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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4.10 08:36

[김윤석의 드라마톡] 골든크로스 1회 "멀티비전 속 일상과 방관자의 사회학"

양심을 지키며 살기가 고단한 이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항상 생각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드라마는 많다.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비난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그러나 정작 바뀌는 것은 거의 없다. 누군가 멀티비전 속 사람들의 모습을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다. 내 일이 아니다. 결국은 남의 일이다.

양심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모두들 말한다. 정직하게 살아라. 올바로 살아라.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

"나 빼고!"

검사가 된 아들 강도윤(김강우 분)이 아버지를 압박한다. 정직이 무에 그리 대단하냐고. 돈도 안되는 정직이 무슨 소용이냐고. 능력을 보여달라고. 아들이 바라는 아버지란 양심을 지키며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가 아닌 돈을 잘 벌어오는 아버지였다. 정해진 급여 이외의 자기의 능력을 넘어선 돈을 가져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법을 공부했으니 모르지 않을 것이다.

▲ KBS 제공

취직은 힘들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려 해도 경쟁률이 너무 높아 자신이 없어진다. 그런데 누군가 접근해온다. 연예인을 시켜주겠다. 꿈에 부푼다. 당장이라도 연예인으로 성공해서 돈때문에 고생하는 가족들에게 무어라도 해주고 싶다. 소속사에서 보내준 여행에서, 소속사에서 잡아준 호텔방에 처음 보는 중년남자가 들어왔을 때 바로 거부하지 못한 것은 허튼 꿈에 대한 미련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응원해주던 가족의 웃는 모습이 밟혀서였을까.

오로지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며 살아왔었다. 열심히 정직하게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그저 성실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인정도 받고 있었다. 부하직원들로부터는 존경받고 상사들로부터는 신뢰를 받는다. 그렇게 정년퇴임하는 그날까지 아무일없이 지내면 되는 것이구나 생각했었다. 그것이 자신의 훈장이라고. 그것을 가족들이 누구보다 먼저 알아줄 것이라고. 더구나 그 어렵다는 검사까지 된 아들은 자신의 자랑이었다. 더욱 열심히 정직하게 부끄럼없이 살아야겠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 버렸다.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은행은 망하고 은행을 지키려던 자신은 전과자가 되어 있었다. 국가의 명령을 거부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무자비한 폭력과 전과자라는 낙인이었다. 은행장의 지시를 거부한다면 자신은 다시 실직자로 돌아갈 것이다. 그 무력하고 절망스럽던 좌절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아내는 돈을 필요로 하고, 아들까지 나서서 돈을 가져오기를 요구한다. 선택은 많지 않다. 무능하고 한심한 가장으로 가족으로부터 경멸받기를 바라는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아파트담보대출금까지 훔쳐내어 도망친 동생을 아직도 끔찍히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다.

차라리 폼나게 잘먹고 잘살겠다고 죽어라 공부해서 검사까지 되었다. 사회의 법과 정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여야 할 검사가 하는 말이다. 자본주의 시대다. 사명감만으로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일 것이다. 아무리 힘없고 가난한 그늘진 인생이라도 열심히 공부만 잘한다면 남부럽지 않은 부와 권력과 명예를 손에 거머쥘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 서이레(이시영 분)는 고위공무원인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두고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었다. 굳이 검사가 아니더라도 그녀는 충분히 안락한 삶을 보장받고 있었다.

누군가 선물로 보낸 홍콩여행과 어느 젊은 여자와의 하룻밤에 서동하(정보석 분)는 누구보다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서동하와 원하지 안는 하룻밤을 보내야 했던 강하윤(서민지 분)은 넋을 놓은 채 홍콩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서동하가 경제관료로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그로 인해 직장을 잃어야 했던 강주완(이대연 분)은 감옥에서 절망을 곱씹고 있었다. 서동하를 향한 마이클 장(엄기준 분)의 계획에 강하윤은 단지 도구로서 이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자신이 모르는 사이 모든 것이 결정되고 강주완은 그저 은행장에게 불려가 협박이라는 통보를 받고 있을 뿐이었다. 선택은 없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강주완을 가장 몰아붙이는 것은 별 것 아닌 그의 가족들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그러나 정작 강주완을 부정으로 몰아간 것은 그의 가족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악할 것도 없고 대단하게 죄를 지으며 살아온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그의 가족들이었던 것이다. 단지 돈이었다. 돈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이 가족들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아주 잠시 아주 조금만 양심을 속이기를 바란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무능이고 한심스러운 것이다. 아버지를 경멸한다. 아버지를 걱정하던 딸은 스폰서를 두고 그로부터 돈을 받아쓰는 신세가 된다. 단지 취직해서 가족을 위해 무어라도 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도입부에서 다양한 군상들을 멀티비전으로 처리하고 그것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부조리한 행복과 안타까운 절규와 평범한 일상들이 교차하며 누군가의 눈앞에 펼쳐진다. 액자 너머다. 화면 너머의 일이다. 그렇게 철저히 남의 일이 되고 자기 일이 아니게 된다. 분노하고 비판도 해 보지만 그러나 정작 자신의 일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서동하에게 강주완이 그랬고, 마이클 장에게 강하윤이 그랬다. 아들 강도윤에게 아버지 강주완이 그랬을 것이다. 강하윤의 젊음을 유린하고 서동하는 딸 서이레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행복을 넘어 차라리 해맑았다.

자기 이외의 사람들은 단지 대상이다. 자기와 직접 관계가 없으면 그저 대상에 불과할 뿐이다. 손에 쥐어지는 것,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 당장 자신의 눈앞에 보이면 분노하다가도 지나고 나면 딱 거기서 멈추고 만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뉴스는 뉴스일 뿐이다. 지나가면 잊혀진다. 현실은 현실이다. 아무리 현실을 비판하고 고발해도 자신의 현실은 별개다. 미디어의 시대, 정작 분노와 정의감조차 현실처럼 소비되고 만다.

남의 일이었다. 자기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여동생은 스폰서를 만나고 있었고, 아버지는 범죄자가 되었다. 뉴스로 보도되고 있었다. 현실같지 않은 일들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평범한 일상들이 평범하지 않은 비일상이 되었다. 아직 닥치기 전의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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