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5.02 08:35

[김윤석의 드라마톡] 개과천선 2회 "의뢰인의 죽음, 지키지 못하다"

법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의미, 변호사의 이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법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법을 만든 취지나 의도를 헤아려 정의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과는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법에는 인격이 없다. 법은 스스로 사고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 법을 이루는 문장 이상의 다른 취지나 의도 또한 없다. 법 그 자체가 전부다.

과거의 법은 단순했다. 나머지는 권력의 의지가 대신했다. 법이란 사실 크게 의미가 없었다. 어떤 판단의 기준이 되어줄 수는 있었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것이 결국 권력자의 의지였다. 때로는 법을 초월하여 권력자 개인의 정의를 실천했다. 단지 한 줄의 법조문만 있어도 나머지는 얼마든지 권력의 의지로 대신할 수 있었다.

법이 보편의 규준([規準)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결국 그같은 권력에 의한 자의적인 해석과 이용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법은 그 자체로써 의지를 가지고 현실에 작용하게 된다. 인격이 배제된 법에서 그 의지를 대신하는 것이 바로 구체화된 법조문이다. 가능한 모든 경우에 대해 일일이 문장으로써 구체화하여 그밖의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문명의 발달과 비례해 법이 고도로 복잡해지고 방대해지는 이유다.

▲ MBC 제공

다시 말해 법을 지킨다는 말은 법의 의지, 즉 법조문이 가리키고 지시하는 바를 어기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말 그대로다. 건조하게 법이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하란다고 그 이상을 할 필요도 없고, 하지 말라면 그 안에서만 행동하면 그만이다. 선악을 판단하지 않는다. 가치도 판단하지 않는다. 단지 문장으로 정의내릴 뿐이다. 그 문장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법이 괜찮다고 하면 괜찮다.

재판이란 그를 위한 과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법정에서 무죄로 판결났으니 그에게는 죄가 없다. 재판에서 유죄선고를 받았으니 그는 죄인이다. 선악의 판단이 아니다. 본질의 죄를 묻는 것이 아니다. 단지 법을 어겼는가를 판단한다. 그래서 변호사가 존재한다. 법에 대해 전문적이지 못한 의뢰인을 대신해 법을 어떻게 유리하게 적용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연구한다. 변호사란 법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전문가다. 법을 지키지 못했더라도 법으로부터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의뢰인을 돕는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이었다. 의뢰인이 처벌받지 않도록 강간치상이라는 행위를 지우고 피해자로부터 합의라고 하는 항복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그러한 김석주(김명민 분)의 노력이 결국 의뢰인 박동현(이정헌 분)의 죽음이라는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박동현의 아버지 박기철(고인범 분)의 탄식처럼 법이 먼저 박동현의 죄를 처벌했다면 피해자 정혜령(김윤서 분) 역시 굳이 자신의 손을 더럽혀가며 박동현을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법을 어겨가며 재판결과를 왜곡하려 한 결과 정혜령은 짓지 않아도 되었을 죄를 짓고, 박동혁은 원래 자신이 져야 했던 책임 이상을 댓가로 지불해야 했다. 누구도 지키지 못했다.

우화였을 것이다. 다분히 현실성이 떨어지는 의도된 설정이고 상황이었다. 변호사란 어떤 직업인가. 변호사란 어떤 존재인가. 법이란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단지 의뢰인을 위해서만 충실하려는 김석주 자신의 직업인으로서의 프로페셔널에 대해 그것이 과연 옳은가 묻는다. 변호사로서 그동안 해온 일들에 대한 결과를 직접 보여주며 답을 강요한다. 김석주의 변태를 위한 밑밥일 것이다. 그는 이미 충분히 회의하고 있다. 병에 걸린 개를 걱정하는 모습에서 여리고 인정많은 속내를 보여준다. 단지 그는 자신의 일에 지나치게 성실한 것 뿐이다. 그리고 질풍노도처럼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아들일 뿐이다.

변호사란 단지 인간이 가지는 여러 직업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법은 그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의뢰인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설득한다. 어째서 자신들이 재판을 맡아야 하며, 거기에는 어떤 이점들이 있는가. 차라리 세일즈맨에 가깝다. 변호사도 영업을 한다. 의뢰인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의뢰인을 놓치지 않기 위해. 보다 많은 수임료를 받아내기 위해. 김석주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행보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로서 로펌에 이익을 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정의가 생계를 해결해주지도, 로펌의 운영비를 마련해주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현실이다.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정의감이 살아있다. 서툴지만 올곧다. 미숙하지만 올바르다. 정면으로 김석주에게 맞선다. 사소한 실수들과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선량함이 또다른 계기가 되어주고 있다. 이지윤(박민영 분)의 무모함이 애써 묻어두고 있던 김석주의 진심을 두드린다. 단지 고집이 셀 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보다는 지나치게 성실한 탓에 변호사로서의 지금의 자신에 대해서도 성실하려 할 뿐이다. 말 그대로 변태다. 계기가 주어지고 그는 전혀 다른 자신으로 탈바꿈한다. 기억상실은 그를 위한 수단이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 번데기란 애벌레로서의 자신의 죽음을 뜻한다.

조금은 어설프다. 거대로펌의 유망한 변호사가 혼자서 밤길을 가다가 오토바이의 공격을 받는다. 갑자기 불을 켜고 달려드는 오토바이를 피하는 모습도, 그 위로 건축자재가 떨어지는 장면 역시 너무 허술해서 그냥 드라마구나 싶어진다. 김석주의 변태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면일 테지만 그렇더라도 조금 더 정교하고 참신한 연출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뜬금없기도 했었다. 이에 대한 설명이 뒤에 있을 것이다. 그냥 우연은 아니다.

전개가 빠르다. 그만큼 변신을 위한 계기 역시 돌발적인 사고에 의해 급작스럽게 이루어진다. 점차적으로 일상에 의해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악역이던 시절이 그만큼 짧아진다.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모두 앞에 나타나게 된다. 현실에서도 법의 정의를 믿고 실천하려는 변호사들이 적지 않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과 승리에만 집착하던 악역변호사의 극적인 변신을 기대해 본다. 그저 선량하고 유능하기만 한 변호사는 너무 흔하다.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내용이나 설정이 전혀 불필요해진다. 버려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사랑스러운 것을 넘어서야 한다. 당당히 마주서야 한다. 모성은 이제 식상하다. 정의로운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누구도 그런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지윤은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 뿐이다. 아직은 기대해 본다. 멋있는 박민영을 기대한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