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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4.05.15 15:55

[리뷰] '밀회 마지막회' 오혜원은 자유를 얻었다, 너는?

한순간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었던 그녀의 이야기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JTBC 월화 미니시리즈'밀회'(연출 안판석, 극본 정성주)가 13일 16부를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매 회 마다 실시간 이슈검색어 상위를 차지한 것은 극중 대사와 소품이었다.

더듬어 보면, 드라마 2회, 주인공 선재(유아인)가 혜원(김희애)의 자택 공연룸에서 함께 연주한 슈베르트의 '판타지아 D.940 -3악장'. 3회, 선재가 어머니 교통사고로 실의에 빠진채 입대한 뒤, 지방에서 공익근무 중 받은 혜원의 서책 '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 12회, 선재와 혜원이 잠시 여행하다 들었던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 등이 있다.

지하철이건 집이건 '밀회'를 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길래 포탈 실시간 이슈검색어에서 1위를 차지하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이 드라마는 명작이었을까. 아니면. 자기만 살자고 남을 물어뜯고, 스스로 져야할 책임을 무조건 남탓으로 돌리는 이 사회에 환멸과 염증을 가진 시청자들의 반응이었을까.

▲ 13일 막을 내린 JTBC 월화미니시리즈 '밀회' 마지막 장면 화면 캡처

'밀회' 마지막회, 오혜원은 자유를 얻었다. 너는?

12회에 등장한 빌리 조엘의 대표곡 '피아노맨'은 가진걸 모두 털어 뉴욕 선술집을 찾아온 가난한 이들의 애환을 달랜 곡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세계적인 불황 한파가 몰아닥치던 시절, LA 외곽과 뉴욕 브롱스 거리에는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과 성공을 위해 올라온 무명 작가, 배우, 가수들의 낙이 하나 뿐이다. 선술집에서 싸구려 맥주와 럼주 한 잔을 곁들여 연주를 듣는 것이다. 그때 나온 노래가 '피아노맨'이다.

그렇다. 선재와 혜원이 만나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을 듣게 된 계기란 '피아노 맨' 히트할 당시 이 노래를 불렀던 이들의 신세가 자기들 처지와 똑같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가난한 피아니스트였던 오혜원(김희애)은 재벌 2세 영은에게 빌붙어 그녀 아버지 서필원 회장을 도와 주택과 지위, 옷마저 얻어 쓰는 신세. 그 대가로 혜원은 재벌 비밀장부를 관리하고, 뒤치닥 거리를 하며 살았다. 혜원에게 연주는 사치다. 하지만 학교 동창 연주자들 주변에서 종노릇 하며 버텼다.

이선재(유아인)도 다를 바 없는 삶이다. 형편없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할줄 아는건 오토바이 택배, 선재는 어려서부터 집에 있는 낡은 피아노 한 대를 놀이기구 삼아 연습하고, 고가의 레슨 없이 혼자 악보 연구하며, 연주를 했지만,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신세다. 

혜원과 선재가 20살의 나이를 극복하고 만날수 있었던 이유란 각자 먹고 사느라, 진실된 사랑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음대교수인 혜원 남편 강준형 교수(박혁권)가 선재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학교재단 임원인 아내에게 소개한 계기가 촉매제였다. 그리고 처음 만나 피아노 연주를 통해 서로의 탤런트와 진심을 확인하고 대화를 나눈 것이 결정적이다.

밀회는 불륜이 아니다. 그냥 삶의 일부다

어느날 혜원이 모시는 서 회장 일가가 비자금과 재산 놓고 서로 다툼이 벌어지고, 혜원은 서회장 일가로부터 갖은 협박과 회유 끝에 검찰 자수를 결심한다. 혜원이 선재와 만나는 것조차 서회장 일가와 남편이 자기 이권다툼에 이용하는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16화 마지막회 중반, 재판정에서 하늘색 죄수복 '수의'를 입은 혜원이 공판 마지막 발언을 한다. 이것을 위해 이 리뷰를 썼다. 혜원의 마지막 발언, 정말 길지만 짧았던 그녀 대사가 드라마 '밀회'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사가 '밀회'가 가졌던 아귀다툼과 위선, 그리고 가식의 향연을 향해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다.

저는 지금, 오직 저 자신한테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한성숙 이사장, 서필원 회장을 대신해서 피고인 석에 앉아계신 홍태영 이사, 그리고 변호인단을 총지휘하시는 김인겸 전무님까지. 저분들이 어떤 벌을 받건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주범이 아니라는 말로, 선처를 구할 생각도 없습니다. 제가 행한 모든 범법 행위는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니고, 오직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잘못된 거죠. 그 덕에 저는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법인카드, 재단 명의의 집, 자동차, 고용인, 저 성장배경이나 저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얻을수 없는 것들이라, 그 모든걸 다 진짜 제 걸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가 포기한 음악의 세계에도 마음껏 힘을 행사하고 싶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것처럼, 유전자에 적응이 되있는 것처럼 아무도 뺏지 못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정말 뜻하지 않게 제 인생에 대차대조표가 눈 앞에 펼쳐졌어요. 그렇게 사느라고 잃어버린 것들, 생각하기도 두렵고, 인정하기도 싫었던 것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거냐구요. 저는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제 인생의 명장면이죠. 난생처음 누군가 온전히 저한테 헌신하는 순간이었어요. 저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절절한 고백을 해준것도 아니었어요. 그는 그저 정신없이 걸레질을 했을 뿐입니다. 저라는 여자한테 깨끗한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애썼을 뿐인데,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누구한테서도 그런 정성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걸, 심지어 나라는 인간은 나 자신까지도 성공의 도구로 여겼다는 걸..

저를 학대하고 불쌍하게 만든건 저 자신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고 살면서 저도 기억할수 없을만큼, 아는 사람들한테 상처와 절망을 줬겠죠. 그래서 저는 재판 결과에 승복하려고 합니다. 어떤 판결을 내려주시던 항소하지 않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마지막 앤딘크레딧에 올라온 곡은 아니지만 올려본다.

유튜브에서 드라마 '밀회'OST로 유일하게 존재하는 곡이다. 음악감독이 만들었다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없다. 악보가 '유명 클래식 카피'라고 해도 내겐 무의미하다. '밀회'가 '불륜이 아니라, 삶'이라며 드라마 마지막 장면이 알려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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