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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2.26 06:51

위대한 탄생 - 승자와 패자, 그 잔인한 희비의 교차점은?

오디션은 단지 오디션일 뿐이다.

 
얼마전 EBS에서 겨울방학특집으로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 강의를 편성해 방영한 것을 보았다. 여러가지로 흥미로웠고 의미가 깊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위대한 탄생을 보면서 떠올린 것이 바로 합격에 있어서의 그 기준과 도덕적 자격에 대한 이야기였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존 롤스의 주장을 인용하며 성적과 대학입학자격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입학지원자의 성적이 좋다는 것은 단지 대학이 요구하는 입학조건 가운데 하나를 충족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대학이 내세운 여러 조건 가운데 단지 하나에 불과하며 시험을 잘 치렀다는 것이 따라서 대학에 입학할 도덕적인 자격을 갖추었다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실력 외적인 다른 요소들에 대해서도 대학이 필요하다 여긴다면 그 또한 충분한 자격조건이 될 수 있다.

오디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면접만 하더라도 결국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객관적인 어떤 스펙이 아니다. 더 시험성적이 좋을 수 있다. 더 좋은 대학을 나와 더 훌륭한 스킬을 쌓았을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그 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 회사에 맞는 인재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지원자를 직접 면접하는 면접관이다. 면접관이 그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극단적으로 면접관의 마음에만 들면 다른 모든 조건에서 미달하더라도 면접에서 합격할 수 있다.

이경규도 말한 적 있다. 라디오에서 하는 개그콘테스트인데 무엇하러 뛰고 구르며 이소룡 흉내를 냈는가? 이경규는 대답했다.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중요하다. 청취자는 단지 즐거울 뿐이지만 심사위원은 자신의 당락을 결정한다. 그래서 열심히 라디오 콘테스트에서 심사위원들 앞에서 뛰어다닌 끝에 이경규는 개그맨에 합격할 수 있었다.

김정인과 팀을 이룬 이유나에 대해 신승훈은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다고 했다. 확실히 재능이 엿보였다. 김정인의 화제성에 가리기는 했지만 댄싱퀸을 부르며 김정인과 훌륭히 화음을 맞추며 멋진 무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은미도 그 재능에 대해서는 높이 사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그녀의 차례에서 어떤 멘토도 손을 들고 있지 않았다. 실력이나 가능성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다름아닌 <위대한 탄생>이기 때문이었다.

그냥 심사만 하는 것이었어도 심사위원의 성향과 재량에 따라 그 결과가 결정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멘토다. 직접 제자로 들여 가르치는 것이다. 실력이 있고 재능이 있다고 아무나 데려다 직접 가르쳐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 추구하는 음악적 색깔이 다르고, 또 멘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다르다. 결국 그러한 멘토 개인의 성향과 기호에 따라 더욱 선택되고 결정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주 손진영이 그랬었다. 이번주에도 권리세와 백세은이 같은 상황에 놓였다. 사실 김한준만 해도 실력만으로 평가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참가자였다. 그러나 선택되었다. 백세은과 권리세, 손진영 모두 다른 멘토들이 모두 외면하는 가운데 각각 김윤아와 이은미, 김태원의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에 의해, 어쩌면 더 실력있고 재능이 있었을 대른 참가자들을 물리치고 20명 가운데 포함되고 있었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재능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선택이었다. 선택의 결정권은 멘토들에게 있었고, 그 가운데 멘토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갖춘 20명만이 멘토들에 의해 선택되었을 뿐이었다. 더 실력있고 더 재능있는 참가자가 있었어도 그것이 멘토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기에 그들은 끝내 선택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공정하지 못하다 생각하는가? 하지만 재능을 타고 나는 것도 공정하지 못하다.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매력적인 목소리와 풍부한 성량과 넓은 음역대를 갖는다. 정확한 음정과 리듬감 역시 아무나 갖추는 것이 아니다. 김정인과 같은 나이에 김정인만큼 부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외모도 타고 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에 비하면 오디션에서 자기에게 맞는 심사위원을 만난다는 것은 운 축에도 들지 않는다. 설마 음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위대한 탄생>이라는 오디션프로가 시작이자 마지막은 아닐 것 아닌가.

<위대한 탄생>에서도 안되면 다른 오디션을 찾아보면 된다. 멘토들이 가능성이 엿보이는 참가자들을 떨어뜨릴 때마다 아쉬워하며 하던 말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고 언제고 기회는 다시 찾아올 것이다. 멘토로 나선 김태원 역시 85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예선에서 탈락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때 저 이승철 역시 파이오니어라는 캠퍼스 밴드로 예선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김태원과 이승철이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대히트를 기록한 것이 그 이듬해였다.

결국은 쇼다. 버라이어티로 분류된다. 재미를 주자는 것이다. 재능있는 신인을 발굴해서 스타로 키우자는 목표야 당연히 부수적인 것이다. 그보다는 가수라고 하는 꿈에 도전하는 참가자들의 웃고 울고 환호하고 절망하는 모습들에서 웃음과 공감을 얻으라는 목적에서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탄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깊은 인상을 남기면 가수로서 다른 사람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결국 우승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음악인생은 진정 <위대한 탄생>이 끝나고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실망할 필요 없다. 좌절할 필요 없다. 그냥 한 과정이다. 시청자들 역시 누가 되고 누가 안 되고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단지 지켜보는 것이다. 멘토들이 선택한 그 재능과 가능성들이 어떤 식으로 그 꽃을 화려하게 피울지.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저 담담히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웃을 때 웃고, 공감할 때 공감하고, 감동할 때 감동하면서. 음악에 뜻이 있다면 <위대한 탄생>에서 탈락하고서도 꾸준히 음악인의 길을 가게 될 터이니. 그때 음원이라도 다운로드받아 들어준다면 그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잘해서 승자가 아니라 <위대한 탄생>이기에 승자다. 못해서 패자가 아니라 <위대한 탄생>이기에 패자다. 바로 그 심사위원과 멘토이기에 그들은 승자가 되었고 패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시청자들도 그것을 보며 함께 울고 웃고 환호하고 아쉬워하며 이입하여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되고 아니고는 단지 누가 더 유리한 출발점에 섰는가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참 독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회사에서 면접 보는 것처럼 서면이나 전화로 통보해주는 것도 아니고 바로 보는 앞에서 골라내니. 함께 무대에 올라 같이 무대를 만들었어도 결국 선택되는 것은 한 사람. 주욱 늘어선 탈락자 가운데 멘토들에 선택을 받은 것도 단 두 사람이었다. 남겨진 사람들은?

하지만 그것이 오디션이니까. 오로지 실력과 재능만으로 판단되고 선택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적인 공정함은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패배자로 만들어가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비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쳤는가 하는 것이 더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같이 무대에 올라 어쩌면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훌류안 무대를 보여주었음에도 지난주 한승구에 이어 이번주도 이유나가 탈락하고 있었다. 멘티로써 선택될 수 있는 것은 20명까지이고 각자 허락된 멘티의 수는 고작 4명씩밖에 되지 않으니까. 아니 아예 우승자는 단 한 사람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패배자가 되어야 하고 그를 딛고 누군가는 승리자가 된다.

사람들이 <위대한 탄생>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이유다. 선택되어지지 못한 패자의 가슴찡한 눈물이 있고, 마침내 선택되어 멘티라 불리게 된 참가자의 가슴 떨리는 환호가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떨구는 탈락자들과 거꾸로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서로 격려하는 멘티들. 그렇게 자신의 실력과 재능을, 자신의 가치를 찾아내고 성공을 통해 입증해내는 것을 지켜보고픈 대중의 욕구인 것이다. 김테원의 말처럼 기적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무대들이 좋았다. 어떤 노래들은 자주 듣던 노래들이었다. 어떤 노래들은 조금 식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참가자들에 의해 그 노래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전혀 다른 느낌으로 불려진다. 원래는 전문음악프로그램에서 했어야 하는 일인데. 아마추어스런 풋풋함과 신선함이 색다른 느낌의 새로운 어렌지곡드에 대한 거부감이나 어색함을 던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만들어낸 색다른 무대란 색다른 재미로 만족을 주었다. 아니라면 편집되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자체가 이미 그 재능과 가능성에 대해 일정부분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다. 아주 극소수만이 갖고 있는 재능을 그들은 가지고 있고, 그 재능이 꽃필 수 있는 자리를 <위대한 탄생>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나쁘다면 그야말로 무성의이거나 생각만큼 재능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아마추어지만 그들이 만든 무대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다.

아무튼 다음주가 정말 기대된다. 박칼린이 나온다. <남자의 자격>을 통해 맺어진 인연이 이제는 멘토와 특별심사위원으로 다시 부활 연습실에서 다시 이어지고 이는 것이다. 독설이 정말 사람이 감당하기에 곤란한 수준이기도 한데. 한 주가 정말 기다려질 것 같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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