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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2.27 22:38

'남자의 자격', 꿈이 이루어지는 마법의 시간...

처음이자 마지막 게임의 처음이자 마지막 골...

 
"무조건 뛰어야 해!"

우리 나이로 벌써 47살. 한참 어린 나이에도 현역선수들조차 그라운드를 뒤로 하고 떠난다. 평생을 운동만 해온 선수들조차 그때쯤 되면 체력적으로도 부치고 그라운드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아니나 다를까 갑작스런 훈련으로 근육이 놀라 내내 고통스런 모습이었다. 매 순간마다 두드리고 주무르고 그러다가는 끝내 무릎을 꿇고 주저앉고.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정말 미친 듯이 한 번 뛰고 싶다. 다리가 깨지더라도 이 순간만큼은, 다리를 절뚝거리고 기어서라도 뛰고 싶다. 미친 듯이"

마침내 선수가 되어 그라운드에서 시합을 뛰게 되었을 때 체력의 한계도 그만큼 빨리 찾아왔다. 도저히 더 이상 뛸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상황에조차 교체여부를 묻는 코칭스태프의 물음에 손을 들어 사양의 뜻을 전하고 있었다.

"선수로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눈만 보이면 내가 해야 해!"

정말 오랜 꿈이었다. 벌써 30년이 넘어간다. 초등학교 시절 몸담고 있던 축구부가 해체되면서 타의에 의해 꿈을 접은지가 어느새 그렇게 되었다.

마법이다. 12시가 지나면 신데렐라의 마법이 끝나듯 김국진의 꿈도 그가 그라운드를 떠나는 그 순간 끝나게 된다. 언제 다시 꿀 수 있을 지 모르는 꿈이다. 언제 다시 기회가 주어질 지 모르는 순간이다. 과연 몸이 아프고 고통스럽다고 쉽게 그라운드를 등질 수 있을까?

누군들 안 그럴까? 마지막이라면, 그래서 다음이 없을 것을 안다면 그만큼 그 시간이 소중하고 간절할 것이다. 그 잠시의 시간을 위해 어떤 댓가라도 치를 수 있을 것 같을 것이다. 잠깐의 고통이야. 그런 것이야 경기가 끝나고 며칠 고생하면 말면 그만이다.

해맑은 웃음에 그 답이 있다. 어린아이가 된 듯 행복한 그 즐거운 웃음에 그 해답이 있다. 그리고 그랬기에 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골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확실히 누구도 예상을 못했다. 김국진이 달려들어가는 공간에 상대편 수비수가 아무도 없었다. 김국진이 공을 잡았을 때도 설마 싶었는지 그다지 적극적인 모션이 없었다. 골은 거의 운이었다. 아마 조금만 비껴나갔어도 골대 밖으로 나갔으리라. 운이 좋아 골대를 맞고 골대 안으로 굴러들어감으로써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경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골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부러웠다. 질투가 났다. 어디 김국진 뿐일까? 수의사의 꿈을 이룬 것 같다고 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했다. 즐겁고 행복했다고 했다. 나이 50이 넘어서 그의 웃음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럽기까지 했다. 바로 이경규였다.

과학자가 되어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꿈은 로봇의 팔을 움직이는 기판을 직접 납땜해서 수리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이룰 수 있었다. 애써 몸을 굽혀 잘 닿지도 않는 로봇에게 악수를 청하는 김태원의 모습이야 말로 어린시절 꾸었던 바로 그 순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간에 아마 이와 같은 일을 하고 계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등을 보고 아버지와 같은 경찰을 꿈꾸었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민원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윤석의 모습은 또 얼마나 정겹고 따뜻한가. 그도 어느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전혀 기대밖의 고되고 분주한 만화방 주인의 삶에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윤형빈이나, 그 와중에도 왜 변호사가 되고 싶아고 했는지 모르겠다며 멋진 민완변호사의 포스를 보여주고 있는 비덩 이정진이나. 그렇더라도 잠시나마 꿈을 이루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아마 평생 꿈꾸며 살지 않나 싶어요."

누구나 사람은 꿈을 꾼다. 그 꿈을 이루려 살아간다. 잠시나마 오랜 꿈을 꾸어 볼 수 있었다. 마치 마법처럼 오랜 꿈속의 시간을 현실에서 누려볼 수 있었다. 멤버들의 행복한 웃음만큼이나. 시간을 거꾸로 거스른 듯 꿈처럼 그들의 시간도 돌아간 것 같다.

배가 아프도록 질투가 나고 부러웠다. 내게도 누군가 그런 마법을 걸어주었다면. 나 또한 그런 꿈을 꾸어 볼 수 있다면. 바로 그래서 <남자의 자격>을 보는 것일 테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다음주 예고가 심상치 않다. 임팩트가 본편 이상이다.

"암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다는 말이 그런 게 아니겠는가..."

기사로 이미 보았지만 설마 진짜 암이었을 줄이야. 더구나 그 김태원이. 아주 가벼운 초기암이라고는 하지만 암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눈물을 훔치는 아내 이현주씨, 괴로운 표정으로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이경규, 김국진, 이윤석의 남자의 자격 멤버들. 아마 예능역사상 유례가 없는 리얼암예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나 암은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늘 보던 얼굴 늘 듣던 이름에.

그러나 예능일 것을 믿고 기대하고 본다. 그 끝은 희극이리라. 웃음이리라. 충격과 감동의 끝에 늘 그랬듯 밝은 웃음이 있으리라.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일주일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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