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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영화
  • 입력 2014.04.14 08:32

[리뷰] '한공주', 영화제의 호평은 결코 광고 문구가 아니었다

성폭행 당한 학생의 살아남으려는 노력과 그를 막고 외면하는 어른들에 시선

[스타데일리뉴스=임동현 기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한 여학생의 얼굴, 그리고 적혀있는 한 줄의 글.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영화 '한공주'의 포스터다. 예기치 않게 벌어진 뜻밖의 사건. 그로 인해 살던 곳에서 나가 다른 학교에 다녀야했던 '한공주'라는 학생에게 벌어진 이야기를 영화는 그려내고 있다.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을 보인 뒤 로테르담영화제 등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큰 화제가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청소년 성폭행'을 다루고 있지만 성폭행 사건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딛고 일어나려는 여학생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희망을 깨뜨리는 어른들의 추악함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영화다.

▲ 영화 '한공주' 포스터(무비꼴라쥬 제공)

한공주(천우희 분)는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니던 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로 가야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공주지만 마음껏 부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런 공주 앞에 은희(정인선 분)가 친구가 되기 위해 다가가고 은희와 친구들이 함께 있는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공주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그리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수영을 배운다.

'한공주'는 일단 사건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그 사건을 치유하려는 소녀의 모습에 촛점을 잡는다. 사건을 부각시키고 조금은 자극적인 요소를 가미하던 기존 영화와 달리 '한공주'는 피해를 입었던 소녀가 그것을 스스로 극복해가려는 과정을 보면서 살아가는 노력을 보여주려 한다.

▲ '한공주'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겪고 살아남으려는 여고생의 모습을 그린다(무비꼴라쥬 제공)

그러나 영화는 그 행복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다. 공주가 다니던 학교에 전 학교에서 있었던 가해자의 부모들이 찾아오고 그 순간 공주는 다시 악몽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한순간에 행복이 사라지고 다시 끔찍한 시간이 찾아오는 그 순간에서 영화는 '열린 결말'로 한공주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공주는 살아남기 위해 수영을 배운다. 수영은 물 속에서 쉬지 않고 움직여야하는 운동이다. 그는 어른들의 욕심, 그리고 우리들의 외면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위해 쉬지 않고 움직여야한다. 영화에서 수영은 말 그대로 한공주의 생존을 보여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사건의 피해, 진범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정작 그 피해를 당했던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았다. 도리어 우리는 그들의 피해를 생각하지 않고 사건을 덮으며 쉬쉬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한공주'는 그 현실에 대해 분노하거나 반대하는 목소리를 노골적으로 내지 않는다. 그저 보여준다. 우리가 지금 이렇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 공주(천우희 분)는 친구 은희(정인선 분)를 만나면서 조금씩 행복을 되찾지만 또다시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사건을 맞이한다(무비꼴라쥬 제공)

'한공주'는 우리에게 분노와 부끄러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현실에 분노하지만 그렇게 만든 책임이 우리에게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이수진이라는 새로운 감독, 천우희라는 새로운 배우를 만난 것도 분명 행운이지만 그보다도 '한공주'가 준 희망은 사건이 아닌 사람의 시각에 카메라를 맞춘 영화의 용기에 있다.

적어도 국제영화제가 준 격찬은 단순한 광고 문구가 아니다. 한국영화가 점점 매너리즘에 빠져가고 있는 시점에서 작은 영화에서 이런 수작이 나온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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