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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3.20 10:51

[김윤석의 드라마톡] 감격시대 19회 "호쾌함을 잃은 액션, 싸움을 앞두고 답답해지다"

너무 많은 것들을 담아내려 가장 중요한 것을 버리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무협의 진수는 다름아닌 '호쾌함'이다. 다른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원수를 갚고 악을 응징한다. 하기는 미국의 웨스턴이나 일본의 사무라이물이나 그 근본은 같을 것이다. 모순되고 억압적인 현실을 부수는 원초적이고 직관적인 물리적인 힘. 그래서 항상 주인공들은 혼자고 또한 외롭다. 오는 곳도 모르고 가는 곳도 모른다. 그는 단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답답하다. 어째서 일개 깡패에 불과한 시라소니가 지금까지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가. 단순히 싸움을 잘해서일까?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었던 암흑기였다. 나라를 빼았겼고 일본인들의 눈치를 보며 항상 짓눌려 살아야 했었다. 중국으로 건너간 조선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는 중국인들이 주인이었다. 그런데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중국과 조선의 실력자들을 때려누이는 한 사내의 이야기가 바람결에 들려오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사실이고 어떤 것들은 단지 바람이었다.

방삼통의 조선인들을 폭행하는 순포들의 모습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던 신정태(김현중 분)의 모습이 그립다. 인력거꾼들을 착취하던 도꾸(양태구 분)를 혼내줄 때도 다른 계산 따위 없었다. 도비패와의 인연도 그같은 무모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그래봐야 깡패다. 보편의 사회가 추구하는 법이나 도덕, 정의 같은 것은 어쩌면 그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지 모른다. 대신 자신만의 선이 있다. 그 선을 넘어서면, 그래서 그것이 옳지 못하고 바르지 못하다는 판단이 선다면, 신정태는 결코 참지 않는다. 어렵더라도,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이더라도 그는 싸우고 끝내는 이긴다.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으로 건너오기 전 신이치(조동혁 분)와 대결하기 위해 홀로 걸어가고 있을 때 답답하면서도 한 편으로 설레는 것이 있었다. 간절히 함께 이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 KBS 제공
사족이 너무 길다. 하기는 싸운다고 그것이 끝이 아니다. 싸워서 이기도 다시 싸워서 이기며 언젠가는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누군가와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황방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마땅히 황방을 응징해야 한다. 아버지의 원수라면 복수도 해야 한다. 황방에는 수많은 실력자들이 있다. 하나하나 꺾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왕백산까지 쓰러뜨리고 설두성의 항복을 받아낸다. 그 과정에서 일국회와도 싸워서 신이치와 아오키(윤현민 분)를 쓰러뜨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단순하다면 단순한 구조일 테지만 바로 이것이 무협의 묘미다. 장르가 가지는 미학이다. 어디까지나 신정태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신정태의 싸움이 중심에 놓여야 한다. 그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아니다. 제법 멋스럽기는 하다. 이런저런 다양한 양념과 고명들이 맛깔나게 보이기도 한다. 나름대로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꾸민 것이기도 할 것이다. 황방의 음모와 일국회의 계획, 그리고 그에 휘둘리는 방삼통 조선인들의 모습까지. 그러나 아무리 좋은 양념에 고급스런 고명을 올린다고 길거리 고추장 떡볶이는 어디까지나 고추장 떡볶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신정태가 꾹 참고 인내하며 머리를 쓰는 사이 기대했던 호쾌함이나 통쾌함은 억눌린 답답함으로 바뀌고 말았다. 정재화와 싸워야 하는데 어쩐지 보는 이의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이겨도 안쓰럽고 져도 안타깝다. 물론 그것이 당시 조선인들의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련해지고 싶고 통쾌한 기분을 느끼고 싶은 판타지를 배반해서는 많이 억울하다.

일국회 회주 도야마 덴카이(김갑수 분)를 맞는 자리에서의 어수선함은 지리멸렬의 극치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돌려말하거나 꾸미는 것이 없다. 복수를 위해 기회를 노리는 치밀함이나 치열한 역시 없다. 어린아이의 투정이고 응석이었으며, 정리되지 않은 서툰 대응이었다. 결론마저 흐지부지다. 아마 일본인의 조직인 일국회를 멋있게 그리고 싶지 않은 작가의 고집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가야(임수향 분)는 자신의 방에 유폐된 채 도야마 아오키를 끌어들여 복수를 계획하게 된다. 예상했던 장면이다. 오히려 너무 늦었다. 전혀 의미없는 곁다리와 같은 장면이었다.

말이 너무 많다. 말로 나머지를 때우려는 듯한 의도로 여겨질 정도다. 한 화면에 몇 명의 배우가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필요한 대사를 나눈다. 전체의 큰 그림을 보여주기보다는 조각조각 나누어 몽타쥬를 만든다. 그런데 그 조각들이 너무 소심하고 친절한 탓에 전체의 이미지가 너저분하게 섞이고 만다. 난해하다기보다는 정리가 안된 것이다. 회주 아래로 수많은 인물들이 활약하고 있는 황방에 비해 설두성(최일화 분)을 제외하고 왕백산(정호빈 분)만이 황방의 전부다. 모일화(송재림 분)은 작가를 위한 조커의 역할을 수행한다.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납득을 하다가도 결국 실망으로 돌아서고 만다. 처음 '감격시대'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기대했던 것이 무엇인가. 암울했던 시대 억압받던 조선인의 현실을 몸으로 부딪혀 부숴나가는 통쾌함이 아니었던가. 조선인을 짓누르고 있던 현실을 대신하는 중국과 일본의 실력자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려 나간다. 이제는 뭐가 뭔지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아직 남은 회수가 많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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