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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5.07 11:16

[김윤석의 드라마톡] 빅맨 4회 "그들이 잊고 있었던 것, 가장 평범하며 소중한 그것을"

소미라의 선택, 김지혁이 싸준 반찬을 맛있게 먹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그동안 잊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다지 필요가 없으니 무시하고 지나왔는지 모른다. 더 가치있는 것들을 위해 조금 가치가 덜한 것들을 희생한다. 그래서 이번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사고도 일어나고 말았다. 차마 말로 꺼내기조차 두려운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존중받아야 하고 인간 이상의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단지 같은 인간으로서 대해주기만 하면 된다. 동등한 인격체로써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봐주기만 하면 된다. 노동자를 가족으로, 동료로, 그래서 현성그룹의 오너 강성욱(엄효섭 분)은 김지혁(강지환 분)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고작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름따위 트럭에 새겨넣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리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하룻밤이면 모든 것은 해결된다.

직접 시장에서 시장상인들과 함께 일을 하며 신뢰를 쌓아간다. 그동안의 정에 다시 변하지 않았다는 신뢰를 더한다. 김지혁이라면 다를 것이다. 김지혁이라면 다른 사장들과는 다르게 자신들을 대해줄 것이다. 현성유통과 시장상인들 사이에 대화를 막고 있던 것은 바로 그 불신이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먼저 이해하려 다가가야 했던 것은 보다 우위에 있던 현성유통이었다. 시장상인들은 불안하고 두려웠을 뿐이다.

▲ KBS 제공
현실에서도 흔히 보는 상황이기도 하다. 다만 그 전개가 상당히 다르다. 서로 자존심을 내세우며 폭력을 주고받는다. 힘의 우열에 의해 결과는 결정되고 피와 눈물만이 절망과 함께 남게 된다. 그러고도 패자는 죄인이 되어야 한다. 모든 사회가 패자들을 비난한다. 그들로 인해 승자가 곤란을 겪어야 했다. 노동자의 파업으로 상품운송이 중단되며 현성유통은 손해를 보았다. 신설마트의 건설이 지연됨으로써 현성유통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야 말았다. 바로 그 돈이라고 하는 현대사회의 신성 위에 재벌이란 존재하는 것이다. 그 신성을 해치는 노동자와 시장상인이야 말로 죄인이다.

그렇게 흘러갔어야 했다. 하기는 김지혁 자신이 전과자이기도 하다. 배우지 못해서, 기댈 배경이 없어서, 그저 악만 가지고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이력이 붙게 되었다. 죄의 본질에 대해 묻게 된다. 인간이 죄를 짓는가. 인간이 죄를 짓게 만드는가. 이 사회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머물던 김지혁의 눈이 오히려 아직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본질을 꿰뚫게 만든다. 업무도중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족을 찾아가 위로하고, 업무와 관련해서 검찰조사를 받는 직원과 가족을 직접 찾아가 달래준다. 자기만 믿으라. 회사는 결코 그들을 잊지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화라 하는 것이다. 억지로 가장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져 저 위의 세계로 던져진다. 날벼락처럼 저 위에서는 전혀 이질적인 존재를 동료로 맞이하게 된다.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것. 이해하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 그것. 다만 아래에 머물고 있기에 그들도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옷차림도 중요하다. 항상 단정하게 차려입는 것도 사장의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다. 아니 기본이다. 회사의 얼굴로서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을 최소한의 차림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옷차림따위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가족의 가치에 대해서도. 혈육에 대한 정은 존재한다. 그러니 정략결혼이라는 것도 가능하다. 혈육에 대한 집착이 정략결혼이라는 이해타산의 전제가 된다. 다만 그 표현방식이 다르다. 돈과 권력, 그들이 그들일 수 있는 신성의 이름일 것이다. 그것만이 그들을 행복케 하고 존엄하게 만든다. 나름대로의 절박함이다. 강진아(정소민 분)가 김지혁에게 이끌리는 이유다. 강성욱이 가족을 미끼로 김지혁을 농락할 수 있는 것과 정확히 대비된다. 강성욱에게 단지 수단에 불과했던 가족의 정이 정작 그의 딸 강진아를 김지혁에 이끌리도록 만든다. 어쩌면 인간의 너무나 당연한 본능인 것이다.

소미라(이다희 분) 역시 바뀌어간다. 그녀를 바뀌게 만드는 것은 아니나 다를까 김지혁의 인정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녀의 존재를 필료로 해준다. 그녀를 하나의 주체로써 대등하게 인정해준다. 강동석(최다니엘 분)으로부터 사랑받기는 했지만 과연 그 사랑이 동등한 인격체를 향한 것인가 항상 의심하고 있었다. 첫회에서 무심코 내뱉은 '내 애인으로 승진시켜준다'는 말은 어쩌면 강동석의 무의식이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김지혁은 인간 대 인간으로, 남자와 여자로, 그녀를 향해 수줍지만 정면으로 부딪혀 오고 있었다. 그녀와 같은 처지의 노동자와 시장상인들을 향한 그의 진심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단단한 껍질을 녹여버린다.

시리얼이 아닌 시장에서 김지혁이 사서 안긴 반찬들을 즉석밥과 함께 먹으며 새삼 맛을 느끼는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일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김지혁을 보았다. 최선을 다한다기보다는 당연했다. 자기 연봉을 미리 가불해서 일개 비정규직 노동자 하나를 위해 몽땅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며 자신의 인사이동을 전해왔다. 현성그룹 일가족의 뒤치닥거리가 아닌 현성유통의 실무와 관련한 팀장 자리다. 진정으로 소미라 자신이 바라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누군가 시리얼에 대해 그런 말을 했었다. '인간사료'라고. 누군가는 '사료'와 '식사'는 다르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반찬을 만들고 나누어준 이의 마음까지 함께 먹는다.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이고 그리고 그것을 직접 사서 건네준 마음이 있다.

김지혁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현성그룹의 계획은 계속된다. 자기가 큰 아들을 잘두었다는 강성욱의 자부심에서 인간을 단지 수단으로 여기는 그의 일상이 드러난다. 단지 현성그룹과 현성그룹의 오너 강성욱을 위해서 현성유통은 부도가 나야 하고 김지혁은 죄인이 되어야 한다. 죄인이 되고 나서는 필리핀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현성그룹 일가는 안전하게 지금의 일상들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할 수 없다. 김지혁은 그들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다른 상식, 다른 가치관, 다른 사고와 다른 행동들. 정작 그것들이 그들은 미처 생각지 못한 해결책을 내놓고 그들의 모든 계획을 무산시킨다. 물론 현실이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다시 김지혁에게 뇌물을 들려주어 강동석을 수사하려는 검찰과 만나게 한다. 뇌물을 증여하는 순간을 포착당한다면 김지혁은 꼼짝없이 강동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그것을 김지혁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긴장감이 그다지 없는 것은 김지혁은 강동석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대부분의 시청자와 눈높이가 같다. 오히려 소미라에게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다. 김지혁인가, 강동석인가? 과연 그녀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동등한 인격으로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는 것인가. 아니면 저 위의 고귀한 신분들 사이로 편입하는 것인가. 현실은 과연 그녀에게 시궁창이었는가.

충분히 예상가능한 상황들을 강지환의 넉살좋은 연기로 맛깔나게 색칠해낸다. 어쩌면 뻔하다 할 수 있는 상투적인 장면들이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실감을 가진다.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실제 있었던 이야기처럼 생동감을 갖는다. 그럼에도 김지혁을 위한 우화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김지혁의 캐릭터에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는 충분히 재미있다. 어쩔 수 없는 김지혁과 같은 높이에 있는 시청자로서 가지는 동질감일 것이다.

과연 김지혁은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강동석이 장차 돌아온다. 김지혁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강동석을 자기의 동생이라 믿고 있었다. 강동석은 아닐 것이다. 소미라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소미라를 둘러싼 형제 아닌 형제의 갈등이 불거진다. 강성욱의 의도는 더욱 김지혁을 몰아세울 것이다. 승자는 김지혁이다. 비극은 어울리지 않는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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