통사람과 선비의 차이를 들려준다. 무정하고 무심하다. 오로지 백성의 눈물만이 그를 눈물흘리게 할 수 있다. 그를 절망케 하고 좌절케 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자신의 원점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지식인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생각할 줄 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에 그만큼 사람들이 그들에 의지한다. 리더라 부른다. 한 사회를 이끌러가는 이들이다. 질문하고 대답해주는 존재들이다. 슬픈 존재들이기도 하다. 너무 커서 자신조차 자신을 다 담지 못한다. 시대를 고민하고 그 답을 찾고자 스스로를 내던진다. 시대 자체가 된다. 시대가 그들을 기억한다.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의 이기와 탐욕이 너무나 당연한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너무나 큰 아픔과 괴로움을 시대에 묻는다. 누가 옳은가. 누가 정답인가. 그 과정들이 소중하다. 그 모든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을 살아간다. 내일의 역사가 쓰여진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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