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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5.05 08:14

[김윤석의 드라마톡] 정도전 34회 "왕의 성씨란 나라의 골수와 같다!"

장계취계, 이대도강, 고육지책, 정몽주 심장을 가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짐은 곧 국가다!"

절대왕정을 상징하는 너무나 유명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제왕조를 정의하는 보편적 개념이기도 하다.

국가란 무엇인가? 지금이야 다양한 논의와 연구를 통해 더 많은 답들이 나와 있다. 그러나 전근대의 왕조국가에서 국가란 오로지 하나였다. 바로 왕. 왕을 정의하는 혈통. 그래서 역사도 하나의 혈통이 지배하는 시대를 '왕조'라 구분하여 정의하고 있다.

왕이란 단지 지배자였다. 백성은 왕을 위해 세금을 바치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왕이 자신을 정의하는 것이 바로 국가였다. 왕이 스스로 왕위에 올라 선언함으로써 국가는 성립되었다. 그러한 왕을 정점으로 일단의 지배계급이 모임으로써 국가라는 구조를 이루었다. 왕이란 따라서 국가를 정의하는 유일한 주권자였다. 왕이 바뀌면 국가도 바뀌고, 왕이 사라지면 국가 또한 사라진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할 수 없다. 언젠가는 죽어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국가도 같이 사라지는가. 실제 많은 나라들이 그렇게 사라지고 있기도 했다. 어느 한 개인의 의지에서 태어난 나라들은 그 개인의 의지가 사라지는 순간 그대로 흩어져 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미 국가라고 하는 실체가 남아있기에 그 남은 의지가 투영되어 영속성을 담보하게 된다. 그를 위한 매개가 바로 혈통이다. 혈통이란 최초로 왕이었던 자의 증거다.

▲ KBS 제공

정도전(조재현 분)이 역성혁명을 꿈꾸는 이유다. 고려의 왕씨왕조란 고려 그 자체였다. 고려의 질서였으며 고려의 정의였고 고려를 이루는 모든 것이었다. 왕씨에 의해 고려는 만들어졌고, 고려에 의해 왕씨는 왕으로서 존재해 왔다. 고려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왕부터 바꾸어야 한다. 왕씨가 여전히 왕인 동안에는 고려는 여전히 고려일 뿐이다. 새로운 왕조를 세우지 않고서는 근본적으로 고려를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몽주(임호 분) 역시 정도전의 역성혁명 계획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었을 터다. 지금껏 고려에서 고려인으로 살아왔다. 고려란 정몽주 자신의 정체성이다. 그 정체성을 부정해야 한다. 사전혁파의 대의에 동의하면서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고려해 일전일주제를 주장하는 이색(박지일 분)의 편에 서고 있었다. 고려가 아닌 다른 왕조의, 왕씨가 아닌 다른 성씨의 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부정이며 배신이다.

사실 우왕과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우는 순간 정몽주의 고려 역시 이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왕이 빚진 대상이 다르다. 왕에게 빚진 대상도 다르다. 공양왕의 조정을 채우는 것은 결국 이성계가 제거되더라도 정몽주를 비롯한 신진사대부들일 것이다. 물론 그 대부분은 권문세족의 후예들이다. 이전과는 다르다. 이인임과도 다르고 최영과도 다르다. 조민수와도 다르다. 다만 정몽주가 그동안 주장해 왔던 온건한 개혁과는 닮아 있다. 그동안의 고려와는 다른, 그러나 너무 다르지 않은 변화를 정도전은 추구해 왔었다.

어째서 우왕과 창왕의 폐위를 함께 주도하고서는 공양왕이 즉위하자 입장을 바꾸어 이성계와 대립하게 되었는가. 역사는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개인의 해석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은 정도전 자신도 창왕으로는 부족하다 여긴 탓이다. 이성계(유동근 분)와 정도전이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고 있는데 창왕은 너무 유약하다. 차라리 우왕이 왕위에 있었다면 정몽주는 그를 도와 이성계와 정도전 등을 제거하려 했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고려가 왕씨의 나라여야 한다는 것은 고려가 고려여야 한다는 대명제와 일치한다. 정창군은 고려의 왕씨지만 이성계는 단지 이씨에 불과하다.

현대사회에서도 유효한 논의일 것이다. 국가란 또한 이데올로기다. 국민도 또한 이데올로기다. 국민을 위해 국가를 포기하는가. 국가를 위해 국민을 희생하는가. 백성을 위해 왕조를 바꾸려 한다. 이제까지의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한다. 고려라고 하는 왕조에 있어 정도전은 배신자다. 이성계는 반역자다. 그러나 백성들의 입장에서 정몽주는 단지 기득권의 입장에 충실한 반동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으로 국민을 핑계삼지만 국가의 안정성을 훼손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조선건국의 경우는 그나마 낫지만 많은 왕조들이 교체될 때 그 피해의 대부분은 백성들 자신들에게 돌아갔다.

아무튼 왕이란 일반 백성들과는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사대부들과도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다. 단지 왕이라는 이유만으로 권세가 아무리 강해도 그 앞에서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해서는 안된다. 왕이란 정통성이다. 정통성이란 정의다. 그래서 왕위를 찬탈하면서도 최소한 왕위에 있을 때만큼은 죽이거나 벌주지 않았다. 건문제는 그래서 실종되었고, 세조가 단종을 벌주고 죽인 것은 왕위를 양보받고 난 뒤였다. 단지 정몽주가 정창군의 이야기를 꺼낸 것만으로도 흥국사에 모인 신료들이 동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혈통의 힘은 그만큼 강하다. 하물며 이미 왕위에 오른 이의 한 마디임에야. 이성계조차 그것을 거부하거나 무시하지 못한다.

정몽주가 창왕에게 실망한 이유였다. 왕이란 두려워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겁먹어도 겁먹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최소한 신하들에게는 그래서는 안된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어미의 뒤에 숨어 도망치려 할 때 그는 왕으로서 자격을 잃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왕이 스스로 왕이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는 더이상 왕일 수 없다. 왕위를 찬탈하려는 자들과 싸우려는데 왕이 먼저 도망치고 있으니 새로운 왕을 세워야만 한다. 그런 상황으로 몰고간 것이 이성계와 정도전이다. 스스로 신념을 꺾고 왕을 폐위시키는 순간 그는 상처만큼이나 깊은 분노와 원한을 느낀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정몽주의 적이다.

"이 사람의 왕이 되고 싶다."

그럼에도 정몽주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며 방해하려는데 오히려 이성계마저 정몽주에게 이끌리고 만다. 이 사람의 왕이 되고 싶다. 조선이 건국되고 정몽주를 따르던 온건파 사대부들은 거의 대부분 이방원의 편에 서서 그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돕는다. 이방원이 이들을 등용하고 심지어 자신이 명령해 죽인 정몽주를 높이는 작업을 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우는 것은 정도전의 의지를 쫓되, 장차 조선을 지키는 것은 정몽주의 신념에 의지한다. 왕이 되었으면 정도전이 아닌 정몽주의 왕이 되고 싶다. 조선의 성리학을 주도한 것 역시 정몽주의 제자인 야은 길재의 후예들이었다.

스스로 왕씨임을 인정받고자 발광하는 우왕(박진우 분)의 모습이 처절하다. 광기였다. 그것은 내내 우왕의 컴플렉스이기도 했다. 과연 자신은 공민왕의 자식인가. 강한 척 그동안 많은 무리를 저질러 온 이유이기도 했다. 어려서 그는 아버지의 강한 모습밖에 보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 필사적으로 부여잡으려 했던 그것이 허물어지는 순간 그는 정신을 놓아버리고 만다. 혈통의 힘이다. 신우와 신창으로 역사에 기록된 그들은 무덤조차 남기지 못한다. 덕분에 적은 피만 흘리고도 조선이 건국될 수 있었으니 역사의 희생양이라 할 것이다.

때를 기다린다. 아직 신료들의 마음은 고려에 가 있다. 이성계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고려라고 하는 마음의 고향을 그린다. 우왕과 창왕을 폐하더라도 새로운 왕씨를 왕위에 올릴 수 있다면 그쪽이 더 나을 수 있다. 조선건국과정에서, 그리고 조선이 건국되고 다시 많은 피가 흘러야 했던 이유다. 하나의 왕조를 바꾸는 과정은 이렇게 힘들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거나, 아니면 더 과격한 수단을 동원하거나. 정몽주를 아쉬워한다.

고려를 지키기 위해 왕을 버린다. 고려의 왕씨왕조를 지키기 위해 우왕과 창왕을 포기한다. 심장을 떼어내는 것 같다. 그 필사적인 결의가 조용한 분노를 통해 드러난다. 반격을 준비한다. 공양왕도 그리 어수룩한 인물은 아니었다. 시대가 따라주지 않았다. 너무 늦었고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 고려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다.

예언이었을 것이다. 선위라 해도 힘으로 왕위를 빼앗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결국 그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말 것이다. 고려의 역사가 증명했다. 정도전 자신도 그렇게 이방원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세조의 즉위를 위해 다시 수천의 피가 흘렀다. 과연 역사는 누구를 승자로 기록할까. 조선을 세운 것은 정도전이지만 조선을 지킨 것은 정몽주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왕의 성씨란 곧 국가의 골수와 같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그만큼 시대가 달라졌다. 주권은 왕이 아닌 국민들 자신들에게 있다. 국민이란 곧 국가의 골수와 같다. 그렇게 이해될 수 있을까? 먼 과거의 이야기다. 그 시대를 이해한다. 오늘을 이야기한다. 의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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