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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3.16 08:55

[김윤석의 드라마톡] 정도전 21회 "최영vs이성계, 혁명의 당위를 말하다"

임견미 염흥방의 몰락과 이인임의 반격, 최영과 이성계가 대립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최영(서인석 분)과 이성계(유동근 분)의 길이 갈린다. 우왕(박민성 분)에게 이인임(박영규 분)은 아버지다. 왕실의 입장에서도 공민왕이 시해당하고 위태롭던 왕실과 조정을 안정시킨 공신이었다. 그러나 백성의 입장에서 이인임은 땅을 빼앗고 재산과 인신을 갈취해간 포악한 권신이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조민수에 의해 이인임의 복권이 추진되자 많은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기록되어 있을 정도였다. 과연 누구의 입장을 우선할 것인가.

부정을 저질러도, 패악을 일삼아도,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죽어나 혹은 피해를 입었더라도, 그러나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했으니 용서되어야 한다.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혼란스러운 국정을 안정시키고, 돈을 많이 벌어 경제에도 기여하고, 그에 비하면 그 과정에서의 사소한 잘못들은 말 그대로 사소한 것이다. 사람 몇 죽고 다치는 정도야. 재산을 잃고, 자유를 잃고, 명예와 삶을 잃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았는가. 애국자다. 부정할 수 없다. 어떤 개인보다도 전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왕조시대 왕실이란 곧 국가였다. 고려왕실이란 곧 고려 그 자체였다. 과연 무엇이 분풀이인가.

아무리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했더라도 그로 인해 위태로웠던 고려의 국정이 안정되고, 그가 국정을 주도하며 외적으로부터도 나라 또한 지켜냈다. 우왕을 왕위에 올린 것도 이인임이다. 추락한 왕실의 위엄을 되살리고 든든한 왕실의 보호자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이인임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고려도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희생되어야 했던 무수한 사람들은? 목숨과 재산과 인신의 자유마저 잃어야 했던 더 많은 사람들은 어찌할 것인가? 나라에 공을 세웠다면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수많은 개인들은 무시해도 좋은 것인가? 이성계에게 고려란 곧 고려의 백성들을 뜻했다. 고려왕실에 공이 있다 해서 백성들에게도 공이 있는가.

▲ KBS 제공
고려의 충신으로 죽어갔던 최영과 백성들을 위한 새로운 나라를 열었던 이성계의 운명이 극적으로 갈리는 순간이다. 최영은 고려왕실의 어른들을 만나고, 이성계는 백성들의 하소연을 듣는다. 왕실에서는 이인임을 살리라 말한다. 백성들은 이인임이 죽기를 바란다. 최영은 백성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이성계는 왕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백성의 마음을 알았더라도 최영에게는 고려왕실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왕실의 입장을 이해했더라도 이성계에게 그것은 백성의 바람 다음이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가까웠던 두 사람이건만 비로소 다시 손을 잡게 되었을 때 보이지 않던 균열이 메울 수 없는 골을 만든다. 그 와중에 우왕마저 나서서 이인임의 사면을 추진하니 상황은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다.

과연 이인임이다. 이인임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최영과 이성계의 선제공격에 미처 손을 쓸 틈조차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10년을 넘게 이어진 권세였다. 14년동안 고려의 모든 것이 그의 손안에 있었다. 알게모르게 그의 영향을 받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고 신세를 진 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인임이 거부했다면 조정에 발을 딛을 수조차 없었다. 사대부 가운데서도 많은 이들이 이인임의 처벌을 반대했고, 그의 복권에 동의하고 있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를 견제하고자 조민수는 이인임의 복귀를 추진하고 있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일개 무부에 불과한 최영이나 변방의 무지렁이 호족에 불과한 이성계 따위 얼마든지 힘을 회복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이인임에게는 우왕과 그의 가족들이 있었다.

만천화해다. 짐짓 자신을 잡으려 무장을 하고 나타난 이성계 앞에서 이성을 잃은 척 흥분하다가 피까지 토하고 쓰러진다. 이성계마저 깜빡 속아넘어가고 만다. 병으로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최여이 태후와 왕후의 부탁을 받아들여 이인임을 살리려 한 것도 그래서였다. 이미 모든 권력을 잃었고 목숨마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굳이 살려준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이인임은 여전히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우왕과 만난다. 최영도 이성계도 명분상 우왕의 신하다. 암도진창, 부저추신. 한창 기세가 등등한 최영, 이성계 등과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우회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명분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왕을 등에 업고 다시 도당으로 나가 정치력으로 최영과 이성계를 굴복시킨다. 웃음이 통쾌하기까지 하다.

숨막힐 듯한 긴장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우왕과 최영이 독대하고, 이성계가 그 사이에 끼어든다. 이인임과 그 무리들에 대한 공격이 결정되는데, 그 순간 이인임 또한 분위기가 수상한 것을 눈치채고 임견미(정호근 분)를 시켜 우왕을 만나보게 한다. 우왕을 통해 최영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가 떠보려는 의도였다. 이성계의 가병들이 속속 모여드는 상황에 이인임은 임견미를 통해 이성계가 우왕을 만났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성계가 최영과 손잡고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 순군부의 장악과 이인임 일파에 대한 추포를 명령하는 최영과 거의 동시에 이인임 역시 임견미와 염흥방에게 최영의 사저를 공격하고 순군부를 장악하여 최영의 당여들을 추포하라 지시하고 있었다. 뻔히 역사를 아는데도 손에 땀이 쥐어진다. 거의 동시에 명령을 내렸는데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가. 간발의 차이로 최영이 빨랐다. 타루소리에 염흥방(김민상 분)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 변안열과 배극렴 등은 염흥방의 순군부를 공격하고 있었다. 최영의 사저를 공격하러 가던 도중 임견미도 최영의 병사들과 마주친다. 역사에서도 이렇게 아슬아슬했을까?

만일 최영과 이성계가 잠시만 더 지체했더라면. 아주 짧은 시간 임견미와 염흥방에게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물론 픽션이다. 사실이 아니다. 그만큼 흡인력이 있다. 최영과 이성계, 이인임 진영의 상황이 교차되고, 마치 장기를 두듯 수와 수가 이어진다. 최영과 이성계가 이인임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동안에도 이인임 역시 최영과 이인임의 의도를 쫓고 있었다. 역사를 몰랐다면 더 재미있었을 뻔했다. 역사를 알아도 재미있다. 최영과 이성계는 과연 이인임이라는 괴물을 죽일 수 있을까? 이인임은 어떻게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까? 기대를 넘어섰다. 이인임은 어떤 순간에도 역시 이인임이었다.

역사를 재미있게 꾸민다. 드라마다. 역사 그 자체를 훼손하지 않는다. 역사적 흐름과 맥락을 온전히 전하면서 세부적인 내용만을 시청자가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고친다. 이런 것을 역사드라마라 부른다. 역사가 사라진 역사드라마의 홍수속에 비로소 사서를 찾아보고 사료를 뒤져볼 수 있는 그런 의미있는 역사드라마를 만날 수 있었다. 이인임의 집안에 시집간 딸이 걱정되어 이성계는 시름에 잠긴다. 그러나 이성계의 사위였던 이제는 철저히 이성계의 사람이 되어 있었고, 이제의 아버지인 이인복은 고려사에 이인임과는 다르게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럴 법 하지 않은가. 그런 때 이성계를 안정시키는 것 역시 책사인 정도전의 역할이다.

변안열 등에게 제압되어 무릎꿇린 염흥방에게 조반이 다가와 천벌을 받은 기분이 어떤가를 묻는다. 염흥방은 웃으며 짧게 대답한다.

"이런... 빌어먹을!"

임견미의 웃음과도 닮아 있었을 것이다. 거물은 거물이다.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게임과도 같았다. 권력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게임. 승자가 되어야 하고,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는 안된다. 일단 승자가 된 뒤에는 염치고 체면이고 따질 이유가 없다. 젊은 시절 이인임 등에 의해 귀양을 가고 고초를 겪으며 그가 얻은 깨달음일 것이다. 진실도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권력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패했으니 죽는 일만이 남았다. 천벌도 무엇도 아닌 단지 실패이고 패배일 뿐이다. 달관도 무엇도 아닌 체념이고 포기다. 자신의 앞에서 천벌을 들먹이는 조반의 모습이 어쩌면 이리도 우습고 하찮게 보이는가.

어쩌면 지금 우리의 현실에도 적용되는 물음일 것이다. 나라에 공이 있으니 죄는 묻어두어야 하는가. 나라에 크게 공을 세웠으니 그로 인해 희생된 이들 역시 묻어야만 하는 것인가. 공을 말하는 것은 실용이고, 죄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상이다. 휠체어에 기대거나 응급실에 누워 자신이 얼마나 이 나라를 위해 기여했는가를 말한다.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사회적으로 지위와 명예도 있는데 정작 그것을 이유로 처벌을 유예받고 다시 사회로 복귀한다. 그것을 지지하는 것이 역시 국민이다. 이인임을 처벌하는 것이 옳은가. 처벌하지 말아야 하는가. 임견미와 염흥방은 그 가족까지 남김없이 처벌하려 하고 있었다. 누구의 죄가 더 큰가.

혁명의 당위를 말하려는 것일수도 있다. 결국 구조화되어 있다. 구체제는, 과거의 모순과 부조리는 이미 구조화되어 일부만 제거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권신 이인임에게는 당여인 임견미와 염흥방 이외에도 그로부터 보호받던 왕실이 있었다. 이인임의 배려 아래 최영 또한 권세를 누렸다. 사대부 역시 출사를 하기 위해서는 이인임에 대해 동조하거나 최소한 침묵해야 했다. 이인임을 제거하기 위해서도 그 모두를 손보지 않으면 안된다. 섣부른 관용으로 일제강점기의 체제 그대로를 모순과 함께 해방 이후까지 옮겨놓은 과거의 역사도 있었다. 부수지 않고서는 새로 쌓아올릴 수 없다. 금가고 썩은 위에 새로 쌓아올려봐야 언젠가 허물어질 뿐이다.

역사에서도 임견미와 염흥방이 처형당하고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이인임이 처벌받는다. 그 사이의 여백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넣는다. 이인임의 처리를 두고 최영과 이성계가 부딪힌다. 우왕이 이인임의 사면을 명령한 것은 이인임이 아닌 이인임의 '악'을 증오하는 이성계의 가치와 충돌한다. 복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스포일러다. 최영조차. 당연히 우왕마저도 이성계가 타도해야 할 고려의 구제도에 속한다. 고려 자체를 무너뜨려야 한다. 호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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