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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5.08 09:05

[김윤석의 드라마톡] 개과천선 3회 "리셋, 명남이도 괜찮지 않아요?"

위기, 그리고 계기, 김석주가 김석주의 의뢰를 이어받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드라마란 비일상이다. 대중문화란 그 사회 대중의 무의식이다. 일탈을 꿈꾼다. 불가능을 희구한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을 초기화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뜻이다. 김석주(김명민 분)가 무명남이 된다.

"명남이도 괜찮지 않아요?"

그것은 어쩌면 지금까지의 자신을 지우고 싶은 김석주의 무의식이었을 것이다. 김석주 대신 다른 이름의 누군가가 되고 싶다. 하필 사고가 있기 전 김석주는 자신이 비틀어버린 재판의 결과로 인해 한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 참담함을 겪어야 했었다. 누가 잘못했고 누구에게 죄가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이 그러한 자신의 양심조차 스스로 속이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더 끔찍한 죄와 벌을 낳고 말았다.

▲ MBC 제공

사지육신 멀쩡한 것 같고, 머리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변호사라는 직업도 나쁘지 않고, 책임져야 할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일 좀 쉰다고 생계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그야말로 다시 시작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상황일 것이다. 기억을 잃었는데도 뇌기능에는 이상이 없다. 변호사로서 필요한 법률적 지식만큼은 온전히 남아있는 듯 보인다. 다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자신만이 다른 기억들과 함께 소멸해버렸을 뿐이다. 무심코 내뱉은 자신의 바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일도 하면서 살았을 테고..."

그 바람을 과거의 자신에게 구애받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같은 로펌의 일이지만 맡게 되는 동기부터가 다르다. 차영우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이기에 그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만 한다. 김석주를 설득하며 차영우(김상중 분)가 내세운 명분 역시 마찬가지다. 명예도 아니고, 승부욕도 아니고, 이익은 더욱 아니다. 그리고 마치 태중의 아이와도 같은 백지상태의 그를 어머니처럼 이지윤(박민영 분)이 보살피게 된다. 할아버지는 좌익사범이었다. 아버지는 노조원으로 현재 파업중이다. 정확히 이 사회 주류와 반대편에 서 있다. 무엇보다 과거의 김석주를 누구보다 혐오하고 경멸하는 것이 바로 이지윤 그녀였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갈까? 법률적인 지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태진전자의 태진건설 인수에 대한 정보들만 과거의 기억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당장 김석주에게 닥친 가장 큰 일이다. 차영우 로펌에도 매우 중요한 거래다. 실패하고 버려질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 번 과거의 실력을 되찾아 존재감을 과시할 것인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면 그 또한 조금은 식상하다. 기억을 잃어 멍한 모습으로도 태연히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을 읊어내는 모습이 파격과 일탈의 쾌감을 던져준다. 실패는 이제 진부하다.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사실 법이란 너무나 먼 이야기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같다. 그러나 또한 한 편으로 늘상 부딪히는 일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법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는가. 당연히 지급받아야 할 보험금을 받아내는데도 법을 알지 못해 손해보면서도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환자 자신만이 아닌 병원관계자들조차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해 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래서 더 필요한 것이 변호사라는 직업일 것이다. 단지 법률에 대한 사소한 지식들을 풀어놓는 정도인데도 어느새 김석주의 주위로 환자와 가족들이 모인다. 복선일지도 모르겠다. 진정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것은 누구인가 하는.

다시 시작한다. 다시 시작하고 있다. 과거의 기억은 사라졌다. 과거의 인연들도 사라졌다. 그로 인한 책임들로부터도 자유롭다. 어쩌면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억울한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혼자서만 자유롭다. 혼자서만 홀가분하다. 이제부터는 하고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도 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아직은 과정에 불과한지 모르겠지만. 무척 부러운 상황이다. 역시나 자신 또한 리셋을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연과 관계를 지워버리고, 모든 채무와 채권으로부터 자유롭다. 단지 바람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본다. 김석주를 쫓는다. 자유로워진 그의 새로운 삶과 시작에 대해서.

지난주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연기는 이번주 있는대로 힘을 빼고 선 자신의 모습과 대비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허탈한 듯 긴장감을 잃은 표정과 말투가 한결 자연스러워 보인다. 어린아이같이 천진하면서도 노회한 넉살도 보인다. 이지윤은 단지 김석주를 위한 수단으로서 차영우 로펌에 정식으로 채용된다. 단지 기억을 잃은 김석주의 손발노릇을 위해서. 한 인간의 가치는 다른 한 인간을 수단할 정도까지 된다. 김석주의 손발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국내 최고의 로펌에 정식으로 채용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냉정한 현실이다. 그 냉혹함을 아무렇지 않은 일상으로 차영우는 보여준다. 김상중은 보여준다.

아직은 과정이다. 지난주 김석주의 과거가 나왔다. 지금 김석주는 과거의 기억을 잃고 초기화되었다. 김석주 아닌 김석주가 되어 김석주의 의뢰를 물려받는다. 아마도 김석주와의 차별화를 위해 다른 방식으로 의뢰를 성공시키지 않을까. 차영우 로펌과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기게 된다. 그러니까 과정이다. 그리고 그는 어떤 사람이 되어갈 것인가.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흥미를 더욱 자극한다.

제목이 기대를 키운다. 제목 자체가 차라리 스포일러에 가깝다. 다만 결말이 예정된 이야기라면 그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힘을 뺀 일상의 소소함이 친근하다. 원래의 큰 의뢰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연속성과 단절의 경계다.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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