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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4.24 08:48

[김윤석의 드라마톡] 골든크로스 3회 "진실은 Fact가 아닌 우리가 원하는 거야!"

딸과 아내의 사이, 너무나 약한 인간의 정의에 대해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그야말로 별 것 없는 소시민의 일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악밖에 남은 것이 없다. 그저 악다구니를 쓸 수밖에 없다. 울고불고, 억지를 쓰고, 몸으로 들이밀고, 그리고 우겨댄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당장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야 할 경찰부터 증거를 조작하고 사실을 왜곡하는데 앞장서고 있었다. 감옥 안에도 그들의 눈과 귀는 있었다. 그들을 대신할 손과 발도 있었다. SR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했다면서 그러나 정작 강하윤(서민지 분)은 계약서조차 쓰지 않았다.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여자아이 하나쯤 얼마든지 마음먹은대로 요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홍사라(한은정 분)는 강하윤을 유인하여 서동하(정보석 분)에게 안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강도윤(김강우 분)에게 그 거짓된 증거조차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믿어야 한다. 그렇다고 하니 믿어야 한다. 명확한 증거가 있다. 어찌되었거나 당사자의 자백이 있었다. 그러니 그것이 진실이다. 진실이란 사실이 아니다.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어지는 것이다. 실제 강하윤을 죽인 범인이 누구이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강주완(이대연 분)이 죽였다는 경찰의 발표이고 언론의 보도다. 경찰을 매수하여 증거를 조작하고, 강주완을 협박하여 거짓증언을 강요하고, 그것을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린다. 이미 그것은 기정사실이 되고 만다. 서이래(이시영 분)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강하윤은 아버지 강주완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결론지어졌을 것이다.

▲ KBS 제공
천망회회소이불루(天網恢恢疏而不漏)라 했던가. 하늘의 그물은 너무 크고 넓어서 성긴 듯 보여도 그러나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그렇게 철저하게 감추고 바꿔놓은 진실을 정작 자신의 딸 서이래가 직접 나서서 파헤치려 한다. 서동하가 강주완의 딸을 죽이고, 서동하에 의해 강주완 역시 딸을 죽인 살인자가 된다. 서동하의 딸 서이래가 강주완을 수사하며, 강주완의 딸이 죽은 진실을 밝히려 한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강주완의 딸 강하윤이 누구에게 죽었는가를. 서이래가 강주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서이래 자신이 누구보다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지독한 역설이다.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신뢰가 정작 그녀를 아버지의 죄를 밝혀야 하는 비극으로 내몰고 만다.

역시 의도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강하윤을 사랑한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배신감에 죽이고 싶었을 만큼 서동하는 강하윤을 사랑하고 있었다. 마지막 미련처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던 강하윤의 사진이 있는 핸드폰을 서동하는 박희서가 부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남은 얼마 안되는 순정이었으며 순수였다. 양심이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너무 쉽게 타협하고 양보한다.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너무 쉽게 넘어버린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던 것은 고위공무원인 서동하 자신이었을 테지만, 상황을 주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목적에 충실한 박희서였을 것이다.

또 한 번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스스로 놓아버린 피로감에 지쳐있던 서동하의 앞에 서이래가 나타난다.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서이래는 그의 꿈이며 이상이다. 그의 미래다. 어쩌면 그래서 이름이 '이래'인지도 모르겠다. 아내 김세령(이아현 분)은 그의 현실이며 그의 욕망이다. 그를 옭죄고 짓누르는 현실의 모든 모순과 부조리들이다. 그의 현재다. 딸을 사랑하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그토록 혐오하고 증오하던 아내이건만 잠든 모습을 연민하며 오히려 자기에 대한 환멸에 빠져든다. 딸을 품에 안아보지만 결국 그가 돌아올 곳은 아내가 잠든 자신의 방 침대인 것이다. 딸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가 머무는 곳은 흐트러진 아내의 곁이다.

사랑하는 딸이 오히려 자신의 죄를 밝히려 한다. 그것을 서동하는 말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서동하의 아내 김세령이 그를 위기에서 구하려 나설 것이다. 그토록 싫어하고 미워하던 김세령이건만 서동하는 김세령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서동하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딸이, 그래서 차마 말리거나 설득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그 소중한 대상이 자신의 죄를 밝히게 되리라는 점이 무언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두 마리 늑대 가운데 승리하는 것은 내가 먹이를 주는 쪽이다. 정보석이라고 하는 탁월한 배우의 연기에 서동하라는 인간에 대해 더욱 흥미를 가지게 된다. 그는 인간이다.

소시민의 정의일 것이다. 양심이 우습다. 정직과 성실이란 성가시고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이다.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돈을 가져오기를 바란다. 부정을 저지르더라도 가족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정작 여동생이 죽고 아버지가 살인자가 되자 진실과 정의를 밝히는 투사가 되어 버린다. 사실은 그냥 악다구니다. 정의도 뭣도 아닌 단지 믿음이고 바람일 뿐이다. 감정에 충실하려는 것이다. 내 가족만은. 내 동생, 내 아버지만은.

결국 강도윤의 바람대로 되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어느 곳 하나 의지할 곳이 없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딸을 죽인 살인자를 원망하면서도 그를 위해 강주완은 스스로 모든 죄를 대신해서 뒤집어쓴다. 아내와 아들마저 비난하고 욕한다. 상처주고 만다. 차라리 어리석다고 비난만 할 수 없는 것은 평범한 샐러리맨에 실직까지 당한 강주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현실에서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도윤이 아버지에게 요구한 것도 그것이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없으니 가족들만이라도 잘살아보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박희서의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는 서동하의 모습과도 자꾸 오버랩된다.

그렇게밖에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나마 지킬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양심이었다. 그나마 지킬 수 있는 방법이 거짓말이었다.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었다. 상처주는 것이었다. 마이클 장(엄기준 분)의 캐릭터는 바로 그 정반대편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실패도 좌절도 어려움도 겪어보지 않았다. 인간은 단지 액자속 대상에 불과할 뿐이다. 수단이고 도구다. 서동하조차 그러한 마이클장의 의도에 휘둘리고 만다. 많은 것을 가졌고,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는 원치 않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진실과 정의는 다른 곳에 있다.

아버지가 딸을 죽이고, 딸은 사회적 병폐의 증거가 되고, 이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비난하며 원망을 쏟아낸다.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이렇게 쉽다. 가족의 끈끈한 정마저 끊어내기가 이렇게나 너무 쉽다. 남이라서 오히려 냉정하다. 진실을 보려 한다. 그보다는 서이래의 뒤에는 서동하가 있다. 정의롭기 위해서도 든든한 배경은 필요하다. 지독한 현실이다.

인간이 수단이 되다. 진실과 정의가 수단으로써 쓰인다. 진실이란 fact가 아니다. 진실이란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그 안에 치이고 망가져가는 삶들이 있다. 답답해지는 이유다. 서동하의 딸 서이래만이 희망이다. 악의적이다. 너무 짓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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