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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18 07:32

남자의 자격 "엄마 생각 난다. 우리 잘하자!"

꿈과 희망, 현재를 살아가는 힘에 대해서...

 
꿈과 욕심, 희망과 미련, 어쩌면 비슷한 의미를 갖는 단어들일 것이다. 무언가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무언가 크게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르다. 안다. 이들 단어들이 전혀 다른 뜻을 갖는다는 것을. 그것을 <남자의 자격 - 청춘합창단>을 보면서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너무 먼 앞날만을 생각하다 보면 삶이 불행해질 수 있다. 지금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이 말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고 보면 역시 <남자의 자격 - 남자, 그리고 아마추어>편에서도 김태원은 아마추어밴드대회에 출전한 멤버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4분을 위해 1년을 희생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4분으로 인해 1년이 행복했던 거야."

이보다 더 '꿈'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말은 없지 않을까?

꿈은 그 자체로써 행복하다. 어릴적 장래꿈을 말하라 할 때 그렇지 않던가? 되고 못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되고 싶다고 하는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꿈을 말할 때 아이의 표정은 가장 빛이 난다.

반대로 욕심이란 무언가 결과를 바라고 나오는 것이다. 성적을 올려야겠다. 등수가 올랐으면 좋겠다. 무언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어 그것을 가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아이들은 시무룩해하고 때로 화내고 원망까지 가지게 된다. 이루어지면 행복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행한 것. 그래서 욕심이다. 욕심이 나쁜 것은 항상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때문이다.

희망 역시 마찬가지다. 잘 될 것이다. 분명 좋아질 것이다. 지금은 어렵지만 그같은 기대로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낸다. 힘들고 어려운 지금조차 희망이 있기에 웃으며 넘길 수 있다. 그러나 그같은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불행하다면, 그같은 기대가 있어 오히려 지금을 견디기 힘들다면 그것을 미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도박으로 패가망신하는 이유다. 현실이 자꾸 기대를 배신하니 그 기대만 바라고 현재를 포기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다. 꿈이란 현재다. 희망이란 지금이다. 꿈을 꿈으로써 지금이 즐겁고, 희망을 갖기에 지금이 행복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토록 바라고 기대하던 그 날이 오리라. 지금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지금에 충실하다 보면 반드시 바라고 기대한 것들이 이루어지리라. 그 자체로써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써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꿈을 꾸어 행복하고 희망이 있기에 행복하다. 그런 뜻인 것이다.

아마 성공한 사업가로 유명호텔의 CEO로 여전히 현업에서 근무하고 있다던 권대욱(61세)씨가 말하던 이제부터는 나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한 말도 그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등장에서 그야말로 블록버스터급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벌쟁이 벌포츠 김성록(54세)씨가 말한 자유롭고 싶다는 말도 마찬가지 뜻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지금의 자기 자신. 그것을 오롯이 느끼는 것.

CEO란 어떻게든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다. 주주를 위해서. 직원들을 위해서. 혹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그 결과를 내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고, 그 결과가 나오고 나오지 않음으로 인해 실망하고 분노하고 원망하며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살아야 한다. 오롯이 자기가 하고 싶어서 그 자체가 즐거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명예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그러나 그 순간에조차 김성록씨는 방송에 나온 자신을 알아본 지인들의 반응을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이 너무 많았다. 긍정적인 생각과 더불어 부정적인 생각이 그를 움츠러들게 했을 것이다. 그런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자유. 내려놓는다는 게 또 그런 뜻이리라. 그 모든 것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단지 음악을 사랑하는 한 개인으로써 자신이 바라고 기대하는 바를 쫓는다.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음에도 떨어져도 좋다며 오디션장에 나온 박종숙(55세)씨의 소녀같은 모습도 바로 그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었을 게다. 20대 아직 꽃다운 시절에 하필이면 이화여대 앞에서 회수권을 팔다가 처음으로 음악이라는 것에 꿈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겨우 갖게 된 어머니합창단은 IMF로 해산되어 버리고 이제까지 일만 하며 살았다고 했었다. 그때 단복이라고 나누어준 푸른 드레스가 너무 입고 싶어 비슷한 것을 사서 입고 산에도 올랐었는데 딸이 그 옷을 입고 노래부르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다가도 어느새 맑게 간절하게 부르던 그 모습이 얼마나 모순되며 그러나 일관된가. 그만큼 간절하며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노래하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

<남자의 자격 - 청춘합창단>을 보면서 내내 흐뭇한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다. 분명 사연 가운데는 가슴아픈 사연들도 많다. 슬프고 애닲은 사연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오디션장에 선 도전자들의 모습은 항상 밝고 맑고 당당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란 보이지 않았다. 바람도 있고 기대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자체로써 만족해 하는 모습이었다. 단지 바라고 기대할 뿐 그렇다고 그에 구애되어 얽매이지는 않는다. 전에 말한 사무사(思無邪) 생각함에 삿됨이 없다.

과연 75세가 되어서도 오히려 소녀의 목소리로 돌아온 양송자씨의 회춘이 채식 때문만이었을까? 여전히 설레어하며, 그리고 떨려하며, 오디션이 끝나고 나와서는 딸과 함께 소녀처럼 수다를 떤다. 심사위원들이 기립을 하고 앵콜을 요청하더라. 무용담을 말하는 양송자씨의 모습은 소녀 그대로였다. 꿈을 꿈으로써 빛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무려 43년이나 성악을 전공하고서도 남편의 강요로 인해 음악의 꿈을 접어야 했던 허옥(63)씨, 거꾸로 형제가 7남매나 되어 음악공부는 꿈도 꾸지 못하다가 남편의 후원으로 50세의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더라는 박영숙(57세)씨, 고3인 아들과 치매를 앓고 있는 친정어머니와 힘겨운 삶에 지쳐하다가도 어느새 오디션장을 떠나며 기쁘다 행복했다 당당히 말하던 박지영(57세)... 아마 박지영씨의 말이 정답일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할 것이다.

이경규의 연륜이 여기서 빛을 발했다. 너무나 고마웠다.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노래해야지 좋은 소리가 나오고 합격할 수 있습니다. 씩씩하게 즐겁게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고단한 삶에 지쳐 눈물을 보이는 박지영씨에게 이경규는 노래를 부르는 순간 만큼은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부르라 말한다. 이제껏 씩씩하게 힘겨운 삶을 헤쳐왔듯 노래도 그렇게 씩씩하게 즐겁게 부르라고. 바로 이번 <청춘합창단> 미션의 주제가 아닐까? 힘겨운 이들에게는 힘을, 꿈을 잃은 이들에게는 꿈을, 희망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희망을. 잃어버린 소중한 무언가를 위하여.

정말이지 무슨 <청춘합창단>만의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 것인지, 어쩌면 그 서툰 노래들이 사람을 울리는가 모르겠다. 박지영씨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박종숙씨의 노래를 들으면서는 애써 묻어두었던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오르며 잠시 눈을 감고 말았다. 오히려 절망과 좌절이 더 많았을 그분의 인생에서 그 짧은 순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나 감기걸린 목소리로 힘겹게 부르는 노래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남겨 있었다. 차마 감당할 수 없는. 한 10년 쯤 지나 인생을 더 깊이 알게 되었을 때 다시 꺼내 들으면 조금은 알 수 있게 될까?

작년 아들을 잃었다는 장명천(56세), 김영희(54세) 부부의 노래는 이제까지 들어본 가운데 최고의 듀엣이었다. 한 순간도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마치 노래로써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품을 보듬는 듯. 아들을 잃은 슬픔마저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극복하며 함께 나아가는 그들에게 "젊은 연인들"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마치 그들의 인생을 담은 듯.

6년간이나 암으로 투병중인 자신을 보살펴준 남편을 위해 아내가 보내준 편지와 그 편지에 화답하는 남편 김동일(62세)씨의 노래도 바로 그 순간 쓰여진 노래인듯 너무나 어울렸다. 홀로 딸 여섯을 기르느라 노래대회에도 한 번 나가보지 못했다던 임태순(59세)에게도 이미자씨의 "여자의 일생"은 얼마나 평생에 위로가 되었을까? 바로 그런 게 음악의 힘이었을 것이다. 말로 다 하지 못하는 말. 말로써 다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들. 그것이 그렇게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 삶이 녹아든 진정이. 어쩌면 그들 나이 때 쯤 되면 자기를 위한 노래가 하나씩은 있다. 필자 역시 그때가 되면 나만을 위한 노래를 가질 수 있을까?

다만 확실히 차이는 있다. 젊어서의 꿈은 오롯한 자기만의 꿈이다. 어려서의 꿈은 오로지 자기 혼자서만의 꿈이다. 그러나 어느새 나이가 들고 인생을 되돌아 볼 때가 되었을 때는 바로 가족과 함께다. 친구와 함께이고 동료와 함께다. 심지어 주주와도 함께다.

가족들과 함께였다. 당사자가 아닌 가족이 편지를 써서 신청해 왔고, 오디션장에도 가족이 함께 하고 있었다. 평생 한 번 안아준 적 없다는 아들로부터 안겨본 정해남(59세)는 행복하셨을까? 아내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뒤늦게나마 작은 장사를 하며 대학까지 보내주고 오디션장도 함께 찾아준 박영숙씨의 남편도 역시. 진심으로 자기일처럼 기뻐해주는 모습에서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가. 덕이 있어 외롭지 않다는 것은 사랑하기에 외롭지 않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하기는 젊어서는 가족이 곧 그분들의 꿈이고 희망이었을 것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렇지 않으셨던가. 우리의 아버지들도 그러하셨다.

방송을 보고 있는데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 생각난다. 우리 잘하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해도 죄스럽기만 한 것을.

이제서야 어머니를 위해 작은 기회나마 마련해준 임태순씨의 딸이 흘리는 눈물이 그것일 것이다. 박종숙씨의 푸른 드레스 입고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던 딸도 아마 편지를 쓰는 동안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죄스러움에. 그리고 감사함에. 56세 김삼순씨의 당당하면서 해맑은 모습은 딸을 각각 소방관으로, 경찰관으로, 이제는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간호사로 훌륭히 길러낸 데 대한 자신감 아니었을까? 단지 가족이 더 이상 그 손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이제 자신의 꿈을 쫓을 수 있게 된 것일 뿐. 그래서 그분들의 꿈은 아름다우면서도 가슴을 에이는 것이다.

참 마음이 무겁다. 그러면서도 가뿐하다.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의 효과일 것이다. 그렇게 죄스러운데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니 조금은 맑아진 느낌이다. 정말이지 비 온 뒤 개천가를 거니는 마냥 시원하고 깨끗하다. 프로그램의 힘이다.

PD에 감탄한다. 조금은 오버해서 감동이나 재미를 뽑아낼 수 있었을 터임에도. 이계인씨의 경우는 한 바탕 왁자하게 분위기를 환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함께 찾아온 가족까지 놓치지 않고 그러나 과장없이 담담하게 보여주는 그 세심함이 더욱 감동을 더했다. 오래된 홈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나의 이야기다.

솔직히 걱정이다. 이제까지 그리 많은 감동을 주신 분들 가운데서도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분들이 나올 텐데 그건 또 어찌하는가? 너무 이입해 버린 탓에 필자 자신도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모두를 합격시켜드렸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겠고.

그래서 생각한다. <남자의 자격>에서 "청춘합창단"을 상설화하면 어떨까? 어차피 나이도 있고 일도 있기에 매일같이 모여 연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모여서 연습도 하고 대화도 나눌 기회가 주어진다면. 오디션을 통해 지속적으로 멤버를 충원해서 그분들이 다시금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다. 가끔 <남자의 자격> 미션으로 그분들과 외로운 곳들을 찾아가 공연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 것 같다.

예능이라기에는 너무 무거운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인생이란 원래 무거운 것이니까. 그 무게에 눌리며 눈물을 흘리고, 그 무게를 받아들이며 웃게 된다. 나도 저렇거니.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거니. 어느새 예능마저 넘어서버린 예능일 것이다. 삶 그 자체로 웃기고 울리고 감동시킨다. 예능이란 결국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니. 사람이 가장 아름답고 재미있다. 그 근본일 것이다.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한참 울고난 멍한 머리로 바람내음이 새롭게 스며들고 있다. 다시 한 번 제작진에 감탄하며 감사한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꿈을 쫓으며. 순수를 맡으며.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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