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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3.21 10:43

[김윤석의 드라마톡] 감격시대 20회 "사라진 디테일, 끝을 향해 바쁘고 가쁘다"

감당하지 못한 복잡함과 방대함, 요약본만 남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넓으면 얇아지고 좁히면 깊어진다. 당연한 상식일 것이다. 미니시리즈에는 미니시리즈에 걸맞는 스케일이 있다. 다양하고 복잡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장기시리즈에 적합하다. 미니시리즈는 단순하고 명쾌할수록 좋다. 짧은 분량 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집어넣으려 하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기 쉽다. 호흡이 빠르다는 것은 다시 말해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도야마 아오키(윤현민 분)는 일국회 회주 덴카이(김갑수 분)의 명령도 따르면서 한편으로 가야(임수향 분)도 돕기 위해 신이치(조동혁 분)를 이용한 사항계를 꾸민다. 덴카이는 항명을 이유로 신이치를 파문했다. 파문했을 뿐만 아니라 일국회 회원들에게 신이치를 보면 죽이라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일국회에 쫓기는 신이치에게 일본의 중국침략계획이 적힌 중요한 기밀문서가 들려 있다. 장개석을 후원하고 있으며, 상하이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일본과 일국회의 의도에 맞서야 하는 입장에 있는 황방의 방주 설두성(최일화 분)이라면 이것을 그저 보고만 있지는 못할 것이다. 더구나 도꾸(양태구 분)라고 하는 조력자가 황방에 잠입해있는 중이다. 도꾸의 도움을 받아 신이치를 황방의 방주 설두성에게 접근시켜 암살을 꾀한다.

▲ KBS 제공
문제는 도꾸가 황방에 들어간 것이 그리 오래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도꾸는 배신자로서 신이치 앞에 나타나게 된다. 도꾸가 그 짧은 시간에 황방 방주의 신임까지 얻어 그같은 중요한 위치에 이를 수 있었던 배경일 것이다. 일국회의 첩자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일국회를 배반하고 황방의 일원으로써 이중간첩 노릇을 할 것을 다짐한다. 언젠가 도꾸를 이용해 거짓정보로 일국회를 혼란시키고 일국회에 치명적인 일격을 돌려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만하면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는 조선인에게 신정태(김현중 분)를 황방에 묶어둘 목줄이 될 수 있는 김옥련(진세연 분)를 관리하는 중요하다면 중요한 역할을 맡긴 것이 얼핏 납득이 갈 것도 같다. 그렇더라도 한 번 일국회를 배신한 도꾸인데 설두성은 무얼 보고 그처럼 믿고 일을 맡기는 것일까. 그런 도꾸를 믿고 신이치의 사항계 같은 중요한 일을 추진하는 도야마 아오키 역시 이해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신이치가 설두성을 암살하려 시도하는 장면 역시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비검은 그다지 살상력이 뛰어난 기술이 아니다.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서는 설두성 가까이로 접근해야 한다. 어제까지 적이었던 신이치에게 그만한 거리를 쉽게 내줄 설두성이 아니다. 그만한 노력과 과정이 필요하다. 설두성을 죽일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게 된 뒤에도 무기까지 마련하는 것은 별개로 여겨야 할 것이다. 도꾸를 이용한다면 설두성과 대면하는 그곳에서 어딘가, 혹은 누군가에게 미리 무기를 준비해 놓는다. 그러나 그 과정이 생략된 결과 도대체 도꾸가 거기서 무슨 역할을 한다는 것인지부터가 의문으로 남는다. 배신을 하기는 했는데 그다지 놀랍다거나 하지 않다. 하는 일이 없다. 그저 신이치를 이용해서 설두성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고, 도꾸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실패하고 말았다. 짧게 요약한 내용이 드라마의 내용 전부다.

신이치가 실패하고, 신이치의 편지를 읽은 가야가 무기를 꺼내들고 신이치를 구하려 달려든다. 그런 가야를 구하려 도야마 아오키까지 복면을 두른다. 하필 황방에는 그와 같은 시간 신정태가 잠입해 있었다. 신이치와 가야, 아오키, 그리고 신정태와 김옥련이 황방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신정태가 하필 그 시각 그 장소에 있어야 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다. 모일화(송재림 분)가 그러하듯 필요한 때 필요한 장소에 항상 필요한 인물이 위치해 있다. 물론 나름의 이유나 개연성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이야기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그같은 디테일은 사라져 버린다. 정재화와 신정태가 싸우게 되는 과정 역시 매끄럽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갑자기 상황이 정해진다.

말이 많아진다. 보여주기에는 분량이 너무 방대해지니 보다 쉬운 말이라는 수단에 의지한다. 몇몇 인물들이 짜맞춘 듯 몇 마디 대사로 드라마를 진행시킨다. 개연성만이 아닌 캐릭터마저 사라진다. 도꾸가 일국회마저 배신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도꾸의 캐릭터가 드러나고 있었을까. 정재화의 감정 역시 신정태와 겨루고 방삼통에서 물러나기까지 마음대로 널뛰고 있었다. 짐작만 할 뿐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멜로는 놓치지 않는다. 언제부터 정재화와 선우진(이해인 분)은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되었던 것일까. 갑작스럽게 정재화를 향한 선우진의 감정이 뜨겁게 달궈진다. 이제 신정태는 단순히 작가의 의도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 드라마의 중심으로서 그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지금의 신정태를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까.

일국회가 더 커진다면, 황방이 더 큰 스케일로 보여진다면, 더 많은 인물들이 더 복잡한 관계로 얽힌다면, 그래서 그 사이의 공간이 제대로 채워진다면, 그랬다면 꽤나 물고 물리는 머리싸움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청자가 개입할 여지가 사라졌다. 미루어 짐작하고 멋대로 추측하여 기대하는 과정 자체가 생략되어 버렸다. 그저 드라마가 보여주는대로 보고 드라마가 이끄는대로 따라가기에 바쁘다. 반전이 반전이 아닌 이유다. 기대가 없는데 무슨 반전일까.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듯 단지 대사 몇 마디로 드라마를 모두 채우려 한다.

욕심이 너무 지나쳤거나, 아니면 너무 어설펐거나. 하나의 일관된 줄거리를 가지고 디테일과 깊이를 더하는 쪽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신정태의 동선을 쫓으며 신정태의 싸움을 통해 신정태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신정태가 싸워야 하는 당위를 모두 설명해준다. 황방의 음모도, 일국회의 의도도 보다 간략해지는 것이 좋다. 그것을 깨부수는 것은 당연히 맨몸의 신정태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 더구나 신정태의 싸움마저 실종되어 버린다. 정재화와의 싸움은 누가 이겨도 통쾌하지 않은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결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정재화가 떠나는 장면까지 길어진다. 신파가 따로 없다. 황방과 싸워야 하는 것은 모일화가 아닌 신정태여야 했다.

그나마 아직 분량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그리 크게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아직 벌려놓은 일들을 해결할 충분한 여유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끝이 다가오면서 수습할 수 있는 공간 역시 줄어들어간다. 뚝심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내 갈 길을 간다. 디테일을 희생해서도, 깊이를 덜어내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려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스케일에 지쳤을 때 때로 작가는 요약으로 나머지 내용을 대신하기도 한다. 영상으로 보려니 바쁘고 가쁘다.

주인공 신정태가 사라졌다. 방삼통 조선인들을 대신해 순포들과 맞서싸우던 뜨거움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정재화와의 싸움은 그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싸워야 할 이유가 없었다. 갑작스러웠고 뜬금없었다. 누가 이겨도 시원하지 않다. 정작 싸워야 할 적은 따로 있었다. 신정태가 싸워야 할 진짜 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 시점에서 신정태는 머뭇거리며 주저한다. 우습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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