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영화
  • 입력 2014.04.10 11:30

[리뷰] '방황하는 칼날', 심각한 질문으로 주류영화의 매너리즘을 날렸다

이성민의 '조용한 열연'이 영화 살려, 늘어지는 후반부는 큰 아쉬움

[스타데일리뉴스=임동현 기자] 내 딸이 죽었다. 하나밖에 없는 내 딸이 나쁜 아이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참혹하게 죽었다. 경찰이 수사를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좀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경찰은 그저 "기다려보라"는 말만 할 뿐이다.

내 딸을 죽인 아이들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고 오히려 그것을 찍은 동영상을 보며 즐기기까지 한다. 잡힌다 해도 이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소년원이나 감옥에서 몇 년만 살다 나오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 영화 '방황하는 칼날' 포스터(에코필름 제공)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극단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딸을 죽인 아이들을 살해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행동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그 아버지가 그렇게 '살인자'로 바뀌는 동안 공권력은, 법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연일 뉴스와 신문에 올라오는 성폭행 사건들을 접하면서 분노를 느낄 때가 많은 이 시기에 묘하게도 '방황하는 칼날'이 개봉을 했다. 알려지다시피 이 영화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잘 알려진 일본 미스터리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이런 원망(?)이 들기도 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을 왜 하필 우리 주변의 사건이 아닌 일본 소설을 통해 하는가?'라는 생각 말이다.

딸을 잃은 아버지 상현(정재영 분)은 범인의 정보를 담은 익명의 문자 한 통을 받고 무조건 그 문자 속 주소를 찾아가 딸의 동영상을 보는 소년을 본 순간 바로 이성을 잃고 그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이 한 또 다른 아이를 알게 된 상현은 그저 이름과 연락처 하나만 가지고 그를 죽이겠다고 눈이 내리는 강원도까지 간다.

▲ 자신의 딸을 죽인 아이를 죽이기 위해 강원도로 온 상현(정재영 분) (에코필름 제공)

상현 딸의 살인사건을 담당한 억관(이성민 분)은 지지부진한 수사로 골머리를 앓던 중 상현의 살해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상현을 뒤쫓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상현에 대한 연민이 남아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고 그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잡아야하는 현실에서 억관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범인을 잡아야할 뿐이다.

'방황하는 칼날'은 이 두 남자와 상현이 죽이려하는 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이게 옳다고 생각하는가?', '저들의 심정에 공감하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웃음기도 없고,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에 다소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단점으로 지적하려해도 영화가 던지는 절박한 질문에 말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영화는 다행히도 최근 주류영화들이 보여주고 있는 매너리즘이 없다. 즉, 관객의 구미를 맞추려는 억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직함이 보인다. 영화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던 이정호 감독은 두 번째 연출작에서 비로소 자신의 대표작을 만들어낸 모습이다.

▲ '방황하는 칼날'을 이끈 일등 공신인 억관 역의 이성민(에코필름 제공)

정재영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성민이 있었기에 빛이 났다. 우리는 흔히 '열연'이라고 하면 뭔가 폭발하는 모습, 열정적으로 대사를 하고 행동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이성민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열연을 한다.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 가해자가 된 피해자를 잡아야한다는 갈등 등이 그의 표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모든 이야기를 잡는다. 조용하지만 그는 분명 열연을 했다. 이 이성민의 '조용한 열연'만으로도 '방황하는 칼날'은 충분히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전반부의 흐름에 비해 후반부가 다소 늘어난 전개를 보였다는 점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황하는 칼날'은 최근 매너리즘으로 얼룩진 주류영화 중에서 나름대로 장점을 잘 갖춘 영화라 평가하고 싶다.

▲ '방황하는 칼날'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상황을 보여주며 공권력과 법의 문제와 복수의 정당성을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에코필름 제공)

사족 : 상현이 마침내 딸을 죽인 주범인 조두식과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문제는 상현이 조두식이라는 이름만 알지 얼굴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 때 조두식의 표정은 살인자의 표정이 아닌 뭔가 겁먹은 듯한 고등학생의 모습이다. 카메라는 그 조두식의 표정을 보여주며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 모습을 보여준 배우의 이름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주승이라는 배우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