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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19 07:55

스파이명월 "익숙하지 않은, 그러나 웃을 수 있다."

작가의 무모함에 찬사를 보낸다.

 
아마 보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당황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기승전결이 뚜렷한 발라드를 듣다가 멜로디와 가사가 짧게 쪼개지는 강렬한 비트와 사운드의 댄스음악을 듣는 느낌일까? 도무지 뭔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겠다.

그런 드라마다. 다만 의도한 것이라면 상당히 무모하다 말해주고 싶다. 한국의 일반대중은 아직까지는 일관되고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지나치게 과장된 것도 싫고 앞뒷맥락이 단속적으로 끊어지는 것도 그다지 익숙지 않다. <스파이명월>이 시청자로부터 혹평을 듣는 이유일 것이다. 필자는 무척 재미있게 보고 있다.

연애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한명월(한예슬 분)로 하여금 강우(문정혁 분)를 유혹할 수 있도록 원력으로 조종하는 모습은 마치 지금은 폐지된 일밤의 코너 <뜨거운 형제들>을 보는 것 같았다. 더구나 하필 한명월이라는 아바타를 조종하는 것이 7,80년대 트로이카의 한 사람이었던 유지인(리옥순 역)이라는 것이. 마치 유지인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80년대 특유의 오그라드는 신파조 대사가 차마 보는 사람마저 민망하게 만든다.

"아냐, 아냐, 이거 완전히 쌍팔년도네! 여자가 이렇게 치근거리면 남자가 질려요!"

하지만 한희복(조형기 분)의 그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진심은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모양이다. 아니 한명월은 진심이 아니었다. 그러나 과도하게 자신의 진심을 호소하는 특유의 신파조 고백이 어느 정도는 강우에게 먹혔던 듯하다.

"사랑해요!"

물론 이어 나타난 주연아(장희진 분)와 그녀에게 보여주기 위한 강우의 기습키스, 여기에 당황한 한명월의 폭력이 모든 것을 무산시켜버렸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그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내던지듯 고백해 오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 대체 뭐야?"

그리고 여기에서 제작진은 한 가지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설마했다. 한명월을 강하게 의식한 듯한 장면에 이어진 강우와 한명월의 잦은 우연과 마주침. 처음에는 한명월이었을까? 그러다가는 강우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여기에서 리옥순은 한 마디로 정리해 준다.

"널까 아닐가 헷갈리게 되면 왜 자꾸 모든 여자가 너(한명월)로 보일까 자기 눈을 의심하게 되거든. 어떤 남자 때문에 헛게 보인 적 없지?"

그야말로 흔히 쓰이는 클리셰였얼 터다. 누군가에 반했을 때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그 사람으로 보이고. 그래서 오히려 드라마를 많이 보았기에 시청자마저 착각하게 된다. 과연 강우가 한명월을 진짜 의식하게 된 것일까? 과연 효과가 있었는가는 모르겠지만 강우가 한명월의 기사사진을 찾아보는 장면에 이어 한 번 더 확인사살을 해 주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마무리가 아주 조금 아쉬웠달까?

어쨌거나 그렇게 하나의 시퀀스가 지나고 이번에는 최류(이진욱 분)와 주회장(이덕화 분), 강우가 함께 찾고 있는  '사합서'라는 책에 대해 그 단서를 가지고 있는 도깨비라는 인물을 찾기 위해 강우가 흥신소를 찾으면서 다시 한 번 강우와 한명월이 이어질 계기가 만들어진다. 한희복이 제공한 정보를 따라 어느 시골마을을 찾은 강우에 대해 이번에도 역시 한명월은 리옥순의 지시를 받아 접근을 시도한다.

그리 허술한 배경으로 쓰이기에는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정교하게 잘 지어진 아름다운 한옥과 펌프, 찐감자, 그리고 마치 시간을 거슬러 간 듯한 동네 아이들. 짧게 자른 머리에는 기계충자국이 있고, 촌스러움 그 자체인 옷차림에 정체불명의 자루가 정점을 찍는다. 강우는 시골을 내려간 것이 아니라 시건을 거슬러 간 것이었을까? 물놀이하는 한명월의 모습부터가 70년대 문화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추레한 시골아이들과 세련된 도시소녀. 마치 그들이 있는 공간만 어딘가 격리되어 있는 듯 비현실적인 그리운 느낌마저 주고 있었다. 제작진이 의도한 것이었을까?

아마 이것도 한 요인일 지 모르겠다. 어떤 복고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좋은데, 그조차 이어지지 않고 단속적으로 끊어지고 있으니 이미지가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촌스러운 느낌만 남긴다. 남한사회에 잠입한 북한공작원이라는 것도 진부하고, 북한사회를 희화화하여 묘사하는 것 역시 마치 고전을 보는 것 같다. 조형기와 유지인이 보여주는 그 시절의 그 연기모습들. 그런데 자칫 드라마 자체가 그리로 끌려가는 것 같은 것이 불안한 것이다. 차라리 아예 드러내 놓고 촌스러울 수 있었다면 그것도 매력이 될 수 있었으련만.

느닷없는 뱀을 무서워하는 강우로 인한 한 바탕의 헤프닝에 이은 또 한 번의 반전 - 강우의 비밀경호원 한명월. 진짜 이 드라마는 시청자와의 소통을 아예 포기한 드라마다. 설득하려는 시도조차 않는다. 어째서 한명월이 강우의 경호원이 되어야 하는가? 강우의 변명은 공허하기만 할 뿐이고 남는 것은 개인경호원이 되어 좌충우돌하는 한명월의 모습 뿐이다. 스캔들 상대인 여자연예인의 팬클럽이 강우의 집앞까지 와서 시위하는 것을 힘으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라. 그로 인해 어린 추종자들도 잔뜩 생겨났다. 주연아의 매니저마저 그녀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경호원이었다면. 아니면 뭔가 유기적인 개연성을 가지고 경호원이 되었다면. 거의 스토커 수준이다가, 갑자기 순정멜로의 주인공이 되어 직접적으로 고백을 하고, 타임슬립을 한 듯 어느 외진 시골마을에서 구닥다리 문화영화를 찍다가는, 그리고 갑자기 경호원.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황을 넘어 분노까지 느낄 만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러겠다는 것을.

말했듯 그 장면장면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7,80년대 멜로의 주인공이었다가 다시 70년대 문화영화 속의 세련된 도시소녀가 되었다가, 다시 성실하고 단호한 보디가드의 모습이 되어 있는 한명월을. 한예슬을. 그리고 그 사이사이 보여지는 깨알같은 웃음들을. 쌍팔년도 스타일이라며 면박을 주는 한희복과 뱀을 보고 질색을 하는 리옥순, 그리고 한희복과 결혼한 리옥순의 딸이라 알고 있는 한명월에 반하게 이대강(이켠 분)의 어리숙한 모습까지. 홀로 옥상에서 고독을 즐기고 있는 강우에게 다가가 이대강으로부터 들은 말을 흉내내어 어울리지도 않게 고백하는 한명월의 모습이 귀엽지 않은가.

아무튼 그래서 무모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쪽 구석에서는 혹시 작가가 80년대 드라마를 쓰던 작가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더 거슬러 올라가 70년대나 60년대에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을까. 그도 아니면 매우 모험심 강하고 자신감에 넘친 젊은 작가이거나. 어지간해서는 시청자의 눈이 신경쓰여 이것저것 말이 많을 텐데 모두 생략하고 있다. 그냥 내가 보여주는 것만 보라. 내가 들려주는 것만 들으라. 그래서 수다라 하는 것일 테지만. 유쾌한 수다였다.

그리고 덧붙여 강우의 캐릭터에 대해서. 사실 강우의 캐릭터가 답습하고 있다는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의 캐릭터부터가 하나의 클리셰와 같은 것이었다. 너무 잘나서 까칠한 것도 용서되는 남자. 냉정하고 오만하고 거칠 것 없는, 그러나 그 이면에 어떤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허술함이 있다. 단지 <최고의 사랑>이 끝나고 바로 <스파이명월>이 방영된 탓에 그리 오해를 받는 것이지 아마 시간을 두고 방영되었다면 오해랄 것도 없었을 것이다. <최고의 사랑>에서도 처음 독고진의 캐릭터를 상당히 진부하게 여기고 있었다. 뻔하다.

더구나 강우와 독고진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독고진은 그 잘난 까칠함 뒤에 숨은 허당스러운 모습이 포인트였을 것이다. 반전인데 그 이면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 아무래도 연예계의 이면을 다루다 보니 독고진 역시 드러난 겉모습보다는 그 이면의 솔직한 모습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그에 비하면 강우는 전형적인 잘난 남자다. 너무 잘났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자발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벽이 되어 주위의 대상이 되어주는 캐릭터. 독고진은 자기가 직접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었지만 강우는 아직까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상당기간 그같은 모습을 유지할 것이다. 전혀 다른 이유다.

비슷하다 해서 같다. 겉보기가 비슷하니 따라한 거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과연 독창적이라 할 수 있는 드라마나 소설이 뭐가 있을까? 표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음악이 어디 있을까? 영향을 주고 받으며 같은 영향 아래 서로 닮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것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살리느냐? 강우의 캐릭터를 어떻게 묘사하고 활용하는가를 보아야지 까칠한 한류스타라는 외형만 보아서는 곤란한 것이다. 일반 시청자라면 모를까 비평하는 입장에서마저.

어쨌거나 국정원 요원 유다혜(이다희 분)에 의해 주회장이 북한과 접촉하며 '사합서'를 찾는 것이 포착되었고, 주회장 곁에 한명월의 직속상관이기도 한 최류가 접근해 있으니 이것으로도 한 바탕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 과연 '사합서'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강우는 주회장에게 그것을 숨겨가면서까지 찾고 있는 것일까? 강우와 주회장과의 관계는? 무엇보다 국정원의 추적을 받게 된 어설픈 간첩 한희복, 리옥순, 그리고 한명월의 대응이 주목된다. 최류는 역시 강우와 마찬가지로 잘난 남자과이기 때문에 그냥 그럴 것이다.

'사합서'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고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긴장이 고조될 때 드라마도 돌파구를 찾게 될 것이다. 국정원까지 끼어들며 한명월과 강우의 관계는 더욱 꼬여갈 테고, 그러면서도 얽히고 섥힌 관계 속에 어떻게 그것을 의도한 코미디로 승화시켜 나가는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긴장과 웃음을 공존시키는 것은. 역시 한예슬의 뻔뻔한 연기와 조형기, 유지인의 농익은 코믹연기에 기대해 보아야 할까? 현재 시청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미스 리플리>의 종영에 맞춰 터뜨릴 수만 있다면 현재의 열세에 대한 반전도 가능할 것이다.

생각없이 보기에 좋은 딱 코미디 드라마일 것이다. 문정혁, 한예슬, 이진욱은 매력적이고, 조형기와 유지인의 코믹연기는 무르익어 터질 듯하다. 누가 있어 그렇게 나무 위에 잠복해 다방아가씨와 실랑이하는 연기를 해 보일 수 있겠는가? 새침하면서도 어딘가 빈 구석이 보이는 매력도 유지인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 좋았는지도. 한예슬을 조종하며 보인 신파적인 사랑고백연기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아직은 조금 부족하지만.

재방송시청율에 기대를 걸어 본다. 아주 드라마가 갖는 매력이 모자르지는 않다는 뜻일 게다. 다만 다른 드라마를 압도할 힘이 부족하다. 그러나 아직 숨겨놓은 것들이 적지 않아서. 그만한 잠재력은 있다고 본다. 기대가 헛되지 않기를. 즐겁게 보았다. 더운 여름 시원하게 웃을 수 있었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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