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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13 09:20

무사 백동수 "무술의 고증과 차별화가 아쉽다."

여운과 백동수, 그 운명의 갈림길 앞에서...

 
여운(박건태 분)과 백동수(여진구 분)가 한 번은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말했듯 이들은 운명의 쌍동이와도 같은 존재라. 그들은 인간의 운명이 엇갈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버지의 업을 짊어지고 태어난 백동수와 자신의 업으로 아버지를 죽인 여운. 그들은 그렇게 만나 친구가 된다.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제 10대 초반. 흑사초롱에 들어와 훈련을 받은 것도 그리 오래지 않았다. 어떤 다른 배신을 막기 위한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운을 다른 확실한 정보도 없이 흑사모(박준규 분)의 패거리에 집어넣다니. 그것도 명확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죽은 여운의 아버지 여초상(이계인 분)의 무덤을 찾는 사람을 따라가란다. 그냥 한 마디로 여운과 백동수를 만나게 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를 의식하고 충돌하기 시작한다. 특히 백동수가 여운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기 시작한 것이 싸움으로 발전한다. 그러면서 어느새 서로를 의식하고 우정을 느기게 되고.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진다 하지 않던가. 더구나 하필 유지선(남지현 분)과의 인연까지 얽혀 있어서. 그리고 유지선은 장차 사도세자와 인연이 있을 예정이다. 여운은 말했다시피 흑사초롱과 연관이 있다. 운명은 그렇게 서로를 얽어매고 지나간다.

어린 시절의 인연이야 한국무협의 기본중의 기본. 친구도 사귀고, 장래의 연인도 만난다. 때로 친구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적이기도 하다. 다만 황진기(성지루 분)와 흑사초롱의 지주(윤지민 분)와의 은밀한 만남은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더한다. 순탄한 관계는 아니라는 뜻이리라. 우연찮게 마주치게 된 유지선 역시 그리 순탄할 운명은 아니다. 어려서의 인연이 서로 운명이라는 씨줄과 날줄로 서로 얽히고. 여운은 끝내 적이 되어야 할 터다. 그리고 여운은 백동수에게 끝내 넘어서야 할 라이벌이며 열등감의 대상이다.

참으로 전형적인 전개였다. 백동수가 사도세자를 구한 것이나, 우연찮게 사소한 이유로 오랜 숙원이었던 북벌지계를 찾는데 도움을 준다거나, 그것을 여운이 바로 옆에서 듣고 있다거나, 하기는 그 전에 이미 홍대주(이원종 분)의 하수인들이 그것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또한 역사를 아니 이후 사도세자의 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도 안다. 딱 그 만큼의 전개였을가?

100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 딸 유지선을 사도세자에게 맡기려는 북벌지계의 계승자인 유소강(김응수 분)의 충정은 또 얼마나 낭만적인가. 아버지의 약속을,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한 약속을, 그러나 후손은 한 번 얼굴도 보지 못한 상대임에도 따라야 한다. 개인이란 수단이었으므로. 소유물에 불과했다. 보기에는 멋지지만 정작 당사자인 유지선의 입장은 어떻겠는가.

그에 비하면 목숨을 건 훈련을 받는 백동수와 여운의 모습은 현대의 특수부대 훈련을 연상시킨다. 희생을 아랑곳 않고 정예를 길러낸다는 점에서 실미도와도 닮아 있을 것이다. 효율과 집단을 위한 희생. 그것은 근대의 전체주의와도 닿아 있다. 설사 훈련 도중 사람이 죽어나가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묘하게 두 가지가 서로 통하는 것은 봉건주의와 전체주의가 사실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일까? 정의하자면 권위주의일 것이다. 전근대적 권위주의가 봉건주의, 근대적 권위주의가 전체주의. 한국무협이 갖는 특징 가운데 하나다. 거대서사는 근대적 권위주의를 닮고, 개별서사는 봉건적 권위주의를 담는다. 개별서사는 전통의 무협을 따르는대신 거대서사는 전통의 군담소설과 닮았다. 그런 점에서 백동수는 매우 적절한 선택인 셈. 노론을 굳이 청과 연계시켜 적으로 설정한 것도 단지 그를 위해 이미지를 차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 무협의 적이란 이래야 한다.

단순히 개인의 원인이나 정리를 쫓는 이야기여서는 안 된다. 보다 거대한 보편적인 이야기여야 한다. 국가이면 좋겠고, 민족이면 더 좋겠고, 그런 점에서 조선을 침략하여 삼전도의 치욕을 주었던 청의 잔당과 그와 손을 잡고 왕실을 능멸하는 노론의 존재는 매우 적절하다. 실제의 노론이 어떠했든 그로써 <무사 백동수>라는 무협드라마는 완성된다.

아마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첫째는 실제 존재하는 역사적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둘째 그러면서도 한국무협의 기본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 배경부터가 익숙한데 장르적 특성 또한 익숙하다. 마음놓고 볼 수 있달까? 굳이 긴장하며 놀라고 할 필요 없이 단지 캐릭터와 사건에만 집중하면 된다. 나머지는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다만 과연 그것이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올까? 어색할까? 아니면 신선할까?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도세자와 정조, 김광택이라는 실존인물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자아내니까.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한 백동수가 실존인물이었다는 것도 관심을 끈다. 흑사초롱은 전형적이지만 흑사초롱의 천주는 대단한 존재감을 보인다. 안심하고 볼 수 있는데 흥미까지 자아낸다. 다만 바로 이후, 주인공인 여운과 백동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부터가 문제다. 설정은 어디까지나 설정, 구조도 어디까지나 구조, 중요한 건 바로 이들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것이니까. 아직까지는 설정으로 버티지만 이제는 이들 두 주인공이 끌고가야 한다. 과연 이 두 배우가 전광렬과 최민수의 존재감을 흉내낼 수 잇을 것인가.

전형성 안에서 장르물이 고유한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이 캐릭터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공. 결국은 액션의 연출이 어떠한가? 충분히 흥미를 끌만한 설득력 있는 액션장면이 필요하다. 그에 비하면 사실 액션이 너무 길고 지루하다. 뭔가 한 순간에 입팩트있게 보여주고 끝내야 하는데 너무 구구하게 길게 이어지니 보는 입장에서 지친다. 캐릭터에 대한 묘사도 그렇게 하려는가. 아직까지는 아역이라 상당히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는 편인데.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나서가 문제다. 그깨는 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부분까지 표현해내야 한다. 제작진의 역량이며 배우의 역량이다.

그리고 한 가지 또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바로 고증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역사드라마에서 고증 따지는 것이 바보같이 여겨지게 되었는데, 역시 이 드라마 또한 마찬가지다. 노론이 청과 손잡고 왕실과 대립하는 것이야 이미지를 차용한 것 뿐이라 납득하고 넘어가겠지만, 그러나 백동수의 프로필에 한중일 삼국의 무술을 집대성하여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했다 하지 않았던가. 기왕에 한중일 삼국의 무술에 대해서 실제로는 아니더라도 눈에 띄도록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김광택(전광렬 분)의 검술이 원래 아버지 김체건이 일본을 떠돌며 배워 온 것이었다. 그에 비해 흑사초롱의 천주는 중국에서 무술을 배웠다. 그런데 싸우는 모습을 보면 두 사람이 마치 동문처럼 보인다. 무협에서 가장 중요한 무술에서 차별성이 없는 것이다. 조선의 무사들과 중국의 무사들이 쓰는 무술에서 차이가 없어서야 무슨 무협이라 할까? 장차 백동수가 삼국의 무술을 집대성하는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서도 의도적으로 그런 점을 부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일본에서 검도를 배운 김광택과 중국의 검을 쓰는 흑사초롱, 조선의 전통무예를 보여주는 흑사모 이하 조선의 무사들. 백동수가 그것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과정을 묘사해도 좋았을 것이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각각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그 장점을 드러내고. 사실 이런 것들이야 말로 무협을 보는 재미일 텐데 말이다. 성장이 없으면 나머지는 정치다. 결국 백동수도 보통의 사극에서처럼 정치를 하게 될까? 무사이기보다는 권력에 닿아 있으니 정치가로써. 실제 사서에서도 그는 지방관으로 있으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처벌받고 있었다.

아무튼 김광택이 소림사에 가서 소림승들이 곤법을 연마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얼마나 성의없이 쓰여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가 될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에 소림의 곤법을 소개하며 수록된 <소림곤법천종>은 이미 17세기 초 명 만력연간에 정종유라는 사람에 의해 편찬된 것이다. 김광택이 굳이 소림곤을 그림으로 그려 도해를 만들 필요 없이 이미 정종유에 의해 도해가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종유 또한 왜도술에 관심이 많았으니 차라리 그 부분에서 김광택이 정종유의 후손과 만나는 것이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무예도보통지>에 대해 조금만 조사했어도 범하지 않았을 실수였다.

뭐랄까 역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 이미지만 차용해 온 판타지의 느낌이랄까? 무협소설에서 배경은 명나라이고 송나라인데 정작 당시의 시대상이 명이나 송과는 전혀 상관없이 느껴지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무협은 역사가 아니다. 김용이 추앙받는 이유일 테지만.

만족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에서는 만족이, 그럼에도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결국 다음주나 되어야 결론이 나겠지만. 아직 주인공은 나서지도 않았다. 단정을 대리지 못하는 이유다. 아직은.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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