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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5.04 07:29

[김윤석의 드라마톡] 정도전 33회 "권력의지, 괴물이 되어가는 이유"

조용한 카리스마, 임호의 정몽주를 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정현민 작가가 참여했던 전작 '프레지던트'에서 언급되었던 '권력의지'라는 것일 게다. 권력을 가지고자 하는 이유다. 다른 사람의 위에 서고 싶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운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힘에 도취되어, 더 많은 부와 더 큰 쾌락과 더 높은 명성과 지위, 그리고 때로 권력을 가져야지만 이룰 수 있는 무언가를 위해서.

어느새 이인임을 닮아가고 있었다. 결국 그것이 권력인 탓이다. 이인임과 이유는 다르지만 권력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지켜야만 했다. 평생의 꿈인 사전혁파와 계민수전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져야만 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이상을 가질 수는 없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다. 추구하는 바도 다르고 목적하는 바도 다르다. 그런 모든 것들을 인정하려 한다면 그만큼 이상은 오염되고 후퇴할 수밖에 없다. 방해되는 것들은 모두 남김없이 치워버려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이상을 현실에 실현할 수 있다. 그를 위한 힘이다. 권문세족을 비롯한 고려의 기득권들을 한번에 침묵시킬 수 있는 힘. 모든 반대자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힘이다. 이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힘이다.

▲ KBS 제공
그래서 권력을 가지려 한다. 더 큰 힘을. 더 강한 권력을. 그것이 지상의 목표가 된다. 정몽주(임호 분)가 정도전(조재현 분)에게 제안한다. 만일 창왕을 폐위시키지 않고 왕위만 지켜준다면 정도전이 추진하고 있는 사전혁파를 자신 또한 돕겠다. 이색(박지일 분)마저 관직을 내놓고 물러난 지금 정몽주가 힘을 실어준다면 사전혁파의 개혁은 순조롭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도전은 거부한다. 사전혁파는 정도전의 오랜 꿈이었지만 그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왕조의 건설은 그러한 그의 꿈을 위한 또다른 꿈이 되어 버린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왕조가 새워진다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남김없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도전이 가지게 된 자신만의 권력의지였을 것이다.

후회도 한다. 고민도 한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회의도 가진다. 하지만 돌아보지 않는다. 권력 그 자체를 탐욕했던 이인임처럼 정도전에게도 권력이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당위였기 때문이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보다 더한 것이라도 바칠 수 있다. 스승과 동문에 대한 의리도, 정몽주와의 오랜 우정도, 선비로서의 자신의 양심과 자존심까지도. 더 고약하다. 어떤 이상도 정의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이인임은 손쉽게 주위와 타협할 수 있었다. 군벌과도 타협하고 사대부와도 공존했다. 자기 이외에는 용납하지 않았던 최영과 더 닮았다. 이상이 고결하기에 다른 어떤 타협도 양보도 존재할 수 없다. 스승도 동문도 우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인임이 경고한 괴물의 모습인 것이다. 정도전 자신의 말조차 배반한다. '정치'를 부정한다. 정치란 공존이다. 양보이고 타협이다. 주고 받는 것이다. 받은 만큼 내주는 것이다. 상대를 인정한다. 상대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정몽주가 하려던 것이 정치였다. 이색이 주장하는 '일전일주'와 정도전이 내세우는 '사전혁파' 가운데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부분들을 논의한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러나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최적의 선을 찾아낸다. 그러나 어렵다. 그리고 멀다. 그조차도 이상의 변절이며 배신으로 여겨진다. 차라리 반대의 여지를 모조리 도려낸다. 전쟁이다. 승자와 패자만 있다. 정몽주가 개혁을 말하고 정도전이 혁명을 꿈꾸는 이유다. 혁명이란 전쟁이다. 정치는 어렵지만 전쟁은 쉽다. 권력을 가진 자는 누구나 독재를 꿈꾼다. 독재야 말로 가장 쉽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우왕(박진우 분)이 김저를 시켜 이성계를 죽이려 하는 것을 곽충보의 고변을 통해 알게 되자 정도전은 그것을 군부에 신망이 두터운 변안열(송금식 분)을 제거할 기회로 삼으려 한다. 고려왕실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변안열은 장차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는데 크게 방해가 될 터였다. 곽충보가 전한 말만 믿고 우왕을 찾은 변안열을, 우왕과 함께 있는 순간을 노려 우왕의 지시에 의한 김저의 암살기도와 엮어 넣는다. 아직 이성계와 맞설 수 있었던 군부의 마지막 실력자가 그렇게 제거된다. 이색을 비롯 이성계의 독주를 견제하던 많은 이들이 이때 함께 연루되어 조정에서 사라진다. 조선건국을 위한 희생양이던 변안열이 회군에 동참한 공을 인정받아 조선왕조에서 개국 2등공신으로 봉해진 것은 지독한 역사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변안열의 죽음은 조선이 건국된 뒤로도 말들이 많았다.

마침내 정몽주가 일어서려 한다. 당당히 이성계에게 말한다. 백성을 위하는 것도, 백성의 아픔을 보듬는 것도,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도 모두 왕이 해야 할 일이라고. 왕이 아닌 자는 오로지 왕을 빛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백성을 위해 왕이 되고자 하는 이성계의 의지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고려에 왕은 오로지 한 사람 뿐이며, 고려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고려왕실의 정통성을 물려받은 왕씨 뿐이다. 왕이란 단지 백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정도전에 비해 정몽주에게 왕과 왕실은 그 자체로 신하된 자의 목적이어야 한다. 일관성이 있다. 사전혁파의 대의에 동의하면서도 고려라고 하는 체제의 유지를 위해 스승인 이색과 그를 따르는 동문들의 입장 또한 존중한다. 백성이란 고려를 이루는 일부에 불과했다.

이성계에게 묻는다. 정도전에게 다시 묻는다. 왕이 되려는가.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는가. 그것은 정몽주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였을 것이다.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혁명가이기보다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살다가 죽는 선비이고자 했다. 어쩌면 오로지 가엾은 백성들의 어려운 처지만을 생각하는 정도전에 비해 한심하기까지 한 고루한 사고방식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끌리고 마는 것은 그만큼 정몽주의 그같은 말과 행동이 너무나 선명하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조금의 의심도 없다. 조금의 회의조차 없다. 두려움없이 마주한다. 망설임없이 묻는다. 머뭇거림 없이 대답한다.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굳은 의지와 그럼에도 세상의 선의를 믿는 온화함이 있다. 임호라고 하는 배우의 관록이 조용한 카리스마로 또하나의 정몽주를 세상에 내놓는다. 어쩌면 실제의 정몽주도 이러했으리라.

여전히 쉽지 않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놓아버려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미련도 남고 후회도 남는다. 망설이기도 한다. 머뭇거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가야 한다. 매순간의 갈등들이 배우의 표정 하나 몸짓 하나로 전해진다. 이렇게까지 왕이 되어야 하는가. 그럼에도 왕이 되어야 한다. 왕을 만들기 위해 다시 한 번 자신을 다잡는다. 스승과 의절하고, 동문들과 원수가 되고, 그토록 증오하던 이인임이 되어간다. 괴물이 되어서라도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 그들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스스로를 속이고 그렇게 위로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이상이 옳다면 그를 위한 수단 또한 옳다. 이인임과 정도전은 다르다. 그러면서 이인임과 정도전은 닮았다. 권력이라고 하는 본질을 보여준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동기가 무엇이 되었든, 어디로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가고 있든,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들은 권력을 향한 의지로 수렴한다. 그로부터 모든 것이 정의된다.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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