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박수빈 기자
  • 문화
  • 입력 2021.11.24 17:10

[박수빈의 into The book] #2. DI로 태어난 아이, 난 아빠가 누구에요?

도서 ‘결혼은 안해도 아이는 갖고 싶어’, 선택적 싱글맘, 아빠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스타데일리뉴스=박수빈 기자]

▲ 도서 '결혼은 안 해도 아이는 갖고 싶어'

“너무 슬퍼요. 누구든지 자신의 할아버지와 또 그 위 증조할아버지로,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요. 마치 누군가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고 막고 있는 것처럼 매우 고통스러워요.”

캐나다에 사는 쉐리 크루즈 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DI(Doner Insemination 비배우자 간 인공수정) 를 통해 미혼의 몸으로 쉐리 씨를 낳았다. 도너(기증자)는 익명이었고, 그녀는 생물학적 아버지를 모르기 때문에 오랫동안 결핍을 느껴왔다고 말한다. 자신의 반이 베일에 싸여 있다고 하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결혼은 하지 않고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는 낳는, ‘선택적 싱글맘’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택적 싱글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DI를 통해 태어나는 아이들이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즉,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 또한 많아질 것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이에 도서 ‘결혼은 하고 싶지만 아이는 갖고 싶어’의 고바야시 아쓰코 저자는 책을 통해 ‘아빠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금번 시리즈에서는 최근 증가하고 있다는 선택적 싱글맘과 DI를 통해 태어난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결혼 없이 인생을 디자인-선택적 싱글맘

▲ 출처 Unsplash

정자은행이란 큰 키와 고학력에, 건강하고 유전적 질환이 없는 등의 조건을 통과한 남성의 정자를 모아 액체 질소로 냉동보존하고, 고객이 희망하는 도너의 정자를 해동하여 정자 주입용 카테터로 자궁안에 삽입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을 말한다.

남편의 무정자증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는 불임 커플과 싱글 여성, 레즈비언 커플 등이 아이를 갖기 위해 정자은행을 찾아 민족, 혈액형, 신장, 체중, 눈과 머리카락 색, 학업성적, 스포츠, 취미 등등이 카탈로그화된 도너정보를 토대로 냉동정자를 선택하고 인공수정(DI)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적어도 100만 명 이상이 DI로 탄생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전후(1945년 이후)부터 DI가 행해져 현재까지 1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처음부터 왕자님, 즉 남편을 기대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에서 결혼을 빼고 설계하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립한 여성도 있다. 

파트너를 갖지 않고 아이를 갖는 여성을 선택적 싱글맘(SMC, 즉 Single Mothers by Choice) 혹은 계획적 싱글맘, 비혼 싱글맘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선택적 싱글맘이 1990년대 초반 5만 명에서 2008년에는 15만 명으로까지 증가했다고 한다.(《마이크로 트렌드‐세상을 움직이는 1%의 사람들》 마크·J.펜 외, 일본방송출판협회, 2008)

일본에서도 미혼 또는 비혼 싱글맘이 급증하여 2010년에는 13만 2천 명으로, 2005년과 비교하면 48.2%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그 배경으로 2005년에서 2010년에 걸쳐 적출이 아닌 아이(혼외자)의 출생 수가 증가 경향에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전에 여성이 싱글맘이 되는 경우의 대부분은 이성 간의 성교섭에 의한 것이었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이 스스로 정자은행과 의료기관에 찾아가 DI를 받고 선택적 싱글맘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 배경에는 혼자서도 충분히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여성의 증가와 연애는 적극적이지만 결혼에는 꽁무니를 빼는 미적지근한 남성들이 있다. 더욱이 운명적 상대와의 결혼과 아이를 원하면서도 일에 몰두하는 사이 30대, 40대가 되어 버린 커리어 여성의 증가 등이 작용하고 있다. 싱글로서는 입양도 불가능하기에 독신 여성이 왕자님을 기대하지 않고 아이를 갖고자 한다면 DI는 절호의 수단인 것이다. 

신체적 불임과 사회적 불임

▲ 출처 Unsplash

DI는 원래 남성 쪽에 원인이 있는 불임 커플을 위해 행해진 생식보조의료기술(ART)이다. 이 같은 의료기술을 ‘불임 고민’이나 ‘불임 경험’이 없는 싱글 여성이나 레즈비언 커플에게 사용해도 될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예를 들어, 그녀들은 불임에 대한 고민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DI의 보조가 없으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불임’이라고 불리며, 이 또한 의료에 의한 구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여성들의 부모가 되고 싶다는 염원도 이성 커플들과 다르지 않다. 신체적 결함으로 인한 불임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들도 도너(기증자)의 정자를 사용하기 위한 사회적 이유, 개인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아이에게는 아빠와 엄마라는 두 명의 부모가 필요하다거나 동성 커플에게서 키워진 아이는 성적 기호가 이상해진다는 등, 아이의 복지를 이유로 그들의 DI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정자은행과 DI를 실시하는 병원에서는 싱글 여성에겐 DI를 거부하는 의사가 적지 않은 것 같다. 그에 반해 레즈비언 커플은 생식산업의 새로운 고객으로서 환영받고 있다고 한다. 근래에 일부 국가와 미국의 일부 주에서도 동성혼이 인정되고, 동성 커플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그들도 부부이므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싱글 여성의 경우에는 아이에게는 두 명의 부모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여전히 강하다.  또 싱글 여성이 DI로 아이를 낳고 혼자서 키우게 되면 생식에 있어서 남성의 무책임을 조장하게 된다는 비판도 있다.

아빠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 출처 Pixabay

이렇게 태어난 선택적 싱글맘의 아이들은 자신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또 그들이 자신의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누군지 알고 싶어 할경우 그 알 권리를 인정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레즈비언 커플이 게이인 지인 남성의 정자를 사용하거나 과거 이성혼 파트너였던 남성의 아이를 키우는 등, 도너의 익명성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선택적 싱글맘들은 아이가 ‘도너에 대해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기에 익명의 도너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성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아이가 성장하면서 주위의 친구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엄마밖에 없다는 것에 의문을 품게 된다. ‘나는 왜 아빠가 없어?’라고 아이가 물었을 때 싱글맘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미국의 싱글맘스 바이 초이스(선택적 싱글맘의 모임)에서는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너는 아빠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엄마에게 사랑받고 있고, 정말 원해서 태어난 아이란다’라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들려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아이에게 출생의 진실을 전하는 것을 텔링(telling, 말하기)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고지(告知)라는 말도 사용했지만, 이 말에는 재판장이 판결을 내리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정보를 던지는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아이를 대등한 인격으로 대한다는 의미를 담아 ‘텔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됐다.

그러나 이것으로 아빠가 누구인지 알고 싶고, 아빠를 만나고 싶다는 아이의 소박한 감정이 반드시 채워진다고 할 수는 없다. 도너가 아버지가 되지 않았다면, 싱글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아버지는 부재하게 된다. 불임 커플이 DI를 이용한 경우에는 양육해온 아버지가 있지만, 싱글 여성의 경우 아예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없다. 그것이 아이 자신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앞서 언급한 쉐리 크루즈의 사례처럼 DI 아동의 대부분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도너는 정보 공개를 원하지 않고 선택적 싱글맘 역시도 이를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 

도너를 알고 싶다는 DI아동의 대부분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기위해서’라고 말한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어떤 사람의 유전정보를 이어받고 있는 걸까? 즉,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도너를 만나고 싶어한다. 도너는 어떤 사람인가, 자신과 어디가 닮았나, 잠깐이라도 좋으니 만나서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심정이라고 한다. 

도서 ‘결혼은 안해도 아이는 갖고 싶어’는 윤리가 못따라 가는 생식기술이 과연 행복할까 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며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을 함께해 본다. 철학자이자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도서를 통해 어떠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단지 다양한 관점에서 독자들 스스로 충분한 생각을 하길 도울 뿐이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생식기술, 어쩌면 책에서 전하는 생황들이 먼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까운 미래에 생겨날 일들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