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14 08:47

시티헌터 "대기업과 산업재해,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다!"

불의한 시대에 사람들은 정의로운 영웅을 바란다!

 
"내 저것들에게 돈 줄 생각하면 잠도 안 와!"

아마 천재만(최정우 분)의 이 말을 달리 풀어 옮겨 보면 이렇게도 쓸 수 있지 않을까?

"남의 돈 먹기가 쉽지 않다."

즉 정당하게 일을 해서 받는 댓가라도 그것은 남의 돈이라는 것이다. 내가 일을 해서 생산에 기여한 댓가로 받는 당당한 내 몫이 아니라 사주의 개인재산 가운데 받게 되는 돈인 것이다.

한국의 노동현실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단어일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 한국에서 기업이란 사기업이라기보다는 준국가기관에 가까우니. 아무것도 없는 폐허 위에서 지금의 경제성장을 이루기까지 기업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수였기에 지금도 사람들은 막연히 기업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과 동일시하여 생각한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양보해야 한다.

사주의 사유재산에서 임금을 받고, 그러면서 국가를 위한 산업역군으로써 사명과 책임을 요구받고. 일방적으로 사주에 의해 먹고 사는데, 더구나 국가를 위한 일인데 그런 정도는 희생하고 양보해야 하지 않겠는가. 때로 노동자의 권리주장에 대해 도덕적 단죄가 가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다.

어째서 산재피해자 앞에서도 천재만은 당당할 수 있는가? 말 그대로다. 산업재해 판정이 쉬우면 그만큼 기업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피해자에 대해 보상하는데 많은 비용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은 곧 기업의 이윤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말했다. 많은 한국인에게 기업의 이윤이 감소하는 것은 국가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과 같게 여겨진다고. 더구나 노동자란 대부분 사회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고 보면.

화이트칼라가 연 1억을 벌면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블루칼라가 연 5천만원을 벌면 귀족이 되어 질시의 대상이 된다. 아직도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렇게 된다?"

공부를 열심히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갔다면 더 좋은 직장을 얻었겠지. 그렇다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역시 천재만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는,

"알면서 일을 한 거잖아요?"

싫으면 더 노력하던가. 그런 일을 하기 싫었으면 학창시절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면 되었을 것이다. 아니더라도 다른 일이라도 열심히 해서 노력해서 돈을 벌었으면 굳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 하기로 한 것이다. 자기 책임이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 의미없는 이유일 것이다.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 약자의 이유는 바로 자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자기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지 사회가 나서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말했듯 노동자가 받는 돈은 사주의 상유재산이고, 노동자가 누리는 이익은 기업의 이익으로써 국가의 이익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이런 부분에서 이진표(김상중 분)가 5인회에 대해 복수를 결심하게 된 28년 전의 그 사건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텐데. 국가를 위해 북으로 보내졌고, 다시 국가를 위해 죽임을 당했다. 마치 도구처럼 쓰여지다 쓸모가 다하자 버려졌다. 그나마 산재대책위원장이라는 위치에 있으니 최명숙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다른 더 많은 희생자들을 더 값싸게 버리기 위해서. 마치 천재만이 입수해 불태워버린 비밀문건처럼 말이다.

바로 이런 부분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면 한 차원 높은 드라마로 완성될 수 있었을 텐데. 자신과 특수부대원들을 도구로 취급하고 버려버린 그 행태와 여전히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단지 수단으로 여기고 냉혹하게 버리는 그 모습에서. 장차 천재만에 대한 복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런 모습들이 나올까?

하지만 이런 부분은 또 우리 사회에서 금기와 같은 부분이라. 사실 조금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설마 이런 부분까지 건드리는가? 한국사회의 각 부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대기업과 관련한 부분이기에 조금 놀라기도 했었다. 그리고 주제가 너무 무겁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국가주의와 개인을 수단으로 여기는 풍조에 대해서.

그래서일 것이다. <시티헌터>에서도 내내 보여진 것이 악은 단지 개인이 악해서다. 개인이 나빠서 악을 저지르는 것이지 그것이 어떤 구조적인 문제이거나 하지는 않다. 철저히 5인회 개인의 악으로써만.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면 시청자 자신도 공범일 수 있다. 상업방송에서 시청자에게 죄의식을 강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그보다는 악인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은 정의롭다는 만족감을 주는 쪽이 옳다. 다만 그럼에도 천재만의 그러한 모습이 단지 천재만 개인의 악에서 비롯된 것이겠는가?

아무튼 그럼에도 깨알같았다. 주제는 무거웠는데, 그러나 그 주제를 받쳐주는 시티헌터 이윤성(이민호 분)과 김나나(박민영 분), 그리고 배식중(김상호 분)이 보여주는 일상이란 그냥 한없이 가볍고 유쾌했다. 이윤성의 어머니 이경희(김미숙 분)가 백혈병으로 입원해 있는데도 오히려 따뜻한 온기마저 흐른다. 역시 주제 자체가 너무 무겁고 심각한 탓일까?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산업재해라고 하는 거대서사와 그리고 이윤성 주위의 각자가 보여주는 개인의 소소한 일상들. 더불어 김영주(이준혁 분)의 사적인 집요한 추적까지. 김영주가 오히려 시티헌터 수사에서 배제됨으로써 그의 추적이 철저히 개인적인 이유로 이윤성을 쫓고 있는 탓에 천재만과의 사회적인 거대이슈가 김영주의 수사로 가려지지 않는다. 각자가 별개로 움직이는 느낌일까?

이윤성은 공공공의 정의를 위해 사적으로 천재만을 응징하려 들고, 김영주는 사적인 정의를 위해 공적으로 이윤성을 단죄하려 들고, 그리고 순수한 사적 관계의 개인들. 단계적이고 점층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조 속에 이야기는 중심을 잃지 않고 전혀 산만하지 않게 밀도있게 진행된다. 정말이지 초반의 어색함에 비추어 촬영일정에 쫓기고 있을 텐데도 이야기 구조 자체는 오히려 더 탄탄해지는 느낌이다.

이제 슬슬 이윤성의 정체가 드러날 때도 되었다. 김나나가 가져 온 이윤성과의 사진액자가 깨진 것은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이윤성의 거짓된 일상을 부수기 위해서는 이윤성은 한국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야 한다. 김나나는 그런 이윤성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그때 김영주는 이윤성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이윤성이 떠나는 이유를 위해서도. 그리고 이윤성으로 하여금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도. 더구나 이후 극적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서도 그렇다. 클라이막스에는 클라이막스에 어울리는 긴장이 필요하다. 김영주는 이윤성의 훌륭한 파트너다.

참 쓰기가 어려웠다.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상당히 첨예한 부분이라. 최대한 원만하게 드라마 리뷰에 어울리도록 수위를 조절하기는 했는데 모르겠다. 하지만 드라마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주제를 건드리고 있다. 아마 드라마의 시청율이 높게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예민한 부분들을 건드리고 있다. 비록 피상적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어쨌든.

상당히 긴장하며 보았다. 그러면서 상상도 해 보게 되었다. 만일 <시티헌터> 시즌2가 만들어져 더 예민한 보분을 더 첨예하게 건드릴 수 있으면 어떨까? 그만큼 사람들은 불의에 지쳐 있는 것이다. 시원한 정의를 바란다. 눅눅한 현실과 시원한 드라마. 그것이 아니었을까? 의미있었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